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전>이 31일로 관객수 240만 명을 넘겼다. 손익분기점인 280만 명까지 무리 없이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그간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67만 명),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35만 명) 등 흥행운이 없었던 이해영 감독에게 <독전>은 남다른 영화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 이정민


<독전>이 막 100만 명의 관객을 만난 지난 28일, 이해영 감독에게 소감을 물었다. 이해영 감독은 "사실 (100만 명이라는 관객수가) 내 영화에서 처음이라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일단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의 소망은 곧 이뤄질 것 같다.

"나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 목숨만큼 중요해"

<독전>은 이해영 감독이 기존에 선보였던 전작들과 상당히 결이 다른 영화다. 이해영 감독은 <독전>을 통해 "그 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작업의 성향을 깨고 보다 정확한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흥행'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을까.

"스코어를 떠나 주변 지인들이나 일반 관객 분들이 전작들보다 훨씬 좋아해주는 게 느껴지니 감사하다. 그 이유를 말씀해주지는 않으시지만 더 '정확해서'가 아닐까. 전작에는 어딘가 의뭉스럽거나 낯선 구석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에 비해 <독전>은 정확한 장르 영화를 표방했으니까. <독전>을 두고 흥행을 하고 싶어서 (기존 작품들과 다르게) 만들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흥행만을 지향하는 건 창작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목표라고 본다.

상업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상업 영화 진영 안에서 나 스스로를 증명하는 게 중요했다. 이는 영화를 직업으로 삼은 영화인으로서 목숨 같은 것이다. 상업성을 입증받아야 하는 내게 <독전>은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영화 제작을 단순히 기능적으로 수행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패턴에, 비슷한 에너지로 달려왔다. 그간 내 안에 있던 것을 내보이거나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소중했다면 전문적인 직업 감독으로서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한 전환점이 필요했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스스로 만든 틀을 깨고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나아가야 연출자로서 폭도 넓어지고 더 유연해질 수 있겠다 싶었다. 욕심이 생긴 딱 그 타이밍에 <독전>을 만났다. <독전>은 중요한 타이밍에 매우 간절하게 선택한 영화다."

이해영 감독은 <독전>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장르물의 관습들을 정확하게 이행하고 수행하는 것"으로 잡았다. 그는 '정확하다'는 말을 세 번 반복했다. "매우 정확하고, 정확해서, 정확한 상업 장르 영화를 만들자는 게 스스로와의 중요한 다짐이고 약속이었다. 한 순간도 낯설게 만들거나 장르를 비트는 시도를 하지 말자."

대신 그는 기존 '범죄 장르물'과 다른 <독전>의 매력을 '캐릭터'에 심어두었다. 이해영 감독은 드라마 <마더>, 영화 <박쥐> <아가씨>의 시나리오를 썼던 정서경 작가와 협업하면서 <독전>의 각본을 완성했다. 이 감독은 "범죄 장르 영화는 반복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감독 이해영이 <독전>을 해야 하는 명분이나 개성은 캐릭터에 두었다. '캐릭터 무비'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독전>은 반전 영화?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보통 한국 마약 영화는 주사기를 많이 쓰는데, 그게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독전>에서는 가루 형태의 마약만 흡입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여기에는 내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 ⓒ 이정민


형사 원호(조진웅 분)와 함께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를 쫓는 마약 조직원 락(류준열 분)은 <독전>의 세계관 안에서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존재다. 다친 개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관객들을 놀라게 만든다. 배우 류준열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인물인 락을 잘 연기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다. 이해영 감독은 "초반에 락의 캐릭터를 잡기 위해 준열이와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주파수를 맞추었고, 그 뒤부터는 믿고 맡겼다. 몇 마디만 해도 알아서 잘 해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오히려 "준열이에게 촬영하는 동안 많이 의지했다"고 했다.

