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지 선수

한수지 선수 ⓒ 박진철


한수지(30세·182cm)가 소속팀인 KGC인삼공사와 '연봉 3억 원'에 FA 계약을 하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지난 8일, 배구계와 배구팬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에 휩싸였다. 관련 기사와 커뮤니티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배구단 투자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던 인삼공사의 파격은 많은 시사점을 담고 있어 더 눈길을 끌고 있다.

한수지의 연봉은 지난 시즌 여자 프로배구 최고 연봉 선수인 양효진(30세·현대건설), 김희진(28세·IBK기업은행)과 동일한 금액이다. 공동 최고 연봉 선수가 된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한수지가 기량과 팀 기여도 면에서 V리그 여자배구 최고 연봉을 받을 수준이 되느냐이다. 팬들은 '한수지가 좋은 선수는 맞지만, 너무 높다'는 반응을 주로 보이고 있다.

연봉이 한꺼번에 급격하게 인상된 것도 놀라움을 안겨 줬다. 한수지는 지난 2006~2007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GS칼텍스에 지명되면서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2~2013시즌에 첫 FA 자격을 얻었고, 인삼공사와 연봉 1억 원에 계약했다. 2015~2016시즌에는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또다시 인삼공사와 연봉 9500만 원에 계약했다.

이번이 세 번째 FA다. 한수지는 인삼공사와 매년 연봉 3억 원에 3년 계약을 맺었다. 한수지의 지난 시즌 연봉은 1억2500만 원이었다. 1년 사이에 2배가 넘게 폭등한 것이다.

인삼공사 구단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FA는 3년 계약이 맞고, 규정상 연봉만 1년 단위로 갱신하도록 돼 있다"며 "그렇다고 3억 줬다가 성적 안 좋으면 2억으로 떨어뜨리고 그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투자 인색 구단은 잊어라'... 적응 안 되는 배구팬

배구계와 팬들이 충격을 받은 대목은 또 있다. 한수지에게 최고 연봉을 안겨 준 팀이 KGC인삼공사였기 때문이다. 인삼공사는 그동안 '투자를 안 한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실제로 이날 '인삼공사가 FA 최대어 이소영을 영입하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이소영이 조기에 GS칼텍스 잔류를 선택하면서 일찌감치 무산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배구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투자하는 척 말만 앞세우고 실제로는 돈을 안 쓰는 '짠돌이 구단'이라는 비아냥이 더 거셌다.

지난해에도 인삼공사 구단 관계자는 "FA 최대어 박정아 영입을 위해 연봉 2억7천만 원까지 제시했지만,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어를 영입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결과는 늘 '헛물켜기'였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FA 때마다 핵심 선수를 다른 팀에게 계속 빼앗겼다. 지난 시즌에는 국가대표 리베로이자 팀의 수비 기둥인 김해란(35)이 인삼공사를 떠나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올 시즌도 주전 센터인 한수지마저 다른 팀으로 간다는 소문이 마치 확정된 것처럼 퍼졌다. 어느 팀으로 간다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돌았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년 동안 주 공격수이자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던 알레나(29세·190cm)도 다른 팀으로 갈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알레나는 올해 3시즌째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때문에 한국배구연맹(KOVO) 규정에 따라 모든 구단이 자신의 순번이 오면 지명할 수 있었다. 이러다 인삼공사가 2018~2019시즌 V리그에서 최하위는 물론, '승점 자판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이탈리아에서 급반전... "한수지 무조건 잡는다"

 KGC인삼공사 경기 장면... 맨 왼쪽이 한수지 선수

KGC인삼공사 경기 장면... 맨 왼쪽이 한수지 선수 ⓒ 박진철


다행히 지난 6일 새벽(한국시간) 실시된 트라이아웃에서 인삼공사는 '구슬의 운'으로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서남원 감독은 주저 없이 알레나를 지명했다. 이로써 알레나는 3시즌 연속 인삼공사에서 뛰게 됐다. 전력 약화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에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었다.

