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TV에선 멈추지 않고 음악 예능프로그램이 쏟아진다. 인기가 있으니 공급도 많다. 흥 많고 노래 좋아하는 한국인의 DNA가 반영된 걸까. 그 밖의 인기 요인이라면 음악이 주는 그 자체의 감동이 아무래도 첫째다. 또한 음악을 다각도에서 '새롭게' 즐기게 하는 힘 때문에 음악예능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음악예능의 숫자에 비해 그 프로그램들이 취하는 기본 포맷은 다양해보이지 않는다. 묶어보면 엇비슷한 특징을 띠는데 바로 '경쟁'이란 틀이다.

여기도 경쟁, 저기도 경쟁... 식상해져버린 경연 포맷


지난 2011년 방송한 MBC <나는 가수다>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이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얻었는데 비결은 숨 막히는 경연이라는 '쫄깃한' 설정에 있었다. 비하인드를 보면 경연에 참여하는 가수들의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박정현, 김범수, 김연우, 정엽 등 대한민국에서 보컬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1인자들이 '나는 가수'라는 사명을 등에 업고 직업적 자존심을 건 무대를 선보이는데, 보는 사람도 엄숙 진지 근엄해질 수밖에 없었다. 별로였단 건 아니다. 나 역시 재밌게 본 음악예능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나는 가수다> 이후 쏟아진 음악예능 대부분이 <나가수> 같은 경연 형태를 취함으로써 '쫄깃함'을 늘어뜨리고 식상함으로 향해간다는 점이다.  

목소리만으로 전하는 감동이 있는 <복면가왕>, 가수가 다른 가수의 유명 노래를 부르는 <불후의 명곡>, 추리의 재미를 살린 <히든싱어> <슈가맨>, 일반인이 주는 뭉클함이 있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 노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창작과정을 보여주는 <건반 위의 하이에나> <브레이커스>, 보컬장르를 벗어나 힙합의 세계를 제안한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성악과 클래식 등 국내 최초 크로스오버 보컬리스트를 발굴한 <팬텀싱어>, 국내 유명 가수가 낯선 외국에서 버스킹 하는 <비긴어게인>, 아이돌을 집중 탐구하는 <주간아이돌>, 수많은 가수를 발굴한 < K팝스타 >와 < 슈퍼스타K >, 그리고 워너원과 아이오아이와 함께 '국민 프로듀서'라는 존재를 만든 <프로듀스 101>까지...

신인발굴도 음악예능으로, 휴먼스토리도 음악예능으로, 재미도 음악예능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울 따름이다. 보시다시피 개성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경쟁'이라는 큰 틀 안에서의 변주라는 점에선 새로울 게 없다. <복면가왕>도 결국 가왕을 뽑고, <불후의 명곡>도 관객의 투표로써 트로피의 주인을 가리며, <쇼미더머니>나 <프로듀스101>도 결국 피 말리는 경쟁으로 귀결된다. 훈훈한 마음으로 추억의 가수를 찾아나서는 <슈가맨>마저도 강도는 약하지만 쇼맨의 무대로 우승을 가린다. '경쟁'의 플롯이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스토리인 건 맞지만 여기저기서 수차례 반복됨으로써 진부함을 자아낸다.

<더 콜> <비긴어게인>... 경쟁없어도 재밌다?


최근 이런 판도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경쟁 없는' 새 음악예능이 눈에 띈다. Mnet에서 방영 중인 '콜라보 뮤직쇼' <더 콜>이다. 아티스트가 직접 베일에 싸인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러브콜'을 보내 콜라보 무대를 성사시키고 함께 작업한 신곡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신승훈, 김종국, 김범수, 휘성, 황치열, 블락비 태일, 에일리, 비와이, 환희, 거미, UV, 크러쉬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색다른 조합을 보여준다. 팀 간에 경쟁은 없다.

지난 30일 오전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더 콜> 기자간담회에선 '요즘의 음악예능'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시청자뿐 아니라 음악예능을 만들고 출연하는 당사자들조차도 '새로운 음악예능을 향한 갈망'이 있다는 의미다. 

"솔직히 출연을 앞두고 음악예능이 더 이상 새로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기획의도를 보고 흥미로울 것 같아서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정말 제가 즐겁게 하고 있어서 그것이 시청자분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제가 출연했던 게 다 경연 프로그램이었는데 그것들과 <더 콜>의 다른 점은 '다른 팀은 어떻게 할까'를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팀의 것을 즐기기도 바쁘다. 경쟁을 떠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프로그램 같다." (거미)


JTBC에서 시즌2 방영 중인 <비긴어게인>도 경쟁을 쏙 뺐다. 누가 더 '잘' 부르는지, 누가 더 감동을 주는지 판단하는 경연의 틀을 벗어던졌고 더군다나 낯선 이국에서 노래하는 덕에 자유로움은 배가됐다. 버스킹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 하나가 파생시키는 '다른 지점들'이 꽤 인상적이다. 일단, 스튜디오 경연이 추구하는 '완벽한 음향시스템'이란 고정관념을 탈피했다. 물론 방송인만큼 길거리 공연이라도 음향에 신경은 썼겠지만 '환경이 완벽하지 않아도 어디서든 노래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은 전에 없던 콘셉트다.

<비긴어게인>이 보여준 영리한 지점은 또 있다. 경쟁이 없기 때문에 상실되는 요소, 가령 '긴장감으로부터 오는 재미'나 '쫄깃함'을 외국인들의 시점을 빌림으로써 놓치지 않았단 점이다. 우리 나라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처음 듣는 저 외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저들에게도 좋게 들릴까? 아니면 지루해할까? 이런 궁금증들이 그들의 반응 하나하나를 긴장하며 지켜보게 한다. 호응이 좋을 땐 마치 우승을 경험한 것처럼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출연자들은 숙소에서 미리 맞춰보긴 하지만 길거리 공연 특성상 즉흥성에서 오는 실수를 경험하고, 때론 예상과 다른 반응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것은 경쟁 없이도 쫄깃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또다른 요소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호흡을 맞췄을 때 생겨나는 재미다. 생각해보면 노래라는 게 꼭 완벽하게 잘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다. 이렇게 <비긴어게인>은 '경쟁이 없으면 밋밋할 수 있다'는 최대 약점을 잘 피해간다. 여기에 덤으로, 시청자는 외국인의 시점에서 노래를 들음으로써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해진 노래를 낯설게 들을 수 있다.

경쟁이 없다는 건 '가벼워짐'과 같다. <더 콜>에서 가수들이 보여주는 흥겨움은 보는 이도 덩달아 신나게 한다. <비긴어게인>에서 한 음 한 음 깊이 느끼며 노래하는 가수들의 모습에선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의 본령에 '즐거움'은 있어도 '승리'는 없다. 음악을 스포츠처럼 승패를 가르는 대상으로 본다면 '흥미진진'이라는 플러스 요소를 얻을지 몰라도 '긴장과 경직'이라는 마이너스 요소마저 짊어져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무엇이든 가벼워야 즐길 수 있다.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도 좋지만 이기기 위해 음악 자체를 즐기지 못한다면 팥 빠진 단팥빵을 먹는 것과 다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