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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미국으로 던져진 가족의 미국 체류기입니다. - 기자말

바야흐로 축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곳에서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유소년기 아이들을 대상으로 축구 클럽이 운영된다. 한국처럼 유명한 축구 선수의 이름을 딴 축구 클럽은 아니다.

이름이 좀 특이한데 'FFPS(Fun, Fair, Positive Soccer 재미있고, 공정하고, 긍정적인 축구 클럽)'이다. 경기가 있는 토요일이면 동시에 미니 축구장 30여 개를 꽉 채우는 제법 인기 있는 축구 클럽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곳에 온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지인의 추천으로 둘째가 축구 클럽에 가입했다. 운영 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남녀 불문, 나이와 거주 지역이 비슷한 아이들 7, 8명을 한 팀으로 묶는다. 시즌별 $150을 낸다.

그 돈으로 유니폼을 맞추고, 클럽 운영 경비로 사용된다. 한 시즌은 8주로 구성되고 각 팀 별로 일주일에 두 번씩 모인다. 한 번은 주중에 팀 자체 연습시간, 다른 한 번은 토요일 다른 팀과 게임을 진행한다. 심판도 있다.

부모들이 만든 하이파이브 터널을 지나가려고 기다리는 아이들.
 부모들이 만든 하이파이브 터널을 지나가려고 기다리는 아이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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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150로 다 충당이 될까? 어느 기업에서 후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궁금해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의 후원이 아니어도 이 축구클럽이 운영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코치, 각 팀의 매니저, 심판, 운영위원 등이 모두 아이들의 부모였다. 즉, 자원봉사가 이 클럽을 운영하는 핵심 요소인 것이다. 아무래도 축구이다 보니 엄마보다는 아빠들의 자원활동이 확실히 많았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남편은 호기롭게 보조코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코치가 자리를 비울 때 코치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가르쳐 주는 역할에 자원한 것이었다. 보조코치도 코치이기 때문에 사전에 FFPS 클럽에서 운영하는 '코치 교육'을 받아야 했다.

어느 한가롭던 토요일 오전에 남편은 '교육'을 받으러 나갔고, 저녁 무렵에 돌아온 남편은 자리에 앉자마자 FFPS에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하지도 않은 '코치 사직서'를 작성/제출했다.

"(코치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가서 들어보니까 다른 아빠들은 평일에 오후 4시면 집에 온데. 그런 사람들이 코치를 하는 거지 나처럼 오후 7시 넘어 퇴근하고, 야근도 해야 하는데... 뭣도 모르고 맡았다가 큰 일 날 뻔했어."

묻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사임의 변'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남편은 그곳에 온 다른 아빠들의 보편적인 퇴근 시간에 많이 놀란 듯싶었다.

다른 인종, 다른 코치 그런데 비슷한 퇴근 시간

매 경기가 끝나면 양쪽 팀의 부모들이 터널을 만들고 그 사이로 아이들이 지나가며 모두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매 경기가 끝나면 양쪽 팀의 부모들이 터널을 만들고 그 사이로 아이들이 지나가며 모두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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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3번의 축구 시즌을 지나면서 3명의 코치를 만났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백인 코치, 유학을 와서 자리를 잡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흑인 코치, 멕시코 출신 코치까지 다양했다.

세 번의 시즌을 지내면서 다른 팀과 총 24차례 경기를 가졌다. 우리 아이 코치뿐 아니라 상대팀 코치 중에서 동양인 코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더욱이 한국인 아빠가 코치를 한다는 소식은 주변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언어가 문제였을까? 그러나 8살 아이들 대상으로 몸을 주로 쓰는 운동인데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싶었다. 내 나름의 결론은 '직장문화' 영향이 아닌가 싶다. 평일 한 차례 진행되는 연습은 보통  오후 5, 6시에 시작한다. 운동장에 5시까지 나오려면 코치 아빠는 회사에서 5시 전에는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남편은 아이 앞에서 코치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리드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에 다니는 남편에게 보조코치는 사치였다. 나는 충분히 남편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은 지극히 평범하다. 일 중독도 아니고, 승진에 목을 매는 스타일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보통이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업무량과 퇴근 시간을 보유한 그는 그 이후로 한번도 코치를 지원하지 않았다.

"외근때문에 가방 싸서 오후 5시에 사무실을 나서는데 1층 데스크에 있는 경비 아저씨가 'Good night' 하더라. 겨우 오후 5시인데."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남편은 오후에 들은 '굿 나잇' 인사가 꽤 신기했던 모양인지 집에 와서 들려줬다. 코치로 자원봉사 하려면 더 일찍 굿 나잇 인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많은 코치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자원봉사가 가능한 걸까.

"Nice try", "Good job" 칭찬만 허용되는 긍정적 운영 방침

시즌이 끝나면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들이 파티를 열어준다. 그때 아이들은 트로피도 받고 신나게 놀기도 한다.
 시즌이 끝나면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들이 파티를 열어준다. 그때 아이들은 트로피도 받고 신나게 놀기도 한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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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인상 깊은 것은 이 축구클럽의 운영 방침이었다. 게임 시작 전에 코치에게 가장 많이 듣는 '필드 규칙'은 응원에 대한 것이다. 경기 중인 아이에게 절대 '코칭'을 하지 말라는 지적이다.

어쩌다 한번씩 흥분한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골을 넣으라는 등, 패스하라는 등의 코칭을 하게 되면 어김없이 코치가 달려와서 제재한다. 판단과 게임은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것이고, 부모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치의 설명을 듣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중에는 코치도 아이들에게 어떤 경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Nice try", "Good job" 등의 표현으로 아이들을 응원할 뿐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의 친선경기이기 때문에 가능할 일이겠으나 그 운영 방침이 크게 와 닿았다.

가끔 응원을 하기도 하는데 좀 당황스럽게 들릴 때가 있다. "Almost!(아깝다)" 이 표현은 아이가 찬 공이 골대 방향 비슷하게 갔을 때 하는 표현이다. 그럴 때는 남편과 눈을 맞추고 찡긋 웃는다. 솔직히 말하면, 전혀 아까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더 황당한 골을 찼을 때에도 부모들은 "Nice try!(시도가 좋아)"라고 격려해 준다. "Nice try"라는 격려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여름과 한겨울을 제외한 매주 토요일 어김없이 우리 가족은 즐겁고 유쾌한 기대를 가지고 축구 경기장으로 향한다. 이번 시즌에도 아이는 'Almost, Good job, nice try'를 한 가득 안고 돌아올 것이다.


태그:#미국, #축구,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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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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