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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문을 열자마자 화가 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던 날이야. 너희는 공부 때문에 엄마에게 크게 혼나고 있는데, 아빠는 그렁그렁한 너희들의 눈을 보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단다. 아빠가 자초지종을 모른 상태에서 사랑하는 너희가 혼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입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마음이 안 좋은 것이 사실이긴 했단다. 아빠는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단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무술을 배울 것을 강하게 요구했고, 덕분에 태권도와 유도를 꽤 오랫동안 배워야 했단다.

중학교 때는 같이 유도하던 형들이 하도 메다꽂아서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아버지는 강하게 말리셨어. 그 이유는 조금 독특한 것이었는데, 너무 진지하셔서 아빠 입장에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단다.

전쟁과 병사 양구 전쟁기념관에서
▲ 전쟁과 병사 양구 전쟁기념관에서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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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말하는 '무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달랐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제 한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단련하는 게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셨어. 한국의 역사를 보면 50년 주기로 반드시 전쟁이 터졌고, 한국 전쟁이 휴전된 지 30년이 넘었기 때문에 잠시 멈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거야.

지금 들어보면 이해하기 힘든 논리이지만, 너희의 할아버지 즉 아빠 아버지의 삶을 돌이켜 보면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알 수 있단다.

할아버지가 고등보통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고 해. 그때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병사도 장교도 모자란 상황이어서, 아빠의 동기생 100여 명이 짧은 기간의 임시 교육을 받고 소위로 전시 임관을 했다고 하셨어.

아버지도 스물도 안 된 나이에 장교가 되어 전선에 투입되셨다고 해(고등보통학교가 지금으로 보면 고등학생 나이들이지만, 1950년에는 지금 대학생 수준의 고학력자에 해당되었고 그 수는 훨씬 적었단다). 

얼마 뒤, 전투에서 상처를 입고 아버지는 부산으로 후송되셨고, 회복 후에는 후방에 배치되어서 군 생활을 마치셨단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함께 참전했던 동기생들의 80%는 전사했고, 돌아온 사람들도 대개 상처를 입고 상이용사가 되었다고 하셨던 기억이나. 물론 할아버지 역시 몸에 상처와 깊은 동상의 후유증 때문에 평생 고통을 안고 사셨단다.

하늘이 계신 할아버지께서 이 장면을 보셨다면...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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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주 특별한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판문점에서 만나 서로의 경계를 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해. 그중에서도 '종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 평생 전쟁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를 크게 티는 내지 않으셨지만, 가끔 보여지는 모습을 통해 돌이켜 보면 그 협상이 남긴 이야기를 아마 믿지 않으셨을 것 같기도 해.

그때, 사랑하는 막내 아들에게 유도를 가르치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혹시나 전쟁이 나면 강해져서 적을 이기는 남자가 되기를 바라셨을까? 아마 만약 또다시 역사에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당신의 자식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기를 바라시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보다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더 소망하셨을 거라고 믿는단다.

비목 전쟁의 흔적
▲ 비목 전쟁의 흔적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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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군대에 있을 때, 훈련량이 많은 부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다양한 장소에서 훈련을 했던 기억이 있어. 그중에서도 해병대, 미군들과 함께 김포에서 훈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북한 땅을 보았던 생각이 나는구나. 아빠 쪽을 향해 겨누어진 포가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첫날은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깊이 자지 못했지.

하루, 이틀 지나면서는 점점 익숙해지면서 북한 쪽을 바라보았던 기억도 나는구나. 만약 그 시절에 어느 쪽이든 최고 집권자가 전쟁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겠지. 그중에 한 사람이 아빠였다면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도 없을 테고 말이야.

역사에는 가정이란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도 있지만,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 너무 많은 것을 파괴하고, 너무 많은 아픔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남길 테니 더욱 그러하지.

오랜 시간 동안 대치해왔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지금의 좋은 분위기가 정말 실행으로 이어진다고도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생각지도 못했던 '종전'이란 단어는 분명 한 걸음 더 나간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자식이 손주와 함께 또 다른 전쟁을 겪을까 봐 하늘에서 걱정하고 계신다면, 그래도 한 걸음 더 안전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되지 않을까?

작게는 우리 가족이 원치 않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크게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시리아 내전 같은 아비규환 속에 살지 않고 각자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대통령의 행보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구나.

대한민국의 탄생과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전쟁, 그리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혼자 살겠다고 대통령이 도망가면서 시작된 뿌리 깊은 정치 불신의 역사와 끝나지 않은 전쟁, 휴전이 지속되고 있는 역사가 이제 조금씩 미래로 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앞으로의 날들을 지켜보려고 해.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귄터 샤보브스키라는 정치위원이 기자회견장에서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고 발표했단다. 그는 시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당장"이라고 답했는데, 그 순간 사람들이 몰려들어 장벽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

말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이 있고, 그 말에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겠지. 언젠가 2018년 4월에 대해서 너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때가 '큰 변화의 시발점'이었단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아빠의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밤에...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중복 게재 예정입니다. (electricji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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