"<독전>은 원호가 결국 락의 진짜 모습을 마주치는 이야기인데, 나는 처음부터 <독전>이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업했다. 후반부 반전을 놀랍게 만들거나 좀 더 극적으로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을 속이기 위해 많은 장치를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단 한 순간도 그렇게 연출되지 않았다. <유주얼 서스펙트>(1996)처럼 다리를 절다가 제대로 걷는다거나 완전히 다른 인간형처럼 보이게 반전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독전>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락이라는 인물이 매순간 진심이었다는 게 내게는 중요한 설정이었다.

아마 <독전>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원호의 시선을 따라 보시겠지만 락의 시선으로 보면 또 다를 것이다. 이 영화는 원호가 이선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락이 원호를 관찰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락이 마지막에 응징을 하는 장면 역시 나는 자신의 어머니와 강아지가 당한 것과 동일한 형태의 인간적인 보복 같은 느낌으로 보았다."

이해영 감독은 다소 이중적인 락의 모습을 위해 배우 류준열의 겉모습부터 신경을 썼다고 한다. '비주얼'에 방점을 찍은 영화인만큼, 영화 속 배우들의 옷차림 또한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이해영 감독이 신경 써서 골랐다는 배우 류준열의 면티.

이해영 감독이 신경 써서 골랐다는 배우 류준열의 면티. ⓒ NEW


"락은 원호에 비해 땀이 한 방울도 안 맺히고 하얗고 창백한 이미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준열이가 <리틀 포레스트>를 찍으면서 중간에 과수원에 사과를 따러 간다고 했는데 살이 탈까봐 걱정했다. 우리 콘셉트가 있으니까. 나는 락이라는 인물이 하얀 피부에 갈색 머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다 갈색으로 칠했다.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락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다.

락이 입은 양복은 가장 깔끔하면서 단단하게 보일 수 있는 것으로 맞췄고 보령(진서연 분)이 매주는 넥타이는 보령이 고른 거니까 너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세련되지도 않은 적당한 센스의 패턴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입고 나왔던 하얀 면티도 너무 '난닝구'(러닝셔츠)처럼 보이지 않고 후줄근하지 않은 적당히 예쁜 것으로 골랐다."

 노르웨이에서 디렉팅을 하고 있는 이해영 감독의 모습. "마지막 로케이션 촬영은 원래 노르웨이가 아닌 동남아시아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락이 땀 흘리는 모습이 너무 이상할 것 같더라. 무엇보다 준열이가 땀 흘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 디렉팅을 하고 있는 이해영 감독의 모습. "마지막 로케이션 촬영은 원래 노르웨이가 아닌 동남아시아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락이 땀 흘리는 모습이 너무 이상할 것 같더라. 무엇보다 준열이가 땀 흘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 NEW


반면, 배우 조진웅의 경우 "형사 같은 형사의 옷"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실제 형사 분들이 입고 다니시는 브랜드를 물어 그 브랜드 옷 중에서도 가장 형사 같고 가장 기능적인 옷을 택했다. 머리 길이도 앞으로 내렸을 때는 형사처럼 보였다가 원호가 하림(김주혁 분)을 흉내 냈을 때는 다른 카리스마가 나올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길이를 택했다 그 신에서 영화적으로 비주얼이 폭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조진웅 배우가 살이 많이 빠져 잘생기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웃음)

원호가 우연치 않게 하림을 그대로 흉내 내는 신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큰 숙제"였다고 이해영 감독은 말했다. 원호가 단순히 이선생을 잡기 위해 하림을 흉내 낸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원호가 하림이 된 듯한 신을 이해영 감독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림(김주혁 분)을 그대로 흉내내는 원호(조진웅 분)

하림(김주혁 분)을 그대로 흉내내는 원호(조진웅 분) ⓒ NEW


"원작 <마약전쟁>(두기봉 감독)에서 이 신은 오히려 <독전>보다 더 아리송하다. 원작 속 원호 캐릭터는 하림을 흉내 내면서 마치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이 설정을 어떻게 풀지가 큰 숙제였는데, 일단 내가 내린 나름의 해결책은 '원호가 연기를 잘해서 해냈다'는 것이 아니라 '원호가 진짜 하림이 되는 포인트가 있어야 겠다'는 것이었다.

