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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이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 철거 현장을 방문해,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이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 철거 현장을 방문해,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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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지역 내 퇴거를 하기 전 원주민, 그곳에 사는 주민과 충분히 상의해야 합니다. 한국은 그런 퇴거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거 같습니다."

강제 퇴거와 관련한 대화가 오가던 중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 특별보고관(아래 유엔특보)은 "한 가지 명확히(clarify) 해야 할 게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유엔 인권보고관의 눈에도 한국의 재개발 강제퇴거 방식은 '비인권적'이었다.

레일라니 유엔특보는 국내 조사 일정이 마무리돼 가는 시점인 지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 취재진과 만났다. 레일라니 유엔특보는 지난 14일부터 열흘간 주거권 실태 조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을 찾은 이유에 대해 그는 "유엔 헤비타트에서 시민단들이 주거 실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면서 "한국이 선진국인데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레일라니 유엔특보는 정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과 서울역 쪽방촌 등에서 열악한 주거 현장도 가봤다. 그는 우선 "한국 정부가 주거를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인상 깊었다"며 "전세계를 다녀봐도 주거를 인권 문제와 결부시키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호평했다.

물론 좋은 소리만 하진 않았다. 레일라니 유엔 특보는 "쪽방을 가봤는데 가본 곳이 4~5㎡ 크기. 듣기로는 그보다 작은 2㎡ 정도 쪽방도 있다 들었다"면서 "한국은 부자나라인데 그런 공간에 산다는 것 놀라웠다"고 했다.

아울러 "성소수자(LGBTQ)를 인권 보호 대상으로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며 "성소수자를 보호할 취약계층이라 보지 않는 거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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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재건축 구역에서 원주민에 대한 '강제퇴거'와 관련된 질문을 하자, 그의 말은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강제퇴거' 제도는 유엔 사회권위원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강제퇴거를 실시하기 전 원주민과의 충분한 협의, 강제퇴거시 적절한 대안 주거 마련과 충분한 보상 등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충분한 협의는커녕 강제 퇴거 절차에서 원주민에 대한 각종 폭력이 이뤄지고 있다.

아현2구역 등 재건축 현장을 둘러본 레일라니 유엔특보도 "한국은 퇴거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거 같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는 이어 "재개발과 관련된 (법적, 제도적) 내용이 대규모 전면 철거나 인권 고려 않는 부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입법을 통해 바꾸거나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레일라니 유엔 특보와의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 카보 베르데와 세르비아, 인도, 포르투갈, 칠레 등에 이어 여섯 번째 조사 국가로 한국을 선정했다.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에 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보고관은 특정지역만 몰아서 방문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골고루 돌아다녀야 한다. 동아시아도 방문하고 싶었다. 그런데 에콰도르 키토에서 UN 해비타트 미팅을 할 때, 한국 NGO에서 참여해 주거 실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 그때까지 한국은 상당히 선진국이고 경제 대국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한국 정부에서도 흔쾌히 오라고 해서 오게 됐다. "

- 당신이 한국에서 특히 주목했던 주거 문제는?
"먼저 한국 정부가 주거를 인권 문제로 보는 것, 주거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전 세계를 돌아 다녀 봐도 정부에서 주거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인권과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국가는 많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그런 부분이 인상 깊었다. 최소한 자료상으로나 면담을 할 때 주거가 인권 문제라 이야기한 게 인상 깊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고시원은 못가고, 쪽방을 가봤는데 가본 곳이 4~5㎡ 크기. 듣기로는 그보다 작은 2㎡ 정도 쪽방도 있다 들었다. '가디언'지에 홍콩의 코핀홈(관처럼 좁은 방을 지칭) 사진이 실렸는데, 한국도 그 정도 공간에 있다는 것. 한국은 부자나라인데 그런 공간에 산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 하나는 성소수자(LGBTQ)를 인권 보호 대상으로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성소수자를 보호할 취약계층이라 보지 않는 거 같다. 주거 관련 성소수자는 노숙자 인구가 가장 빨리 늘어나는 집단에 속한다. 차별 때문에 그렇다. 한국에선 성소수자 보호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거 같다."

- 한국에서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지속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게 용산 참사다. 아현2구역 등 재건축 지역도 현장 조사를 했는데, 어떤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가?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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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핵심은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할 때, 완전히 건물을 없애고 그냥 주민들 이주시키고 개발하면 된다는 접근법이다. 정부와 이야기하니까 대규모 전면철거보다 소규모 도시 재생 쪽으로 패러다임을 옮기고 있다 이야기를 했다. 한국 정부가 전면 철거 방식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 인권 관점에서도 개발은 대규모 전면 철거 방식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도시재생 형태로 옮겨가고 있다.

