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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재미 없겠지만 군대 이야기부터 해야겠구나. 너도 알겠지만 군대는 전쟁이라는 폭력을 염두에 두고 만든 조직이잖아. 다른 사회 집단과는 다른 점이 많지. 군대에 가는 남자들은 진즉부터 군대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대충은 알지만 입대해서 생활을 하다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란다. 아빠가 입대한 것이 1988년 겨울이니까 벌써 거의 30년 전의 일이라서 지금과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길 할게.

그 당시만 해도 군대 보급이 지금보다 시원찮았던 모양이야. 사회에서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물건들이 군대에서는 보물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거든. 족히 십 년 이상은 사용한 것 같은 숟가락, 남들이 사용했던 양말, 하다못해 양철로 된 통도 귀한 자산으로 여겼고 병사들은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애썼어. 심지어는 속옷에도 굵직한 펜으로 이름을 적어두곤 했었으니까.

이런 잡동사니 보급품을 많이 확보한 병사는 유능한 것으로 칭송되었고, 반대의 경우는 무능의 표상이었지. 후임병의 가장 중요한 고민 중의 하나는 이런 잡동사니를 얼마나 '챙기느냐'이기도 했어. 결국 다른 부대의 병사들 보급품을 훔치기도 했고 그 행위는 선임병에게 칭찬을 받았지. 마치 운동선수들이 국제경기에 나가서 메달을 따는 것만큼이나 자랑스러운 성과로 생각했단다.

범죄행위임이 분명한 이 행동을 두고 우리는 '위치 이동'이라고 불렀어. 다른 사람의 보급품을 훔치는 것은 '절도'가 아니며 단순히 '위치'를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는 자기 암시였고 그 논리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더 많은 물건을 위치 이동을 하는 병사는 우리 부대의 '인재'로 생각했지.

절도를 '위치 이동'으로 표현하는 언어습관은 절도를 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지. 오늘 내가 소개하려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사람의 죄의식을 약화하는 언어규칙을 주목한 책이란다.

표지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표지 표지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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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주범이었던 나치 친위대 장교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인데, 한마디로 악의 평범성 즉 우리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

600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아이히만은 모든 생활방식, 사고방식 등이 보통사람과는 확연히 달라서 누가 봐도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일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악'은 평범해서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

심지어 아이히만 자신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는 죄의식도 없었단다. 자신은 정상적인 공무를 수행했을 뿐이며 자신이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 것 또한 나쁜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한나 아렌트가 조사하고 지켜본 아이히만은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었어. 실제로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다가 이스라엘로 압송되어온 아이히만은 모두가 상상했던 살아 있는 악마의 모습이 아니고 지극히 평범하고 나약하며 심지어 성실한 인간의 모습이었단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범죄자로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우연히 봤다면 그저 '평범한 옆집 아저씨'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피고 측이 피고로 하여금 무죄 주장을 하게 한 이유는 피고가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 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가 기소당한 내용은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 해위'이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나라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세르바티우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대에 처해질" 행위들을 했을 뿐이라는 것 등이었을 것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74쪽

아이히만의 이런 주장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아. 군사정권 시대에 무고한 사람을 붙잡아서 끔찍한 고문을 한 것으로 악명 높은 사람의 주장과 비슷하거든. 이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애국을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한 것"으로 말했어. 다른 예도 있단다. 군사정권 시절에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외치는 대학생들을 강제로 입대 시켜 특별교육을 받게 만드는 것을 '녹화 사업'이라고 불렀어.

'녹화 사업'은 말 그대로 '초록빛으로 만드는 사업'이라는 것인데 무고한 대학생들을 강제 징집하고 탄압하는 실상을 '좋게 포장'하는 말에 지나지 않아. '산림녹화사업'을 연상하게 하는 좋은 표현으로 국민들에게 실상을 숨기고 이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의식을 약화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의심을 하게 된단다.

나아가 이 문제를 다루는 모든 문서들은 엄격한 '언어규칙'을 따랐다. 돌격대로부터 오는 보고서를 제외하고 '제거' '박멸' 또는 '학살' 같은 명백한 의미의 단어들이 쓰여 있는 보고서를 발견하기는 거의 드문 일이다. 학살을 처방하는 암호는 '최종 해결책' '소개'(Aussiedlung)와 '특별취급'(Sonder-behandlung)등이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49쪽

기만과 은폐를 위해 교묘하게 고안된 다양한 '언어규칙' 가운데 이처럼 히틀러가 첫 번째 전쟁을 벌이는 데 살인자들의 정신상태에 작용한 것보다도 더 결정적인 효과를 발휘한 것은 없었다. 여기서 '살인'이라는 말 대신 '안락사 제공'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가 여하튼 죽음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도록 하라는 지시가 조금 반어적인 것이 아니었는가를 경찰심문관이 물었을 때 아이히만은 이 질문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었다는 것이 아직도 너무나 확고하게 그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78쪽

살인을 '최종해결책'이나 '안락사 제공'으로 표현하는 언어규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라는 것이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단다. '최종해결책'과 '안락사 제공'은 얼핏 보면 선의를 연상하게 하는 표현이잖니?

최종해결책은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가 떠오르고, 안락사 제공 또한 윤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가 있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의미를 쉽게 떠오르는 말이잖아. 다시 말하지만 엄연한 범죄행위를 좋은 의미를 가진 언어로 포장을 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아이히만처럼 만들 수 있는 위력이 있어.

무시무시한 고문을 '애국 행위'나 '정상적인 공무 집행'이라고 주장하는 고문 기술자의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고 있을지도 몰라.

학살을 '최종해결책'이나 '안락사 제공'으로 표현하는 언어규칙에 익숙한 아이히만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보통사람의 시각으로는 어이없는 일이지만 아이히만 본인의 생각으로는 공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며 애국 충정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것이지.

교묘한 언어규칙 때문에 범죄행위나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를 하고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과거의 일로만 국한하지는 못한단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어.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현재 정상적인 업무 처리라고 생각하거나, 당연히 따라야 할 상사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옳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이란다.

우리가 모두 아이히만이 될 수도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은 우리 모두에게 악의 씨가 있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할 때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배려와 공감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나쁜 행위를 하고서도 죄의식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야.

600만 명을 학살한 아이히만이 평소에 매우 '착하고' 심지어 인간관계에서 '도덕적인'인 사람이었다는 것은 볼 때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이 없이 그저 명령을 기계적으로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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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이히만, #고전, #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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