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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Betts Huntlry(故허철선)선교사는 "나는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 죽으면 갈 수 있겠습니다"라는 유언을 2017년 6월 12일 오전 남기셨습니다.

이에 "당신은 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환영할 것입니다. 당신이 한국에 갈 수 있도록 약속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한 홍장희 목사님의 그 약속은 2018년 5월 17일 오전 10시에 광주 양림동산 선교묘원에 유해를 안장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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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Betts Huntlry(故허철선)선교사는 1936년 7월 9일 샤롯(Charlotte, North Carolina)에서 태어나 신학교 과정을 마친 후 미국 남장로교 멕클렌버그(Mecklenberg)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허마르다(Mrs. Martha L. Huntley)씨와 결혼하였으며 지명 대리 목사 자격으로 세 교회에서 시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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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9월 미국 남장로교회 한국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서울, 순천에서 사역하다가 1969년부터 광주기독병원 원목을 담당하였으며, 1976~1984년까지 제6대 원목실장으로 사역하면서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상담학을 강의하셨습니다. 그리고 신군부에 의해 1985년 강제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가 사역하시다가 2017년 6월 26일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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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허철선(헌트리)선교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광주기독병원은 총상 환자들로 넘쳐 병실을 가득 채우고 복도와 현관 바닥까지 넘칠 때, 방금 지원차량에 올라 헌혈을 외치던 여고생들이 총격을 당하여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모습을 봤습니다. 허철선 선교사는 그 현장을 빠짐없이 사진으로 기록하여 자신의 사택 지하 암실에서 인화한 후 부인이 작성한 글을 함께 비밀리에 세계에 알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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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5.18 당시를 기록하여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기자를 사택에 숨겨 주었으며, 민주화운동에 적극 활동한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부딪치자 자신의 사택을 피신처로 제공하여 국가기관의 감시 속에서도 끝까지 많은 사람들을 지켰으며 당국의 위협이 계속되었지만 귀한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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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련의 행적 때문에 신군부에 의해 1985년 강제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가 사역하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광주사람들보다 더 광주를 사랑했기에 헌신적으로 활동하신 故허철선(헌트리)선교사님의 삶은 광주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올곧게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비록 38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들어난 행적들은 광주시민들에게 영원한 한국인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며 '오월 광주'의 새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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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아 5.18기념재단의 초청으로 5월 15일 광주에 온 故허철선(헌트리)선교사님의 부인과 그 가족들, 그리고 5.18당시에 헬기 기총소사를 광주5.18청문회에서 증언하였던 피터슨 선교사의 부인과 그 가족들을 윤장현 광주광역시장님과 관계기관 및 광주시민들은 따뜻하게 환영했습니다. 이들은 5월 19일 광주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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