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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1일 발언을 보도한 kbs <뉴스9>.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1일 발언을 보도한 kbs <뉴스9>.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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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선생들은 잘 안 되길 바라오?"

거침없다. 역질문도 날카롭다. 성큼 성큼 걷는 보폭만큼이나 시원시원하다. 북측 특유의 직설화법에 속 시원했을 이가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1일 오전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북측 대표단과 함께 판문점을 거쳐 회담장인 평화의 집으로 들어서며 남측 취재진에게 내놓은 답은 가히 걸작이었다.

이날 JTBC 취재진 중 한 명은 "엄중한 사태로 인해서 회담이 무기한 연기됐었는데 그 엄중한 사태는 해결이 됐다고 보시는지요?"라고 물었다. 앞서 지난달 17일 리 위원장이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북남고위급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을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남북고위급회담 취소 배경을 밝혔던 데 대해 물은 것이다.

"저거 뭐야... 기자 선생들이 질문하는 거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할 수 있지. 근데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질문도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 엄중한 사태가 어디서 조성된 건지 뻔히 알면서도 나한테 그거 해소됐냐고 물어보면 되나.

그거 저 명백한 거는 기자 선생들이 앞으로 질문도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게 이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남 수뇌상봉도 열리고 판문점 선언도 채택된 이 마당에서, 이 분위기에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이날 KBS <뉴스9>은 이와 같은 리 위원장의 반응에 "오늘 회담은 비교적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북측은 보름 전 고위급회담 취소 이유로 들었던 '엄중한 사안'이 해결됐냐는 질문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필자가 여타 매체를 통해 영상을 확인한 결과, 리 위원장의 반응은 민감하다기보다 언론의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자 선생들은 잘 안되길 바라오?"라는 반문도 이와 같은 과정에서 나왔다.

"손석희 선생이랑 잘하는 거 같은데..."

"(기자) 오늘 회담은 어떻게 지금 전망하시는지 말씀 좀…."

"(리선권 위원장) 또! 아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회담을 하러 왔는데 어떻게 될 거는 뻔하지  않나. 아주 잘 될 거이(것이) 분명하지. 기자 선생들은 잘 안 되길 바라오?"

날카롭다면 날카로운 반응일 수 있다. 리 위원장은 "어디 소속이냐?"고 물었고, "JTBC"란 답이 돌아오자 "손석희 선생이랑 잘하는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질문하오?"고 또 반문했다. 이어 평화의 집 로비로 마중 나온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만난 리 위원장은 "기자 선생들 질문이..."라고 첫 마디를 꺼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리 위원장의 반응이야말로 북측의 남측 언론에 대한 인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언론에 대한 불신을 넘어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근원적인 불신이 담긴, 아니 종종 오해와 억측이 발생하는 남측 언론의 태도 말이다.

남북 관계가,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에 의구심을 갖는 남측 언론의 태도를 두고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게" 남측 언론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는 리 위원장의 주문은 합당하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아래 일침 역시 같은 맥락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면,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질문이 진행되고 또 뭔가…, 불신을 조장시키고 또 그런데서 뭔가 오도할 수 있는 대로 질문하면 앞으로 되지 않겠다. (중략) 앞으로 이런 질문은 무례한 질문으로 우리가 치부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 김의겸 대변안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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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의 논평이 적확한 이유

"한미 정상회담 끝난 날, 국정원 팀이 평양으로 달려갔다"(<조선일보> 5월28일)
"풍계리 갱도 폭파 안해... 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TV조선 5월24일)
"북, 미 언론에 '풍계리 폭파' 취재비 1만달러 요구"(TV조선 5월19일)

지난 5월 29일,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꼭 짚어 언급한 북한 관련 기사들이다. 이날 청와대는 김의겸 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내고 "대단히 엄중한 시절입니다. 기사 한 꼭지가 미치는 파장이 큽니다"라며 "최근의 남북미 상황과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밝혔다.

세 기사는 오보가 확인됐거나, 사실무근 논란에 휩싸인 보도들이다. TV조선 측은 '풍계리 연막탄' 기사에 대해서만 오보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김의겸 대변인은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수 같은 위험성을 품고 있는 기사들"이라며 "연예인 스캔들 기사에도 적용되는 크로스체크가 왜 이토록 중차대한 일에는 적용되지 않는 겁니까?"라고 일침을 놨다. 언론인 출신 대변인이기에 더더욱 김의겸 대변인의 반박 논평은 한 편의 사설과도 같았다.

"TV조선의 보도대로라면 북한은 상종하지 못할 존재입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거액을 뜯어내는 나라가 돼버리고 마는 겁니다. 만약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를 이런 방식으로 묘사했다면 당장 법적 외교적 문제에 휘말렸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보도는 한차례에 그치지 않고 후속 오보를 낳기 마련입니다. 여의도의 정쟁은 격화되고 국민들 사이에 파인 골은 더 깊어집니다."

뿌리가 어찌됐건, 북한 동포에 대해 애정을 가지든 말든, 언론의 균형 감각이야말로 통일로 가는 길이 순탄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주요 전제라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왜 "통일이 대박"인지, 변화된 김정은 체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야 할 것도 언론의 본연의 책무다. '아니면 말고'는 물론이요, 재 뿌리기와 같은 악의적인 추측성 보도는 자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적 보도들이 나온다. '안보상업주의'와 '레드컴플렉스'를 바탕으로 한 역사는 길다. 그렇기에 더더욱 2018년 들어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재를 뿌리고, 폄훼와 억측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엔 단호한 비판이 필요하다. 오보나 사실무근의 보도 등을 논거 삼아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극우 보수 야당들 말이다.

<조선일보> 기자들도 반대한 '조선' 출신 강효상의 공개서한

한편, 1일 한국기자협회 조선일보지회는 지난 31일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청와대 협박에 굴복했다"며 양상훈 조선 주필의 파면을 주장한 데 대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1일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조선일보지회는 1일 발행된 조선 노보 1면에 성명을 싣고 "이번 서한은 본지의 편집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국회의원이 언론사 사주에게 칼럼 필자를 파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잘 알려진 대로, 강효상 의원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다. 조선일보지회의 성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더구나 언론인 출신이 그런 요구를 했다는 것은 의도 적인 언론자유 침해로 볼 수 있다. 정치 권력으로 언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지가 청와대 대변인의 협박에 굴복했다고 말한 것도 본지의 신뢰도를 훼손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강 의원이 지목한 주필의 칼럼 바로 옆에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을 비판하는 칼럼이 함께 실려 있다. 막연하게 오보 운운하지 말고 어느 부분이 사실과 다른지 따지자는 입장이었다. 조선일보가 권력 눈치를 보는 신문이 아니라는 것은 강 의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언론을 자신들 마음대로 오도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칼럼의 필자를 두고 '기회주의적 행각', '이중인격자' 운운한 인신공격 역시 책임 있는 정치인의 행동은 아니다. 더 이상 국회의사당을 더럽히지 말고 '파면'이라는 두 글자를 본인에게 적용하길 바란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사실 보도에 더욱 더 신중하고 공정 보도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나 야당이 어떤 압박을 하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청와대나 야당의 압박"에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얼마나 될까. 반대로 <조선일보>의 사실 보도와 공정 보도를 신뢰하는 독자들은 또 얼마나 될까.

명확한 것은, 리선권 위원장의 일침대로 "불신을 조장"시키고, 사실을 "오도"하는 언론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의겸 대변인의 말마따나, "하늘이 내려준 기회"이자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벗어던질 수 있는 호기"인 현 시기라면 더더욱 말이다.


태그:#리선권, #김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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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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