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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마을라디오 '별수원'에 나온 한진희씨. 미소로 긴장감을 덮으려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지난 11일 수원 영상 미디어 센터에서 팟캐스트 녹음이 끝나고 진희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아이고,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요. 녹음 다시 갈까요? 이젠 잘할 수 있어요. 하하."

그러자 스물 아홉의 수원시의원 후보의 생기가 살아났다.

마을라디오에 출연한 한진희씨 수원 마을라디오 '별수원'의 지방 선거 특집 게스트로 출연한 한진희 수원시의원 후보
▲ 마을라디오에 출연한 한진희씨 수원 마을라디오 '별수원'의 지방 선거 특집 게스트로 출연한 한진희 수원시의원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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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희씨는 녹색당 시의원 후보다. 탈핵과 친환경, 기본소득과 평등, 동물권과 생명 등의 키워드로 연상되는 녹색당이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처음 듣거나 잘 몰랐다. 녹색어머니회와도, 안철수씨와도 관계 없다는 진희씨는 이번에 3인을 뽑는 우만1·2동, 인계동, 행궁동, 지동 선거구(수원시 사선거구)에 시의원으로 출마했다.

"지난 2012년 총선 때 엄청나게 기대를 했어요. 제 주변은 다 녹색당을 비례로 찍으셨다 하지, 선거 분위기도 엄청 좋았지... 그런데 열어보니 뜨악! 하하... 저는 2016년에 의왕·과천에 출마했던 홍지숙 후보와 한 달 넘게 함께하면서 정말 단단해졌어요."

"제 말과 제 삶이 같아지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녹색당 한진희입니다. 지나는 주민 분께 다가가 명함을 나눠주고 있는 한진희씨
▲ 안녕하세요, 녹색당 한진희입니다. 지나는 주민 분께 다가가 명함을 나눠주고 있는 한진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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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당을 응원하고 비판하는 '운동'을 넘어, 정당을 직접 만들고 참여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나 함께한 녹색당 사람들 열의가 대단했다. 진희씨도 시민의 정치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변화하는 자신을 느꼈다고 했다.

"정당을 하며 내 언어로, 내 말을 하게 됐어요. 제 삶이 제 말과 같아지고 있었죠. 후보로 나선 지금도, 제가 또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강해지고 싶어하는 나를 매일 마주해요."

신생 소수 정당의 청년 후보는 선거와 관련한 모든 일을 후보가 직접 해야 했다. 선거 공보물도 후보가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전국의 당원들이 지원을 와 줄 때마다 용기가 솟았고 지금까지 계속 걸어올 수 있었다.

경로당 가시는 길이세요? 한진희씨가 인사드리자 할머니께서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 경로당 가시는 길이세요? 한진희씨가 인사드리자 할머니께서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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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씨는 길가며 만나는 시민 한 분 한 분 놓치지 않고 달려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녹색당 시의원후보 한진희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 이곳 수원시의원 후보로 나왔습니다. 환경과 생명, 평화의 녹색당 꼭 기억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주민이 말을 들어주면 잠시 대화를 나누고 악수했다. 마침 반가워 하는 할머니와 한참 말씀을 나누더니 진희씨는 경로당을 쳐다봤다. 그렇게 불쑥 들어간 경로당에서는 마침 점심상을 차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이번에 시의원 후보로 나온 녹색당 훕.... 제가 옮겨드릴게요. 이리 주세요."

경로당 들어서자 "이리 와, 와서 밥 좀 먹어"

저 주세요, 제가 할게요.  인계동 선경 아파트 경로당에 인사차 간 한진희씨가 밥을 나르고 있다.
▲ 저 주세요, 제가 할게요. 인계동 선경 아파트 경로당에 인사차 간 한진희씨가 밥을 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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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마자 할머니들이 손수 밥을 지어 같이 나눠 드시는 것을 본 진희씨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녹색 점퍼의 불청객을 의아해 하는 분께 수원시의원 후보라고 말하며 밥을 날랐다. 그런데 앉아서 기다리시던 할아버지들께 청년 후보가 밥을 나눠드리자 옆에 계시는 할머니께서 한마디 툭 던지졌다.

"할아버지들은 절대 꼼짝 안 해."

그러자 손주뻘 되는 초록색 후보도 한마디 거들었다.

"할아버님도 할머니와 같이 차리시면 밥이 훠~얼씬 더 맛있어요."

그렇게 상차림을 마친 진희씨를 어르신들께서 밥상 앞으로 불렀다.

"이리와 밥 먹고 가. 점심 먹어야 또 다니지. 이거 우리가 다 해 갖고 온 거야. 걱정 말고 먹어."
"아이고 청년이 아주 참해. 우리 손주 같아. 많이 먹고 잘 돼야지."

청년이 아주 참하네 점심 상차림과 치우길 함께 한 한진희 후보가 식사를 마치신 어르신들 앞에 앉았다.
▲ 청년이 아주 참하네 점심 상차림과 치우길 함께 한 한진희 후보가 식사를 마치신 어르신들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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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씨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밥을 아주 맛있게, 열심히 먹었다. 어르신들께서 질문을 하면 답을 했다.

"네, 녹색당이요. 우만동에 살아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다 먹고 밥값은 해야 하니 설거지를 하고 가겠다니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말렸다.

