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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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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의 법관 사찰과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의혹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양심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의 판사들의 추한 행태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삼권분립 정신을 망각하고 청와대의 심기 경호에 나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그렇지만, 그의 수족 노릇을 자처한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굴종은 보기조차 민망하다.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라는 저들은 '물라면 무는' 것인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선언은 이미 생채기가 나버렸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정권 주변을 기웃거리며 이해관계에 따라 양심과 소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판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불문율을 넘어, 이젠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주위에 넘쳐난다.

'사법 불신'이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이지만, 아직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직 판사들의 인식은 나이브하기만 하다. 분노하는 민심엔 아랑곳하지 않고, 우선 법원 내부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는 권위적인 행태를 답습하고 있어서다. 사법부는 결코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그들의 비뚤어진 특권 의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중이 제 머리 자르겠다'는 격이어서 어처구니없지만, 사법부 전체를 싸잡아 욕해서는 곤란하다. 얼마 전 오만방자의 결정판이라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놀이터 기자회견' 이후, 정식 수사를 촉구하는 지방법원 판사들의 요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적어도 그들은 판사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검사의 칼날이 법원을 향한다 해도 문제 될 것 없다는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반드시 곱씹어봐야 할 게 있다. 바로 승진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법원행정처는 사법부의 '엘리트 코스'로 통한다. 판결과는 동떨어진 행정사무를 총괄하는 곳이 승진을 위한 필수 코스라는 점은 일반인으로선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들도 법복을 처음 입은 그 순간부터 법과 양심을 내팽개치진 않았을 것이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늘 가까운 법,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와 고위직이 지닌 막강한 위세와 권력에 시나브로 길들여진 까닭이다. 솔직히 정부와 국회의 '한시적' 권력에 비해 사법부의 힘은 '반영구적'이며, 지금껏 '양심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선입견 탓에 여론의 뭇매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조직을 불문하고 명예와 권력이라는 보상이 클수록 누구든 '시류에 맞춰 줄을 잘 서도록' 강요받게 된다. 어쩌면 모든 판사들이 좌우명처럼 되뇌는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선언은 부박한 시류에 따르지 말라는 일침일지도 모른다. 곧, 권력에 취해 승진에 연연할수록 판사로서의 권위는 허물어지고 삶 전체를 그르치게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 아닐는지.

해바라기마냥 직속상관의 비위를 애면글면 맞춰온 이들은 승승장구해 고위직에 오르고, 판사로서의 자존을 지킨 이들은 지방법원과 한직을 떠도는 현실이라면, 사법부는 더 이상 '양심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일 수 없다.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쥔 판사들조차 권력의 단맛에 취해 승진에 목매달게 되면 국민들은 대체 어디에 의지해야 하나. 장삼이사들에겐 이번 사안이 과거 그 어떤 비리보다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부적절했지만, 처벌 대상은 아니'라는 식으로 눙쳐선 곤란하다. 이미 국민들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식의 뻔뻔한 발뺌으로 이해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뼛속 깊이 박힌 특권의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검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이 지금으로선 유일한 해법이다.

지금이야말로 이 땅의 판사들 스스로 사법부가 '양심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임을 증명해야 할 때다. 과거 유신 독재정권 시절, 사법부(司法府)가 '사법부(部)'로 전락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역사의 치욕은 한 번이면 족하다.

사족 하나.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교사는 수업으로 말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로 발령을 받은 초임 교사들 앞에서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이야기다. 분명 방점은 뒤의 문장에 있지만, 굳이 생뚱맞게 판사의 판결을 전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판결과 수업은 판사와 교사라는 직업의 존재 이유라는 의미를 넘어, 교사들이 수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판사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존재다.


태그:#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법원행정처, #양승태,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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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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