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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과 함께 삶과 사랑, 꿈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페이스북을 켰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대통령의 글이 가장 먼저 눈에 보였다. 방탄소년단을 딱히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으로서는 별 다른 반감을 가지기 어려운 글이었다. 분명 그 글이 올라오기 전날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하필 그 날은, 최저인 나의 인생이 다시 '삭감'된 날이었다.

5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
 5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
ⓒ 신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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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1위를 축하하는 글을 책상 앞에서 쓰고 있었을 때쯤엔, 나는 국회 앞에 서 있었다. 유독 더운 날이었다. 많은 이들이 땡볕에서 얼굴을 찡그리며 경찰들 너머 존재하는 국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회 현장의 소음 사이에서 얼핏 주변사람들이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최저임금 삭감법이 통과되었대!"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으로 사람들이 향했을 때 옆에 서 있던 친구가 뉴스 속보를 읽어주었다. 사람들은 분노하며 두 당의 당사에 계란을 던졌다. 그러나 최저임금 삭감법이 통과된 현실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프니까 청춘일까?

5월 28일, 민주노총에서 주최한 최저임금 개악 저지 집회에 참여했다.
 5월 28일, 민주노총에서 주최한 최저임금 개악 저지 집회에 참여했다.
ⓒ 신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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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니는 5년 동안 알바를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떡집, 편의점, 빵집, 카페, 전단지 알바, 방청 알바 등 안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 그 많은 알바를 하며 최저임금 이상의 돈을 받아본 적은 전단지 알바를 할 때뿐이었다.

주휴수당 야간수당은커녕, 커피를 만들다가 심각한 화상을 입었을 때 "가게에 민폐를 끼치는 주제에 건방지게 산재를 요구하냐!"라는 말을 들으며 알바에서 해고되기만 했다. 하루에 13시간씩 알바를 하고도 한 달을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식대가 나오지 않았지만 제품 하나를 사 먹는 것도 돈이 아까워서 하루 종일 굶었다. 집에 가서 매번 폭식을 했고 그 때마다 위가 아팠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었나, 나는 정말 병들어가고 있었다.

이번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은 알바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련이 없는 법안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알바를 해보지 않고 알바가 어떤 삶을 사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안 그래도 식대나 숙박비는 개별 사업장 사장들의 '선의'에 의존해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 비용을 제대로 챙겨주고 싶지 않은 사장들에게 개정 법안은 그럴싸한 명분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악덕 점주'들이 밥도 안 주고 일을 시킨다고 말했다면,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밥을 안 주고 일을 시켜도 괜찮다는 말을 하는 꼴이 되었다. 최저임금에 이미 식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그러니 한 시간 분의 시급보다 비싼 매장의 음식을 사먹으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꼼수는 더욱 판칠 것이며, 알바는 쓰다 버리는 휴지만도 못한 존재들이 될 것이었다.

더 심각하게, 더 많은 이들이 '알바와 같은' 처지에 놓여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처럼 최저임금이 만 원으로 올라간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가난한 생활을 반복할 것이 뻔했다.

최저의 삶도 대통령의 마음속에 있을까

5월 28일, 최저임금 '삭감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을 촉구하는 한 알바의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5월 28일, 최저임금 '삭감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을 촉구하는 한 알바의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 신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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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젊은이들과 함께 삶과 사랑, 꿈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는 글을 썼던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문재인 대통령님, 최저임금 삭감법을 거부해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을 올린 사람은 자신을 "맥도날드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배달 일을 하고 있는 라이더"라고 소개했다. 그는 "배달 일을 하다 목이 타거나 배고프더라도 1000원짜리 음료수 하나, 초코바 하나 맘 놓고 사 먹지 못합니다. 25분 어치의 땀방울이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다. 나는 그 청원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듣고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꿈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이 나의 최저 인생에 대해 안다고 확답할 자신이 없었다. 알바 때문에 오후 5시에 첫 끼니를 먹다 체해서 새벽까지 토를 했던 나의 어느 날을, 너무 배가 고파 매장에서 몰래 사 온 과자를 먹다 해고된 내 친구들을, 돈이 아까워 초코바 하나 사 먹지 못하는 어느 알바의 인생을 대통령은 과연 알고 있을까.

국회에서 통과시킨 최저임금 '삭감법'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내 놓지 않는 대통령이 젊은이들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나는 화가 났다.

최저의 삶을 외면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면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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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과 30일, 나는 거리에 나갔다. 최저임금 '삭감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와 기자회견, 집회를 개최하며 많은 알바들을 만났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일 수도 있지만,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꿈과 아픔"에는 우리의 모습도 들어가 있었다. 이미 최저인 삶이 더 이상 '삭감'되지 않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도 국민이자, 사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청년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했었다. 구의역 참사를 기억한다는 대통령, 사람이 먼저라고 말했던 대통령,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약속하겠다던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했던 발언들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진정 "청년들의 꿈을 응원하고, 현실로 만드는 든든한 언덕"이 되고 싶다면, 지금의 최저임금 '삭감법'을 거부하여야 한다. 정말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대통령은 지금 당장 최저임금 '삭감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저의 인생에 '삭감'을 요구하는 법안을 거부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알바노동자로서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한다. 대통령의 말들 속에 최저의 인생도 포함된 것이라면, 이제는 대통령이 결정해야한다.


태그:#최저임금, #대통령, #삭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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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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