"그건 우리가 할 테니 여기 앉아 쉬었다 가."

"씨앗이 되고 싶어요"

한진희씨 가방에 달린 뱃지들 강정평화, 미투, 동백꽃, 세월호 리본과 18세 선거권, 녹색당 등의 뱃지가 주렁 주렁 달려있다.
▲ 한진희씨 가방에 달린 뱃지들 강정평화, 미투, 동백꽃, 세월호 리본과 18세 선거권, 녹색당 등의 뱃지가 주렁 주렁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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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건너는 녹색당 수원시의원 후보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했던 시의원 후보는 하루 2만 보 이상 걸었다.
▲ 횡단보도를 건너는 녹색당 수원시의원 후보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했던 시의원 후보는 하루 2만 보 이상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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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희씨의 가방에 달린 뱃지들은 진희씨가 걸을 때마다 말을 걸듯이 흔들렸다. 경로당 어르신들이 청년 마음에 담겨 있는 강정평화 뱃지와 노란 세월호 리본을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른다. 다만,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드리고 간 오래된 시의원 후보들보다, 이렇게 찾아와, 얼결이라도 밥을 같이 차렸던 서툰 청년 후보를, 반가워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너무 잘 보여요."

다른 후보들은 지역마다 봉사 단체나 교회, 산악회 등에 함께했지만, 청년은 수원시 차원의 활동, 이를테면 주민참여예산이나 청년네트워크 등을 해왔기에 지역 모임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소셜미디어의 친구들이 전부다. 이런 자신을 두고 진희씨가 근사한 표현으로 답했다.

"널 보면 힘이 생긴다고 친구들이 말해줘요. 누군가 나를 보고 희망을 갖는, 씨앗이 되고 싶어요."

짠~ 여기가 녹색당 사무실이에요! 수원시 우만동에 있는 녹색당 사무실에 도착한 한진희씨가 문 앞에서 안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짠~ 여기가 녹색당 사무실이에요! 수원시 우만동에 있는 녹색당 사무실에 도착한 한진희씨가 문 앞에서 안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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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줄을 알면서도 자꾸 찾아가게 되고, 알아보고 조사하게 되고... 제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곁에 벌어지고 있던 현장들을 직접 봤던 진희씨는 뒤돌아 갈 수 없었다. 이러면 안된다고, 반대한다고 외칠 때마다 마음에 악과 미움만 남는 게 아닐까, 수없이 자신을 돌아봤단다. 그런 현장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청년이 택한 것은 희망을 찾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세월호 때도 그랬고, 밀양의 어르신들도 그랬고, 그때마다 적폐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들을 봐 왔어요. 우리 동네와 내 주변 일상에서도 쉽게 만나는 그것들을 정치적으로 풀어내고 싶어요.

왜 하고 많은 정당 중에 녹색당이냐고요? 생명, 평화 이런 가치도 잘 맞았지만, 소수자들... 말하자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함께 내주는 그 실천 가치가 저와 너무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오래된 정당의 후보

외면할 수 없었어요.  출마한 이유를 밝히는 한진희 후보. 우만동, 인계동, 행궁동, 지동의 넓은 선거구에서 3명의 수원시의원이 선출되기에 기대한다고 했다.
▲ 외면할 수 없었어요. 출마한 이유를 밝히는 한진희 후보. 우만동, 인계동, 행궁동, 지동의 넓은 선거구에서 3명의 수원시의원이 선출되기에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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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하진 않았어도 사랑은 부족함 없이 받으며 빈곤한 제3세계 지원을 위해 국제 개발 영역을 공부했던 그는 우리 안의 빈곤함을 목격하고 자신의 길을 정했다고 한다. 수원여자고교 시절 두발 자유를 논하다 자신을 때린 선생님께 사과를 받기 위해 등교 거부로 맞서기도 했다고.

"현 정치가 대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하는 정당의 한 사람이요. 거대 정당을 꿈꾸지 않아요. 부족한 부분을 채워 완전함을 이루는 정당이길 바라요."

진희씨는 6년 차의 녹색당이 가장 오래된 정당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며 농담 속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진희 수원시의원 (우만 1동, 2동, 인계동, 행궁동, 지동) 후보 613지방 선거에 수원시의원에 출마한 녹색당 한진희씨가 전화를 받고 있다.
▲ 한진희 수원시의원 (우만 1동, 2동, 인계동, 행궁동, 지동) 후보 613지방 선거에 수원시의원에 출마한 녹색당 한진희씨가 전화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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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정당들이 신생 정당을 싹트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선거구 제도를 조용히 바꿨죠. 이번 지방 선거에서 3인 선거구에 제가 나온 이유가 그거에요.  과거엔 정당 지지율이 2%인가 3%를 넘지 못하면 정당을 아예 없애버린 적도 있어요. 녹색당도 당했었지만 헌법소원을 통해 이름을 지켜냈었죠."

아픈 현장을 지키던 소수 정당들이 누구보다 가장 먼저 나서 촛불을 들었다. 그렇게 시민들과 함께 현 정부를 만들었지만, 이번 지방 선거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선택을 기다리는 한진희씨가 흑백 사진으로 남을 지, 초록빛 잎을 달고 살아날 지, 오로지 전적으로 유권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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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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