다음 문제는 팀 내 FA 선수들을 붙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핵심인 한수지는 이미 다른 구단으로 이적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고 있었다. 실제로 한수지와 협상에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어려웠다.

서 감독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트라이아웃 때문에 이탈리아로 떠날 때(5월 2일)까지만 해도 한수지는 다른 팀으로 가는 게 기정사실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급반전이 일어난 걸까. 서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단장님을 비롯 구단의 마음가짐이 급변했다"며 "한수지를 무조건 잡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알레나를 다시 지명했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팀이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게 컸다"고 설명했다.

배구단에 투여하는 1년 예산을 따져 보면 다른 구단과 별 차이가 없는데, 작은 것들을 해결하지 못해서 선수나 팬들에게 '찌질하고 인색한 구단' 이미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대전환을 한 것이다.

신임 사장 "지원해줄 테니 잡으세요"... 서 감독 "2~3탄 준비중"

변화의 중심에는 구단주인 김재수 신임 KGC인삼공사 사장이 있었다. 인삼공사는 지난 3월 사장이 바뀌었다. 김 사장은 여자배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남원 감독도 "V리그 시즌이 끝난 후 인사차 찾아뵌 적이 있었다"며 "사장님이 배구 얘기를 많이 하셨다. 우리 팀 국내 선수의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러면서 해결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그는 "FA 선수를 영입하면 도움이 되고 또 필요하다고 말씀 드렸더니, 사장님께서 옆에 있는 단장님에게 '필요한 선수가 있으면 잡으세요. 내가 지원해줄게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최고 경영자의 배구에 대한 높은 관심이 구단 프런트를 바꾼 기폭제가 됐다. FA 이소영 영입 방침과 한수지 계약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구단 관계자는 "한수지 연봉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3억 이상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FA나 연봉 관련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력 강화를 위해 영입 경쟁에 뛰어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서 감독도 "구단의 투자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한수지가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2탄, 3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FA 2차 계약 기간에 다른 팀의 선수들이 나오면, 한 번 잡아보려고 생각하고 있다"며 "필요하면 트레이드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삼공사의 투자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자배구 치솟는 인기도 '큰 배경'... 신생팀 창단 '최적기'

인삼공사의 변화에는 최근 여자배구 인기가 치솟은 것도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시즌 V리그에서 여자배구는 흥행 지표인 TV 시청률과 관중 면에서 사상 최고의 기록들을 쏟아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프로야구 5경기와 동시간대 경쟁을 했음에도 케이블TV 대박 시청률인 1%를 훨씬 뛰어넘으며 전체 2위를 기록할 정도였다(관련 기사 : 시청률·관중 최고... 여자배구, '위대한 시즌'이었다).

국가대표팀 친선 경기인 '2018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에서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국내 스포츠 현실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처럼 매 경기 5000명 이상의 관중 동원력과 높은 시청률을 보장할 수 있는 콘텐츠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여성 스포츠 종목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배구의 TV 시청률과 온라인 및 언론 노출도가 상승함에 따라 '모기업 광고·홍보 효과' 부문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자 프로배구와 학교 배구 감독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럴 때 신생팀이 창단돼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특히 올해 신인 드래프트는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박은진(188cm), 나현수(186cm)를 비롯, 이주아(186cm), 박혜민(181cm) 등 실력과 스타성을 갖춘 고교 유망주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다. 신생팀 창단은 때를 놓치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 학교 배구 기반이 약하다는 이유로 현상 유지에 급급해한다면, 나중에 유망주 줄고 인기 떨어지면 학교 배구는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악순환은 계속된다.

오히려 신생팀 창단이 유망주들을 배구로 발길을 돌리게 하는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몇몇 'FA 대박' 선수에 가려져 있을 뿐, 좋은 선수들이 프로 팀에서 뛸 자리가 없어 반강제로 떠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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