아직까지 아시아나 아프리카는 전면 철거 방식의 개발을 하고 있다. 주민 주도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에서 건강에 심각한 위협 받는 독성물질 제거, 인프라 확충 필요를 인지할 수 있지만, 주민과 협의해야 한다. 주민들이 거기 사니까 필요한 것이 뭔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국제 인권법에 퇴거는 불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국제 인권법에서는 퇴거와 관련 기준을 제시한다. 가장 첫 번째 기준이 주민 위한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라. 개발할 때 주민에 물어봐야 한다는 것. 그들이 가장 필요한 게 뭔지, 도로가 필요한지 새 인프라가 필요한지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 실현을 위한 지원을 정부가 하는 것이다.

여러 대안 고민했는데도 퇴거 밖에 방법 없을 경우. 퇴거를 진행하면서 인권 개념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퇴거 시키더라도 원래 주민 살던 곳과 가까운 곳에 주거지를 마련해 주거나 거기와 멀지 않은 곳. 주변 지역 3km 이내에 거주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주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줘서 적정 주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주민이 개발 방식에 불만 있거나 반대할 때 그들 목소리를 알릴 채널들도 마련돼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하게 해도 될까요?(Can I clarify one thing?)

주민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 소유주가 아니라. 거기 사는 임차인(세입자)들과 협의해야 한다. 아까 말한 모든 대안을 고민하고 방법 없을 때 퇴거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퇴거 원칙이 한국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 거 같다. 원주민들이 민원 제기할 채널도 없는 거 같다."

- 강제 철거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는 어떤 내용을 권고하고 싶나?
"강제퇴거 관련 현재 재개발 패러다임을 수정하는 부분은 잘하고 있다. 소규모 도시재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부분 말이다. 소규모 도시 재생을 실시할 때 인권법 기준에 따를 수 있도록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촉구할 것이다. 강제퇴거 관련 원칙들이 한국에 적용될 부분도 있다. 재개발과 관련된 (법적, 제도적) 내용이 대규모 전면 철거나 인권 고려 않는 부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입법을 통해 바꾸거나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 당신은 주거의 금융화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나는 한국 정부의 공적임대주택, 서울시의 역세권청년주택 등도 주거 금융화를 돕는 정책이라고 판단한다. 이 두 정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전세계 극소수 부자들. 수조 달러의 자금력을 확보한 사모펀드들이 전세계 부동산에 투자해서 전반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고 서민이 살 수 없는 주거환경을 만든다는 부분이 문제다. 또 주택 소유와 관련해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시장 규제 매커니즘을 갖고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사적 이익을 위한 과정이 이뤄지더라도 정부가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를 해야 한다.

한국에선 부동산 규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는 방식은 나와 있지 않다 임대차 계약 기간이 2년으로 돼 있는데, 2년 뒤 맘대로 임대료 올릴 수 있어 많은 사람이 떠돌아다닐 수 있다. 어떤 사람은 20년간 16번 이상 이사했다고 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어렵다. 선진국은 임차인과 임대인에 대한 규제 시스템 있고 임차인을 더 보호할 수 있는 구조를 도입하고 있다."

- 서울시의 청년주택 등은 기업 특혜라고 시민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동의하나?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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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청년주택 정책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언급하기 어렵지만 (청년 관련 주거 정책과 관련해) 확실한 것은 청년들이 주택에 접근하는 구조가 취약한 상황으로 보인다. 부모가 부자면 부동산 임대료가 높기 때문에 부자는 전세 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취약하게 살아야 한다.

전반적인 청년 주거에 대해 일반적 관심을 갖고 있고, 정부의 이니셔티브에서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는가, 민간인가 정부인가 누구인가. 그런 부분에 대해 조사가 더 필요하다. 만약 그런 상황(임대 주택을 통해 소수 자본가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상황)이 된다면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 당신이 생각하는 '주거'를 정의한다면?
"나는 주거권(Right)이라고 말한다. 집이란 것은 평화롭고 안정되고 존엄 있는 삶을 사는 공간. 그런 공간이 주어지는 게 주거권의 핵심 가치다. 집이란 존엄있는 삶을 위한 가장 큰 기초다. 집이 없으면 아프고 전염병 걸리고 치료도 못 받고 결국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존엄있는 삶을 위한 가장 근본이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집은 은신처라고 할 수 있는 공간, 힘든 일 끝나고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가족을 만들고 가족과 같이 할 수 있는 공간. 가족과 평화롭게 차를 마시며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을 인권으로써 보장받아야 한다." 


태그:#강제퇴거,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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