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각 후보자들의 열띤 유세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후보자의 배우자나 자녀, 친지들은 주요 선거운동 부스를 지키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한국의 선거에서 후보자 가족은 언제나 중요한 이슈가 되어왔다. 이들의 재산, 학력, 국적문제, 군복무, 직업, 약물복용 등은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변수다.

이번 선거에서도 많은 후보자의 가족들은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선거운동에 발 벗고 나설 것이며 때로는 자신의 사생활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을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이다. 과연 후보자의 가족들은 행복할까?

2012년 개봉했던 황정민, 엄정화 주연의 영화 <댄싱퀸>과 2016년 개봉된 최민식 주연의 영화 <특별시민>. 선거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두 영화는 장르도, 주제도 다르지만 선거에서 가족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가족이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는 한국 선거 풍토를 잘 보여주고 있는 이 두 영화를 통해 한국의 선거에서 가족을 대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후보자가 잘 '다스려야' 할 존재인 가족?

 <댄싱퀸>의 황정민은 진실함으로 인기몰이를 한다.

<댄싱퀸>의 황정민은 진실함으로 인기몰이를 한다. ⓒ CJ엔터테인먼트


<댄싱퀸>의 정민(황정민)은 변호사지만 돈벌이에는 소질이 없는, 그저 순박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의도하지 않게 민주투사와 시민영웅이 된 그는 대학 동창의 추천으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가게 되고, 진실함으로 인기몰이를 한다. 당내 경선 통과쯤은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성장한 그에게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난다.

오래된 가수의 꿈을 꾹꾹 눌러 담고 지내던 아내 정화(엄정화)가 섹시여성그룹 멤버로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정화는 남편의 출세에 방해가 될까봐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숨기려하지만, 진실은 밝혀지는 법. 당내 경쟁자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꿈을 좇는 아내는 정민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경쟁후보는 정민의 아내 정화의 사진을 공개하며 "자기 아내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천만 서울 시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며 정민을 공격한다. 당원들과 대중들은 역시 이에 동조한다는 듯 "퇴진하라"라고 외치며 술렁인다. 이는 정치인들은 물론 대중들 역시 아내를 후보자가 간수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후보자의 아내가 조신하게 살림을 하며 후보자의 성공을 뒷바라지 않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것이 큰 흠이 되는 것. 이는 후보자의 아내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후보자의 사적 소유물로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극히 가부장적인 시선이다.

권력 쟁취를 위해 '이용되는' 가족 

 <특별시민>의 변종구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특별시민>의 변종구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 쇼박스


<특별시민>의 변종구(최민식 분)는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프로정치인이다. 서울 시장 3선에 도전하며 인기몰이를 하지만, 실제 그의 모습은 영 딴판이다. 철저하게 계산하며 이미지 관리를 통해 승승장구 하던 그에게 나타난 복병 역시 가족이다.

경쟁후보인 양진주(라미란 분)는 변종구의 아내가 산 비싼 그림을 문제 삼아 변종구에게 흠집을 내기 시작한다. 또, 변종구가 사고 낸 교통사고의 누명을 뒤집어 쓴 변종구의 딸을 언급하며 '자식 교육 하나 제대로 못시키는 사람'이라며 변종구를 비난한다.

이에 변종구 역시 상대방 가족 흠집 내기 전략을 이용한다. 변종구는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를 공부하는 건실한 청년 이미지를 갖고 있던 상대편 후보의 아들을 대마초 흡연자로 몰아간다. 가족이 한 행위는 마치 후보자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다뤄지고 가족의 결점은 후보자의 결점이 된다. <댄싱퀸>과 마찬가지로 가족은 후보자의 소유물 혹은 일부분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시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딸에게 교통사고 누명을 씌우고, 사실 확인도 없이 경쟁후보의 아들을 대마초 흡연자로 몰고 가는 등 근거 없는 모함에도 가족들은 그저 참아내기만 한다. 이 영화에서 가족은 후보자에게 '다스려야 할 존재'를 넘어서 '마음대로 이용해도 되는 존재'이다.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의 가족 vs. 소유물로서의 가족

 가족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며 꿈을 응원하는 황정민은 아내 엄정화의 진심어린 지지를 얻는다.

