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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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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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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자화상이 수두룩하다. 자화상을 다룬 미술 평론집이여서다. 본격적으로 글을 대하기 전에 게임을 해본다. 그림이 내게 말을 걸 때까지 응시하다가 글을 읽는 식이다. 물론 나와 저자는 '보는 눈'이 다르다. 생짜와 프로 간의 차이다. 전문가적 식견을 지닌 저자의 세련되고 농밀한 표현은 근거가 분명하다. 반면에 무식한 나는 막연한 느낌으로나 헤아릴 뿐이다. 그래도 얼추 비슷할 때가 있다.

저자 로라 커밍은 자화상을 통해 세상을 보는 창 하나를 열어젖힌다. 자화상에 깃든 당대의 특성이나 전환기적 변화를 짚어 보이며 당시 화가가 품었을 시선을 소개한다. 지금 여기에 있으나 없는 존재를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는 해석이다. 그 자화상에 얽힌 이야기를 저자는 감성을 출렁이며 들려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며 보고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화상의 비밀>은 뭇 자화상의 이미지를 13개의 주제어로 나누어 서술한다. 그 중 하나는 쿠르베에 관한 것이다. 그 외 3개의 장을 3명의 화가(뒤러, 렘브란트, 벨라스케스)에게 할애한다. 총 16장 구성이다. 머리말과 합쳐 450쪽이 넘는 분량인데 줄곧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미술사에 정통한 전문성, 개연성 있게 작품을 읽는 신선한 안목, 이런 저런 배경에 관한 풍부한 고증 등으로 버무린 글맛이 매혹적이다.

로라 커밍의 견해를 거칠게 축약하면, 자화상은 관자(觀者, 보는 이)를 배제하거나 초대한다. 배제한다는 것은, 관자를 압도하거나 무시하는 기운이 강해 관자가 그림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달리 초대한다는 것은, 관자를 자연스레 그림의 장면 속으로, 그 장면의 역사 속으로, 그 장면을 그린 화가의 내면으로 들어서게 한다는 것이다.

사진1 관자(觀者)를 배제하는 "뒤러의 눈"
▲ 사진1 관자(觀者)를 배제하는 "뒤러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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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관자(觀者)를 그림 속으로 초대하는 자화상
▲ 사진2 관자(觀者)를 그림 속으로 초대하는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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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의 예로서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사진1, 74쪽)을 들 수 있다. 1905년 어느 겨울날 뮌헨 알테피나코테크 미술관에서 '뒤러의 눈'이 망가뜨려져 있다. 복원되기는 했지만, "뒤러의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에 대해" 무례함을 느껴 공격했음직한 사건이다. 초대의 예로는 여러 겹의 이야기 속으로 안내하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사진2, 192쪽)이 괜찮겠다. 그림 속 이젤 앞에 화구를 든 인물이 화가의 자화상이다

어쨌거나 <자화상의 비밀>은 총 115개 도판의 자화상들을 읽어준다. 그 덕에 내 얄팍한 미술 지식이 옳게 수정되거나 탄탄하게 다져진다. 그 과정에서 내게 충격적이었던, 그리고 내가 환호했던 자화상이 둘 있다. 모두 내가 평소 애용하는 이미지다. 13장의 '피해자-자기연민, 상처, 고통의 자화상'에서 다뤄진 뭉크와, 14장의 '선구자-닮게 그릴 것인가, 자신의 스타일을 밀어붙일 것인가'에 나오는 반 고흐다.

저자가 들려주는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이야기는 내 무지에 날려진 어퍼컷이다. 여태껏 뭉크의 이미지를 "인간 전체의 조건에 부합하는 진실"로 알고 써먹었기에 그렇다. '지옥의 자화상'이 연인이었던 라르센을 향한 정확한 회화적 복수였다니! '절규'를 위시해 70점이 넘는 자화상 대부분이 그렇게 사사로운 피해자 의식을 표현한 지옥 이미지였다니! 뭉크가 현대인의 고뇌를 표상하는 데 몰두한 화가라고 알았던 내 편협한 지식이 부끄럽다.

다행히 빈센트 반 고흐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미술 전공자들 거의가 그림의 소용돌이나 줄무늬 등을 광기의 흔적으로 지적할 때마다 반 고흐를 좋아하는 나는 불편하다. 그런데 저자는 "반 고흐의 그림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모든 필선이 곧 그의 서명"이라 아퀴 짓는다. 그러면서 고갱과의 다툼이 유발한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뿐만 아니라, 이후의 '자화상'(사진3)에 대해 "인생의 모든 비극을 견디고 선 한 인간"의 "평온함"을 "비로소 성취해낸 것"으로 평가하여 날 안심시킨다.

사진3 쇠약하나 평온함을 성취한 필선들
▲ 사진3 쇠약하나 평온함을 성취한 필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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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의 비밀>을 덮으며 몇 년 전 체코의 카를교에서 얻은 내 초상화를 찾아 들여다본다. 화가가 나를 그리는 동안 둘러싼 관광객들이 엄지척을 여러 번 해보였기에 그림을 본 순간 나는 경악했다. 2시간여 인내 끝에 마주한 '남이 보는 나'는 '내가 아는 나'가 아니었다. <자화상의 비밀>은 그 어긋남이 필연적임을 역설한다. 거울을 보는 순간에도 연행(演行)하며 자기를 바라볼 때가 있지 않은가.

자화상은 자아나 자기에 닿으려 한 화가의 흔적이다. 저자는 자아를 논의 가능한 이론적 철학적 논점으로, 자기를 살아 있는 존재 그 자체로 전제한다. 15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자화상들을 훑은 <자화상의 비밀>은 자화상에 나타난 화가들의 자기를 보아내 자아를 규명하려는 작업인 셈이다. 그러기에 결론은 비관적이다. "자기의 궁극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종언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자화상의 비밀>은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탐문하라고 속삭인다.


자화상의 비밀 - 예술가가 세상에 내놓은 얼굴

로라 커밍 지음, 김진실 옮김, 아트북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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