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점거하다(Besetzen) 해시태그가 도시 곳곳에 새겨졌다.
 점거하다(Besetzen) 해시태그가 도시 곳곳에 새겨졌다.
ⓒ 신희완

관련사진보기


지난 5월 18일부터 4일간 진행되었던 베를린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인 문화의 카니발(Karneval der Kulturen)에는 약 10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중 일요일에 있었던 거리 축제 행렬에는 66개의 그룹의 4000여 명이 세계 수많은 나라의 춤과 각종 전통 복장을 마음껏 뽐냈고, 이날 하루에만 약 60만 명이 행렬을 즐겼다.

건물 점거 축제

하지만 이날 베를린 정부와 시민들의 더 큰 관심이 쏠린 곳은 다른 카니발 축제 소식이었다. 문화의 카니발이 진행되던 시각 베를린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 8개의 빈 건물(점거자 측 주장 9곳)에 대한 건물점거가 이루어졌다. (관련기사: 임대료 폭등에 뿔난 베를린 시민,빈 건물들 점거시위).

건물 점거의 카니발(Karneval der Besetzungen) 축제라는 명칭 아래, 건물점거시위를 진행한 이들은 수만 명에 달하는 베를린의 노숙자와 소득 대비 월세의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지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건물을 빈 채로 두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베를린 투자 은행(IBB)에 따르면 2016년 말을 기준으로 베를린-브란덴부르크주의 주택회사 소유의 주택 중 임대되지 않은 주택의 비율은 1.6%로 약 1만 700채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수, 석면 제거, 리모델링 등이 필요하지 하지만 너무 오래 빈 건물로 남아있거나, 당장 임대 가능한 주택임에도 임대료가 높아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경우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오전부터 시작된 시위성 건물 점거는 오후 즈음에되선 자진 철수하였다. 하지만 라이셴베르크 거리 114번지와 보른스도르프 거리 37b번지 (Bornsdorfer Straße 37b)의 점거 주택에선 물러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사람이 건물 점거를 한 시위대를 지키며 동시에 함께 시위를 하기 위해 몰려왔고, 건물 앞에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다.

두 점거 주택 중 끝까지 경찰과 대립을 한 채로 수백 명이 함께 시위를 이어나갔던 건물은 보른스도르프 거리 37b번지의 주택이었다. 이 주택은 베를린의 시영 주택회사 중 하나인 슈타트 운트 란트(STADT UND LAND) 소유의 주택이었고, 지난 수년간 리모델링 사업을 기다리기만 한 채 40채의 주택이 텅 비어있던 공동주택이었다.

이후에 알려진 바로는 해당 공동주택은 과거 비행기 추락으로 인한 조사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연이 있었다. 하지만, 슈타트 운트 란트 시영주택회사의 소유 주택 중 빈 건물 비율은 2%로 베를린-브란덴부르크의 주택회사 평균에 비교해 높은 상황이었으니, 건물 점거자에게 상징적인 점거 공간이었다.

이번 동시다발적인 건물 점거 시위는 대다수 건물에서 점거자가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뒤, 큰 충돌 없이 자진 퇴거했다는 점으로 봤을 때, 마지막으로 점거를 유지한 건물도, 강제퇴거가 없이 협상을 통한 평화로운 중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를 위해 보른스도르프 거리 37b번지 현장에는 각종 관계자와 지역 정치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점거자들의 요구는 해당 건물을 지역 공동체를 위한 문화공간과 비상업적이고 자치 운영을 할 수 있는 대안 주거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허가였다. 이를 위해 협상에 나선 것은 슈타트 운트 란트 시영주택회사의 대표이사인 잉고 말터와 도시개발 및 주거청의 주거부문 차관인 제바스티안 쉴이었다. 쉴 차관은 현장에서 점거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보증하였다.

잉고 말터 역시 건물 점거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 요구는 건물을 리모델링 한 이후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들어, 점거자에게 안전 문제 등의 이유로 당장 건물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건물을 떠나기를 거부하였고, 결국 점거자 측 변호사와의 최종 협상 끝에 협상이 결렬된 채로 경찰의 강제퇴거가 진행되었다.

"법이 불공정하다면, 그것에 순응하지 않는 게 우리 권리"

베를린의 도시개발 및 주거청 장관인 카트린 롬프셔(좌파당)은 이번 건물점거가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 저소득층이 점점 더 임대주택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행위였고, 그런 점에서 건물 점거자들이 명확하게 정치적인 이정표를 제시했던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고 발언하였다.

문화의 카니발 축제만을 생각하고 있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건물 점거의 카니발은 잠시 잊고 있었던 베를린의 주거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한, 건물 점거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답게 많은 이들이 이번 건물점거시위와 그들이 던진 메시지에 옹호의 주장을 펼쳤다.

세계의 도시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유명한 사회학자인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은 해외 자본의 부동산 투자가 많은 높은 런던, 뉴욕, 파리, 도쿄 등의 대도시의 도심이 건물의 밀도는 높지만, 부동산 기업 등이 사들이 그 건물 안에 거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죽은 기업 건물로 가득 찬 곳이라고 표현을 하며, 자본 투기와 금융시장의 논리에 의한 투기로 가치가 형성되는 부동산 시장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빈집을 방치하는 것이 단순히 공사의 지연 등으로 인한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라기보다는, 부동산이라는 제한된 자원의 특성을 활용한 자본의 투기를 부추기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대도시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했던 베를린에서는 리모델링 등을 통해서 더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이용하고자 각종 편법으로 기존의 세입자를 쫓아나기도 하고 있다.

베를린 프리드리히샤인-크로이츠베르크 지역구 의원인 케르스틴 볼터(Kerstin Wolter, 좌파당)는 "왜 빈 주택을 점거하는 것이 불법인데, 사람이 살 수 있는 주택을 비워놓는 것은 합법인가? 만약 법이 불공정하다면, 그것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권리다"라고 이야기했고, 슈피겔지 칼럼니스트 마라게테 스토코프스키(Maragete Stokowski) 역시 같은 의미에서 "만약 부동산 투기를 위해 주택을 계속해서 비워 놓는 것이 합법이고, 비어 있는 집을 점거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점거하는 것이 스캔들이 아니라, 그런 법이 스캔들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많은 시민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일시적이었던 건물점거 시위는 이미 베를린 정부가 동의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건물이 본래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은 채 다른 용도의 건물로 사용되거나 아니면 사용되지 않은 채로 빈 건물로 오랜 기간 방치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2014년 제정되었던 용도변경금지법(Zweckentfremdungsverbot)을 지난 2018년 4월 개정을 통해 기준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기존 용도변경금지법은 6개월 이상 허가 없이 건물을 빈 건물로 유지할 수 있었지만, 강화된 용도변경금지법에선 3개월 이상 빈 건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태그:#독일, #베를린, #건물점거, #주거난, #주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베를린과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1. 유튜브: https://bit.ly/2Qbc3vT 2. 아카이빙 블로그: https://intro2berlin.tistory.com 3. 문의: intro2berlin@gmx.de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