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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엄마의 꽃시" 늦게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이 시를 쓰고 시인 김용택 선생이 책으로 엮은 ‘엄마의 꽃시’
▲ 시집. '엄마의 꽃시" 늦게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이 시를 쓰고 시인 김용택 선생이 책으로 엮은 ‘엄마의 꽃시’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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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거나 젊거나,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거나 아니거나, 많이 배웠거나 적게 배웠거나, 가슴속에 알싸한 사연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중에 옛 어머니들의 못 배운 한은 순위로 치면 으뜸일 겁니다.

우선 저의 어머니 이야기부터 하지요. 제가 82년 2월에 군입대를 했는데 일병을 달고 얼마 후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세상에! 어머니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니는 간단하게 자신의 이름이나 쓸 정도였는데 군대간 아들한테 편지를 쓰려고 한글을 배우셨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읽고 써가며 배워 제일 먼저 아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지요.

그저 몸 건강히 군대생활 잘 하라는 이야기뿐이었지만 맞춤법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요. 그래도 아들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습니다. 밤중에 보초를 서면서 플래시로 비춰가며 읽고 또 읽고 눈물을 훔쳤지요.

이번에는 우리동네 면목동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연세가 70이 조금 넘으셨는데 그래도 이 분은 옛날 말로 소학교는 나왔답니다. 이분이 나이 스물에 '이름도 성도 몰라 얼굴도 몰라' 집안 어른들끼리 술좌석에서 "우리 사돈 맺을까?" 해서 정해진 사내와 결혼을 했답니다.

첫날밤, 희미한 호롱불에 비친 신랑이 밉상도 아닐 뿐더러 자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직업은 공무원이었답니다. 시집 온 지 6개월 만에 소학교밖에 안 나온 게 들통이 났는데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온 신랑이 아무 말 없이 웃기만하더니 다음날부터 신문을 챙겨오더랍니다.

시집 온 지 6개월 만에 신랑과 색시는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어 밤마다 신문을 펴놓고 공부를 했단느데요. 지금 신문에는 한문이 거의 없지만 옛날 신문은 반이 한문이었던 터라 반은 한문 공부요, 나머지 반은 문장 공부였답니다.

그렇게 남편 밑에서 공부하기를 꼬박 10년, 어느덧 한문 실력은 남편을 능가했고 이번에는 남편이 YMCY에서 운영하는 붓글씨 공부를 권했답니다. 그렇게 공부 10년 만에 서예콩쿠르에도 나가 상도 여러 번 탔다는군요. 이만하면 됐지 싶었는데 남편이 대학을 보내더랍니다.

남편은 공무원 정년퇴직을 했고 부인은 나이 50이 넘어 대학을 졸업하고 수필가가 되었습니다. 책도 꽤 여러 권 냈는데 제가 이분을 딱 집어 누구라고 말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러한 사연은 며느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저만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사진관 할 때 단골 손님이었는데 올 적마다 사진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제 글을 읽어보며 일부러 더 들르기도 했습니다. 그때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았지요. 김용택 시인이 엮은 <엄마의 꽃시>라는 시집에서 허양순 할머니 시를 읽으며 문득 이름을 밝히기 뭐한 면목동 어머니가 생각나 써봤습니다.

참 보고 싶다

허양순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살아생전 내 남편에게
음식을 해주면
"참 맛있네" 했다
겉으로는 "참" 자는 빼고 말하라고 했지만
속마음은 나도 참 기뻤다

나를 언제나 다독이고
살뜰이 챙겼던 정진이 아빠
꿈에라도 한 번 만나
참 맛있는 음식 싸들고
우리 두 손 꼭 잡고 놀러 가요

이번에 만나면
내기 배운 한글로
편지 써서 줄 테니 꿈에라도
한 번 놀러 와요

- 시집, '엄마의 꽃시' 46쪽

시를 쓴 허양순 할머니 사느라고 참 애쓰셨습니다. 허양순 할머니 시를 읽고 아내 몰래 휴지를 뜯어 눈물을 찍어냈습니다. 할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시군요! 허양순 할머니, 그동안 배운 한글로 그리운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세요. 그 편지를 책으로 엮으면 그게 바로 '시집'이 됩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꽃시 박순덕 할머니. 70년 만에 보내는 편지 (본문 내용 중에)
▲ 꽃시 박순덕 할머니. 70년 만에 보내는 편지 (본문 내용 중에)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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