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미국은 지난 2017년 6월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해버렸다.

영화 <비포 더 플러드>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교황과 당시(2016년)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를 만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정치적 실천'을 도모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후 대통령으로 트럼프를 선택했고, 당선된 트럼프는 마치 보란 듯이 '지구 온난화' 문제를 묵살한 셈이다.

그렇다면 당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의로운 실천'을 요구했던 이 영화는 휴지통으로 들어가야 할까? 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이기에 이 영화의 가치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가 어느 '화창한 날에 맞이할 대홍수'가 여전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의 대중성 덕분에 설득력 얻는 영화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포스터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포스터 ⓒ RatPac Documentary Films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시작은 미국의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아래 디카프리오). 영화는 일개 배우인 디카프리오가 환경운동의 전문가라는 걸 비웃는 한 TV 영상으로부터 막을 연다. 그리고 영화는 그와 같은 비아냥에 대해 비록 디카프리오가 학자들만큼 많이 알지는 못하고, 정치인들처럼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스무 살 때 고어 대통령을 만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래 꾸준히 이 문제에 대해 천착해 왔음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도 가장 친숙한 배우 디카프리오이기에, 전문가가 아닌 한 개인이 떠나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여정에서 <비포 더 플러드>는 더 설득력을 지닌다.

<비포 더 플러드>는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선사했던 영화 <레버넌트>로부터 시작된다. 혹한의 날씨에 야생을 견디며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인물을 그려내는 영화 <레버넌트>의 배경은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이다. 그에 걸맞는 영화 배경을 찾아 캐나다로 간 촬영진은 영화에 걸맞지 않게 눈이 다 녹아버린 상황에 고심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2014년 유엔 환경대사가 된 디카프리오. 그는 이후 약 2년의 여정 동안 지구 온난화의 현장을 직접 찾아든다.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가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라 생각할 만큼 무지했던 젊은 날의 디카프리오. 지구의 에어컨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북극에서 급속도로 녹아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2040년만 되도 얼음이 녹아 항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증언들을 마주한다. 이에 소박했던 그의 생각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지구의 날을 기점으로 지구 온난화를 알리는 데 직접 앞장서기 시작한다.

화석연료 기업의 후원받는 언론... 지구 온난화는 '정치의 문제'

디카프리오와 함께 찾아본 지구 온난화의 현장. 그 첫 지역은 그가 사는 미국의 플로리다 지역이다. '화창한 날의 홍수', 그 이상한 단어의 조합이 현실이 되고 있는 곳. 상승된 해수면은 플로리다의 취약 지역을 상시적으로 홍수로 몰아넣는다.

해결을 위해 플로리다 시는 도로를 들어 올리고, 물을 빼는 전기 펌프를 작동시킨다. 하지만 2011년 공화당의 주지사는 취임 이후 다급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로비'와 '산업'이 얽혀있는 지구 온난화의 현실. 97%의 과학자가 지구 온난화에 동의해도, '지구는 오히려 냉각되고 있다'거나 '전례 없는 온난화는 거짓'이라는 등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 현실.

과학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화석 연료 사업자와 기업체의 후원을 받는 언론의 이간질에 대중이 미혹되는 현실은 결국 지구 온난화가 환경의 문제일 뿐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걸 말해준다. 이 지점을 디카프리오는 다큐에서 분명하게 짚는다.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한 장면.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한 장면. ⓒ RatPac Documentary Films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문제 의식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1958년 미국의 한 TV 과학 프로그램은 이미 당시에 과학계가 기후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큐는 묻는다. '그 당시에 지구에 닥친 문제점을 인지하고 해결책을 실천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까'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단기적인 화석 연료 수익의 유혹이 세상을 장악한다. 과학자들의 주장과 인식 대신 사회적 신용도가 높은 몇몇 유명 인사들이 후원을 받고 방송을 통해 '인간이 기후를 바꿀 수 없다'는 발언 등이 더 영향력을 얻는다. 다큐에 따르면 미 의회도 장악된 듯하다. 기후 온난화에 관련된 법안은 번번히 저지되고,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라는 걸 다큐에선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있어서 중국은 얼마나 다를까? 지금까지는 미국이 세계 제1의 오염국가였다. 하지만 최근 그 지위를 중국이 이어받았다. 중국에서 대기 오염은 가장 첨예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시민들을 대거 거리의 시위로 불러들이는 건 바로 대기 문제이다. 학자들은 전국 오염도를 데이터 베이스화 했고, 이런 정보는 곧 시민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덕분에 정부의 녹색 성장 정책으로 추동했고,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풍력, 태양력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어떨까? 세계 제3위의 탄소 배출 국가 인도의 문제는 복잡하다. 인도인 중 7억 명이 전기와 불빛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 단 30%의 가정만이 전기를 사용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여전히 '소똥 케이크'를 활용하여 요리를 하고 있다. 인도의 국가적 과제는 개발과 빈민 구제이다. 온 국민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이고, 감당할 수 있는 전기 요금 때문에 석탄 사용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의 에너지 담당 장관에게 디카프리오는 태양 에너지를 권유한다. 장관은 반문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태양 에너지를 쓰지 그러느냐'고. 미국의 에너지 소비는 중국의 10배, 인도의 3.5배이다. 문제는 미국인의 생활 스타일이 전 세계 국민의 로망이라는 것이다. 즉 세계인의 롤모델이 되어버린 미국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즉 미국식 생활 방식과 소비 습관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의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한 장면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한 장면 ⓒ RatPac Documentary Films


