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버찌 보도블럭 - 민들레, 버찌
▲ 버찌 보도블럭 - 민들레, 버찌
ⓒ 김태리

관련사진보기


벚나무엔 버찌열매가 열리고, 매화나무엔 매실열매가 그리고 복사꽃은 복숭아나무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얼마 전이다. 복사꽃, 매화꽃, 벚꽃의 화형이 도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아 친정엄마한테 매번 물어보곤 한다. 조금 구분할라치면 또 여름 오고 내년이면 또 다시 나는 묻겠지.

시골집 작은 뒷산을 오를 때면 작은 꽃 하나들도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하고, 도무지 알아보기 힘든 나물들이 엄마 눈엔 보물찾기 하듯 잘도 찾아졌다. 그걸 보며 나도 어른이 되면 등산길의 풀꽃들, 봄의 새싹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직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을 보니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하루하루가 바쁘긴 한데 그 방향이 어디인지 누굴 위한 건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바쁜 것만 같았던 날들이었다. 바쁘게 사는 건 행복한 거라 생각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보내던 도시의 시간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했고, 부지런히 일하다보면 좋을 날 올 거라고도 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다기 보단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열심히 사는 척 하며 살았던 날들이었다. 별일 없이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거라며 그 어려운 걸 해낸다며 반복되던 날들을 뒤로 하고 결혼 5년차, 30년 넘게 살았던 고향을 떠나 제주도 서귀포로 옮겨 왔다.

육지보다 잘 마르지 않는 빨래가 섬의 습기를 인지시켜주고,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아볼 수 있었던 인터넷쇼핑은 접속하지 않기로 한 지 오래다.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장단점은 있을 것이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불편한 점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하지만 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람음보다 더 강력한 새소리, 닭소리로 아침이 시작되는 이곳에서의 최대 장점은 모두에게 공평한 24시간의 분침이 조금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천천히 흐르는 이 시계를 등에 업고 오늘은 동네산책을 다녀왔다. 스마트폰의 훌륭한 지도서비스와 함께 혼자서도 씩씩하게 걷고 또 걸었다. 도시에서의 산책과는 다르게 이어폰은 집에 두고 가기로 했다. 간간이 차들이 지나가긴 해도 내 산책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시계의 속도에 맞춰 두 다리의 걸음도, 코를 타고 오는 푸르른 내음도,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결 소리도 천천히 즐기기로 했다. 시선 역시 땅을 실컷 보기도 하고 저 멀리 바다를 보기도 하고 걷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며 최대한 여유를 주기로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쉬다 하다 보니 보도블록을 따라 동글동글 작은 열매들이 뒹굴 거리고 있다.

보도블록 버찌열매
▲ 보도블록 버찌열매
ⓒ 김태리

관련사진보기


무심코 지나치다 이번엔 이 뒹굴 거리는 것들의 출처일 나무를 한 번 올려다보기로 한다. "우와!" 하고 저절로 감탄이 흘렀다. 그렇다. 이 나무는 지난 봄 우리를 환하게 웃게 했던 그 벚나무들이었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벚나무의 열매는 버찌였지.'

태어나 처음 보는 벚나무에 열린 버찌였다. 도시에도 있었을 이 열매들은 내 앞의 일들을 처리하느라 한 번도 올려다보지 못했던 그 열매들이었다. 그러고보니 어렴풋한 어린 시절에는 검게 익은 열매를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그 맛이 추억되어 몽글몽글 피어났다. 1년을 기다렸다가 일주일 정도 세상 가장 찬란하게 빛나다 사라지는 벚꽃잎이 아쉬워 매년 내리는 꽃비를 보며 또 한 살 먹었구나 했었다. 벚나무의 역할은 1년 중 딱 일주일이라고 나름 정의하고 있었는데, 초록잎 무성한 벚나무가 이렇게나 빛나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세상 모든 과정들이 빛나는 어떤 순간들을 향해 실은 매 순간 빛나고 있었음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정신없이 흐르던 도시의 시간 속에서 잊고 지내던 것들을 가만히 천천히 느껴보기로 한다.

마이크로산책 손글씨 - 김태리
▲ 마이크로산책 손글씨 - 김태리
ⓒ 김태리

관련사진보기


오늘 다녀온 이 산책길은 다음엔 지도 없이도 다녀올 수 있을 것이고, 오늘 붉었던 열매들은 점점 검게 익어가다 떨어지겠지. 조용히 숲속의 작은 집으로 들어가 최소한의 물로 생활하기도 하고, 작은 텃밭에 감자를 심고, 대파를 심고, 병아리를 부화시키며 한참을 구경하며 자급자족하는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는 등 자연을 소재로 한 방송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소 심심하고 잔잔한 듯해도 그런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는 걸 보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쉬고 싶다.', '조금 천천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의 방법 중 하나로 걷기 위해 멀리 나서는 것이 아닌 집 근처 100m 이내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 관찰하는 '마이크로 산책'이 유행이라고 한다. 작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등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관찰하며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라는 거다.

날씨가 많이 여름에 가까워졌다. 산책의 계절이다. 작정을 하고 떠나는 걷기 말고 짧은 시간도 좋으니 조금은 천천히 사소한 것들을 살필 수 있는 나만의 '마이크로 산책'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마법처럼 깨어날 것이다.

마이크로 산책 자세히 보면 보이는 것들
▲ 마이크로 산책 자세히 보면 보이는 것들
ⓒ 김태리

관련사진보기


벚나무 버찌열매가 열린 벚나무
▲ 벚나무 버찌열매가 열린 벚나무
ⓒ 김태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직접찍은 사진과 직접 쓴 손글씨 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 신이나서 부지런해지는 게으름쟁이 '미스태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