가족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며 꿈을 응원하는 황정민은 아내 엄정화의 진심어린 지지를 얻는다. ⓒ CJ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가족을 대하는 두 후보의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댄싱퀸>의 정민은 처음엔 아내의 가수데뷔에 화를 내지만, 아내를 이용해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편에 맞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한다. "제 아내는 정치인의 아내 이전에 한 인간입니다. 가족은 말입니다. 가족은 다스려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라고. 그리고 "시장이 되기 위해서 아내의 꿈을 포기하게 하고, 평생 저를 뒷바라지 한 아내를 부끄럽게 여긴 저는 시장 후보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라며 잠시나마 아내의 꿈을 존중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즉, 자신의 아내를 소유물 취급하는 상대후보와 달리 정민은 가족을 함께 사는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민의 연설에 대중들은 다시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정화 역시 "서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자고 했잖아. 내가 언제 포기하라고 그랬어"라며 남편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반면 <특별시민>의 변종구는 경쟁후보보다도 자신의 가족을 더 함부로 대한다. 아내의 그림 사건이 터졌을 때, 아내를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다짜고짜 그림을 찢고 폭력을 행사한다. 아내 뿐 만이 아니다. 딸 소유의 차로 자신이 일으킨 교통사고 사망사건이 알려지자 딸에게 "잠깐만 감옥에 가있으라"한다. 그리고 자신은 대중들에게 '딸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뻔뻔하게 사죄한다.

변종구에게 가족은 사람이 아니다. 내게 방해가 되면 내치고, 필요할 때 이용하는 물건에 불과하다. 그림 사건 후 아내를 때린 변종구에게 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그냥 아빠 뒤에 서 있는 병풍이야? 나 인제 지겨워 아빠 병풍 노릇 하는 거"라고. 이 말은 변종구에게 가족이 무엇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가족의 사생활이 아닌 가족을 대하는 태도

 변종구는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한다. 그에게 가족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병풍'에 불과한 존재다.

변종구는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한다. 그에게 가족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병풍'에 불과한 존재다. ⓒ 쇼박스


두 영화는 모두 가족이 선거에 이용되고, 소유물 취급되는 한국적 정치 현실을 공통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자 본인이 가족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확연히 다른 결말을 가져왔다.

가족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댄싱퀸>의 정민은 가족들의 진심담긴 응원을 얻는다. 영화는 엄정화와 함께 신나게 선거유세를 펼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반면 가족을 물건처럼 대한 <특별시민>의 변종구는 비록 3선 서울 시장이 되지만 기계적인 웃음을 지으며 박수치는 아내를 병풍처럼 둘 뿐이다. 자신이 병풍취급 해버린 가족은 당연히 변종구에게 어떤 정서적 지지도 응원도 보태줄 수 없다.

자신의 심복과 고기를 구워먹는 마지막 장면 속 변종구의 모습은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입에 쌈을 쑤셔 넣은 그의 모습은 허기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또 다시 권력을 탐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간의 내면을 보여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댄싱퀸>에서 상대후보가 황정민을 공격했던 근거다. 아마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자를 검증하는 기준으로 이 말이 회자될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진정한 '제가(齊家): 가족을 가지런히 함' 의 의미가 정말 가족을 내 뜻대로 다스리고 통제한다는 뜻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자신의 성취에 가족을 이용하기 보다는,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고, 각자의 꿈을 응원해주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가족과 가지런히 함께 나아가는 자세일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에 이용되는 후보자 가족 개개인의 프로필이나 사적인 문제보다 가족을 대하는 후보자의 태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어떨까? 가족에게 군림하며 자신의 성공을 위해 가족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존중하고 각자의 꿈을 응원하는 후보자. 그런 후보자야 말로 진심으로 유권자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해갈 수 있는 후보자가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댄싱퀸 특별시민 황정민 최민식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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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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