원호가 위스키를 한두 모금 마시면서 하림에 대해 모사를 하고 있을 때, 부하가 어리바리하게 "팀장님 저 어디 숨을까요?"라고 물어보지 않나. 당장 문이 열리고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원호는 자기 부하의 머리를 잔으로 내리친다. 그 순간 연극을 하려던 게 뒤집히면서 '진짜'가 돼버리는 것이다. 원호도 스스로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니었는데, 손에 피가 나고 그 피 묻은 손을 하림처럼 똑같이 내미는 순간이다. 이는 꽤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독전>은 남성 영화, 운신의 폭 한정적이었다"

<독전> 언론 시사회를 마치고 이해영 감독은 취재진에게 여러 질문을 받았다. 여러 질문 중 하나는 원호와 락의 전사(前史)가 없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요한 여성 캐릭터가 없다는 비판이었다.

이해영 감독은 먼저 "<독전>은 인물의 전사를 통해 온전히 설득을 시키는 성격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원호가 이선생을 잡는 과정의 중간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것이 보다 더 본질에 맞다고 봤다"고 답했다. 이어 "설명을 했다면 이해도가 높아질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속도가 느려지고 군살이 붙는 느낌이 분명 들 테고, 나는 속도감을 택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전사를 충분히 넣었다면 오히려 '설명충'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사실 조금 놀랐다. 나는 한국 영화가 가진 '설명 강박'에 대한 관객들의 저항감과 피로도가 분명 있다고 봤다. 설명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게 내게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 속도감 있는 장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내게는 이 쪽이 맞는 선택이었다."

 이해영 "다양한 옷을 입혀봤다. 밀리터리룩부터 힙합까지. 그런데 뭘 입혀도 다 이상해서 축구복 같은 바지에 늘어진 민소매를 입혔는데 괜찮았다. 어떻게 보면 쓰레기 버리러 나온 동네 주민 같은 비주얼인데 또 어떻게 보면 갱 같은 묘한 느낌이 있다."

이해영 "다양한 옷을 입혀봤다. 밀리터리룩부터 힙합까지. 그런데 뭘 입혀도 다 이상해서 축구복 같은 바지에 늘어진 민소매를 입혔는데 괜찮았다. 어떻게 보면 쓰레기 버리러 나온 동네 주민 같은 비주얼인데 또 어떻게 보면 갱 같은 묘한 느낌이 있다." ⓒ NEW


한편, 이해영 감독은 "<독전>은 여성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적은 남성 영화"라고 뚜렷하게 밝혔다. 이 감독은 "남성 영화라는 충실한 장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 지점이 있었고 감독으로서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이 분명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원작에서 연옥(김성령 분)과 청각장애인 남매 캐릭터는 원래 모두 남성이었다고 한다.

"'농아남매'의 경우 원작에서는 '농아형제'였다. 모두들 그 캐릭터를 어떻게 리메이크할지에 대해 초반부터 궁금해했다. 사실 원호나 락 캐스팅보다 이쪽 캐스팅을 물어보곤 했는데 내게 부담이 됐다. 비교되기 십상이니까. 처음에 김동영 배우를 캐스팅해 두고 이주영 배우를 붙이게 됐다. 일단 조합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성비의 균형을 위해 김성령 배우나 이주영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성별을 떠나서 김성령과 이주영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여성들만 나오는 여자 영화(<경성학교>)를 만든 감독으로서 이번에는 남성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중요한 미션이었다."

"지금이 최선의 결말"

이해영 감독은 <독전> 기자간담회를 통해 "<독전>이 흥행할 경우 다른 결말을 공개하겠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해영 감독은 '다른 결말은 공개할 것이냐'는 질문에 망설이다가 "아직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지금 극장에 걸린 버전이 감독으로선 최선의 버전이고, 감독판이라 부르고 싶다. 기자간담회에서 말씀드렸던 다른 결말 공개에 대해서는 사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극장에 걸린 버전에 대해 계속 여지를 두는 건, 지금의 <독전>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죄송스러운 일이다."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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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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