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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절이 하수상하다 싶으면 늘 아들에게 전화를 거시는 어머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의 주제는 '북미정상회담 취소'였다. 며칠 전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소시켰을 때에도 놀라서 전화하신 당신이니 이번에는 얼마나 놀라셨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긴.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취소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들, 이거 어떻게 되는 거냐?"
"뭐가요? 북미정상회담?"
"응. 이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북미회담은 열리는 거냐?"
"글쎄요. 저도 이번에는 답이 없네요. 아직 가능성은 있는 것 같은데 우선 지켜봐야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공개서한으로 알린 뒤 본인 트위터 계정에 "애석하게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취소해야만 했다(Sadly, I was forced to cancel the Summit Meeting in Singapore with Kim Jung Un)"고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공개서한으로 알린 뒤 본인 트위터 계정에 "애석하게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취소해야만 했다(Sadly, I was forced to cancel the Summit Meeting in Singapore with Kim Jung Un)"고 썼다.
ⓒ 트럼프 트위터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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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었다. 머쓱했다. 저번에 남북고위급회담 취소 때만 하더라도 북미간의 샅바 싸움일 뿐이라고, 결국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거라고 호언장담했건만 이번에는 나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회담의 주도권을 얻기 위한 트럼프의 '쇼'이기를 간절히 희망할 뿐이었다.

"내 주위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고 다들 난리다."
"뭐라고들 그래요?"
"뭐래긴. 북한이 원래 그렇다고. 이번에 판문점선언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80조 주고 구걸한 거라고 해."
"80조 원이요? 에이. 그건 너무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데 대통령이 어디서 그런 큰돈을 국민 몰래 써요?"
"저번에 임종석 비서실장이 아랍에미리트 가서 받아온 거래."

아득했다. 어째서 어른들은 이런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를 믿고 있는 걸까. 오히려 아랍에미리트는 MB 정부가 벌려놓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현 정부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어준 경우이건만, 어른들은 반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도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는 거래요? 아무리 그래도 보수언론들은 소송이 두려워서라도 거짓말은 못할 텐데."
"몰라. 유튜브에서 그런대."
"유튜브? 어머니는 유튜브가 뭔지 아세요?"
"잘 몰라. 동영상 아니야? 카톡으로 오고 그러던데?"

개미애국방송
▲ 어르신들의 언론 개미애국방송
ⓒ 개미애국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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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유튜브였다. 조금 더 알아보니 유튜브의 '개미애국방송'이라는 곳이 진원지였다. 그곳은 아직도 태극기를 흔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심지어 보수언론마저 좌파가 아닌지 의심하는 극우사이트였다. 지난 촛불집회 때 끊임없이 떠돌아다녔던 가짜뉴스가 이제 이런 경로로 퍼지는 듯했다.

드루킹? 킹크랩?

어머니께 유튜브 이야기를 듣고 나니 궁금해졌다. 그럼 어른들은 드루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야당과 보수언론들은 판문점선언이고, 북미정상회담이고 간에 무조건 드루킹만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실제로 드루킹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

"어머니, 어른들은 드루킹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세요?"
"드루킹? 그 댓글공작? 글쎄. 내 주위 사람들은 드루킹에 대해서는 별 말 없던데?"
"요즘 <조선일보> 보면 신문 한 바닥이 드루킹이던데 아무 말 없어요?"
"몰라. 드루킹, 킹크랩, 막 그러던데...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돈 주고 댓글 달라고 했으면 이해하겠는데 청와대 비서관이 오히려 돈을 받았다고 하고. 헷갈려."

조선일보 5월 18일자 1면
▲ 조선일보의 드루킹 사랑 조선일보 5월 18일자 1면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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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어른들에게 드루킹은 쉽지 않은 주제인 듯했다. 댓글과 관련된 매크로 등의 개념도 어려운데 왜 하필 등장하는 이름들은 드루킹과 킹크랩, 느룹나무 등 하나같이 이상한지. 오죽하면 드루킹을 킹크랩으로 오해하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떠돌까. 야당과 보수언론들은 지방선거를 맞아 끊임없이 드루킹을 떠들지만 이는 확장력이 없다. 정작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들에게 드루킹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댓글로 인한 민주주의의 훼손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보수야당의 지지자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네이버 댓글로 인한 여론 왜곡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것들에 대한 네이버의 방치가 고의적일 수도 있음을 의심하는 이들은 오히려 보수야당을 비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야당과 보수언론들은 계속해서 드루킹 사건이 지난 정권 때 국가기관의 댓글공작보다 심각하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댓글조작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 이들은 그 의견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드루킹 같은 '정치 백수'는 항상 있었던 만큼, 정작 문제는 그들이 매크로를 쉽게 돌리게 놔둔 네이버와 공무원까지 동원하여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려 했던 국가권력에게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네이버는 댓글 조작을 왜 그리 방치했으며 아직까지도 댓글조작을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어른들은 요만큼의 관심도 없다. 오로지 그들의 관심사는 북한뿐이다.

"그래도 언론에서는 댓글이 민주주의를 망친다고 하지 않아요?"
"글쎄. 사람들은 드루킹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박근혜 때도 그랬지만 그런 댓글 가지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진다고. 대신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난리다. 문재인이 우리나라를 북한에다 팔아먹는다고."

요컨대 지방선거와 관련해 드루킹은 보수 세력에게 효과적인 이슈가 아니다.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댓글 조작으로 인한 민주주의에 대한 훼손은 그다지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오직 북한의 위협과 그들과 내통하는지도 모르는 정부 여당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통일각 입구 양쪽에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가 도열해 있다.
▲ 회담 마치고 나오는 남북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통일각 입구 양쪽에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가 도열해 있다.
ⓒ 사진제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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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북한만을 바라보는 지지자들 때문일까?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자 드디어 야당과 보수언론들이 하나같이 정부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드루킹만을 강조하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느니, 예정된 일이었느니 하면서 대한민국과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게 놀아났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들의 태도는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되기를 은근히 기다린 듯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들의 호언장담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남북 정상이 전격적으로 만나고, 이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무색해진 것이다.

물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그럼에도 '북한은 절대 핵폐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모든 것이 쇼라고 폄훼한다. 하지만, 현재 보수 야당의 모습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홀로 파티에 초대받지 않은 아이가 떼를 쓰며 우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그들은 이렇게 몽니를 부리면 6월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그전 날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있었던 4차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하면서 우리의 정치가 낙후된 것은 분단체제 때문임을 밝혔다. 아직도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한국전쟁과 남북 체제경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볼모로 지금의 평화를 향한 담대한 발걸음을 막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해까지 오랜 세월우리는 늘 불안했습니다. 안보 불안과 공포가 경제와 외교에는 물론 국민의 일상적인 삶에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우리의 정치를 낙후시켜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 5월 27일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 중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며 또한 지속성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변화다. 비록 이번 북미정상회담 취소처럼 부침은 계속 있겠지만, 그것이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문제는 적지 않은 이들이 아직까지도 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분단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분단체제에 기대어 안온하게 지내왔던 세력이 끝까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호도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80조 원과 드루킹이 아직까지도 우리 주위를 맴도는 이유이다.

보수 세력에게 요청한다. 이제 그만들 좀 하시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지금은 한반도의 모든 이들이 새로운 평화시대를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태그:#북미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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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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