고통받는 지구의 '약한 고리', 생태계가 위험하다

미국 등 부유한 나라가 대거 사용한 화석 에너지로 인해 정작 고통을 받는 건 세계의 약한 고리인 약소국들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계절에 맞지 않는 폭우가 내려 갓 농사를 지은 농작물들이 썩어 들어간다. 1년의 작황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태평양의 낙원 키리바시에서는 홍수로 사람들이 쓰는 식수로 쓰는 연못에 바닷물이 유입되고 있다. 조만간 팔라우 섬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해안의 생태계도 위협받고 있다.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의 사람들이 산호초 어장에서 먹고 살고 있다. 하지만 바닷물 안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산호초는 점점 죽어가는 중이다. 미래의 바다는 어쩌면 지금의 바다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산호초의 파괴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굶주림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열대 우림도 마찬가지다. 이산화탄소의 저장 창고인 열대 우림은 값싼 팜유의 생산을 위해 고의적으로 불을 놓는 사람들 때문에 급속도로 파괴되는 중이다. 팜유 산업의 팽창은 열대 우림의 80%를 파괴했고, 코뿔소, 코끼리, 오랑우탄 등의 동물은 '난민'이 되었다. 그나마 이들 동물은 불로 죽어간 다수의 동물에 비하면 '운좋은 생존자'에 속한다. 영화 <레버넌트>의 눈쌓은 풍경을 위해 영화 제작진은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아르헨티나까지 5000km의 여정을 달린다. 지구에서 눈을 본다는 게 점점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12억 년 동안 지구는 안정적인 상태였다. 인류는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모두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지구 온난화로 약 4도 정도의 상승이 예상되는 미래의 지구는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일부 매체에서는 오히려 '지구가 냉각되어가고 있다'고 떠들지만, 지구 온난화가 당장 폭염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일시적으로 유럽의 경우처럼 한파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의 온도가 2도만 올라가도 산호초는 절멸될 것이다. 그야말로 기후 변화의 '티핑 포인트'이다. 파리 기후 협약은 이 때문에 지구 온도 변화를 2도, 1.5도 내로 제한하기로 노력할 것을 여러 국가와 협상했다. 지구 밖에서 본 지구의 대기는 양파 껍질처럼 얇아 보인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건, 얄팍한 껍질 속의 지구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한 장면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한 장면 ⓒ RatPac Documentary Films


지금 가능한 노력들... 늦었지만 아직 포기할 수 없기에

지구를 위협하는 온난화에 대한 대비는 이미 늦은 걸까? 전기차로 이름을 날린 일론 머스크는 '기가 팩토리'를 통해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배터리'는 개도국의 발전소를 대신할 수 있는 용량의 전기를 내장한 환경 발명품이다. 즉, 유선 전화에서 무선 전화로 패러다임이 변화했듯, 기가 팩토리의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더 이상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석탄을 태울 필요가 없다. 현대 과학의 발전이 새로운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낸 것이다.

하지만 다큐에서 일론 머스크는 자기 개인의 노력으로 전세계에 기가 팩토리를 세울 수는 없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세계 각국의 정치권 차원에서 자구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예로 거론된 것 중 하나는 '탄소세'의 도입이다. 대기 중에 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행위와 사업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경제적 방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이산화탄소에 세금을 매긴다고?'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면, 불과 몇 십년 전 '담배에 세금을 매긴다고?'하며 고개를 갸웃대던 상황을 연상해 보면 어떨까. 계몽적 방식의 사회적 책임감 호소보다. '탄소세'와 같은 직접적인 경제적 방식이 급격해지는 위기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는 그저 정부나 정치권의 몫만은 아니다. 하다못해 우리가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는 식사 습관만 바꿔도 온난화의 가속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가 소의 먹이다. 또한 소가 배출하는 메탄은 강력한 온실 가스의 주범이다. 반면 소가 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악영향에 비하면 닭은 1/10 정도의 영향력을 끼칠 뿐이다. 그래서일까, 디카프리오는 채식주의를 선언했다. 이는 결국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한 우리의 실천은 생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탄소세와 같은 세금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탄소에 대한 세금은 단순히 세금의 증가가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다른 피해를 줄일 수 있으므로 '세금의 이동'으로 홍보되어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거시적 차원의 변화가 우리의 알 수 없는 미래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생각과 삶이 변화하면 정치인들도 어쩔 수 없이 의견을 바꿀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대중에 설득력 있고 유효한 인식 변화의 수단으로 영화 <비포 더 플러드>의 의의는 크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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