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지난 4월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 MBC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며느리와 시가 식구들 간의 갈등을 개개인의 대립으로 해석해왔다. '며느리에겐 과민 반응', '어머니에겐 성격 이상'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며느리를 그리는 관점이 바뀌었다. 시작은 웹툰 <며느라기>가 아니었을까.

웹툰 <며느라기>는 앵글을 확대해 전체 상황을 조망하고 때론 클로즈업으로 아무도 보지 않던 장면을 포착했다. 부엌에서 일하는 여자들과 티브이 앞에 앉아 있는 남자들. 소파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는 며느리, 남은 사과를 서서 먹어치우자는 시어머니.

관점만 바꿨을 뿐인데 소소하지만 치명적인 '가부장적 문제'들이 발가벗겨졌고, 우리가 어떤 구조 속에 있는지, 무엇이 내면화되었는지 거리를 두고 인식할 힘이 생겼다. 며느리들은 숨어하는 불평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목소리를 낼 언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MBC에서는 '전지적 며느리 시점'으로 촬영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란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여기에 며느리를 숨 막히게 조이는 '무개념 시부모'는 없다. 웹툰 <며느라기>처럼 중산층의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족이 모였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조망하며 '선의의 폭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날 것으로 보여주었다.

며느리에겐 '며느라기'가 있다

 지난 4월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지난 4월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내가 본 건 '며느라기'였다. '며느라기'(期), '시가 어른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예쁨 받고 싶은 시기'를 말한다. 시가 어른들에게 자신을 맞추고, '아무도 대놓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팔 걷어붙이며 지르는 소리 없는 아우성. 이 모든 부담에서 쏙 빠진 남편. 프로그램에 출연한 며느리들을 보며 8년 차 며느리인 나는 나의 '며느라기'를 회상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앞치마 두르고, 외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생신상을 굳이 직접 차리겠다고 나서는 민지영씨, 사실 그 일을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민지영 씨는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나 역시 그랬다. 형제만 있는 집의 막내 며느리가 되자, 집안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혼자 끙끙댔다. '어머니~'하며 콧소리로 대답하고 찾아뵐 때면 스카프 하나라도 사 드리려고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내 부모에게도 없는 애교가 나올 리 있나. 곧 시들해졌고 그 후론 자주 전화를 못 드려서, 싹싹하지 않아서, 음식을 차려드리지 못해서, 내 역할을 못 한다는 자책에 괴로워했다. 시부모님에게 손녀 사진 보내주기, 시가 가는 일정 맞추기, 명절 선물 보내기, 용돈 드리기도 모두 '내 일'처럼 느꼈는데, 정작 남편은 아무 생각 없었다.

"만삭인데 오지 마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의 말에 냉큼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결국 가서 명절 음식 준비하는 박세미씨도 그렇다. "왜 사서고생"이냐고 물을지 몰라도 며느리들은 '하지 마라'고 해도 '해야 하는' 세상에 산다. 그게 '예의'라고 배웠다. 남편처럼 '눈치 없기'도 필요한데, 며느리만 되면 왜 이리 '눈치 스킬'만 향상되는지.

 지난 3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지난 3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 MBC


 지난 3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지난 3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 MBC


모처럼 쉬는 휴일에 새벽부터 가족나들이를 나서는 김단빈씨를 보면서는 가족 여행을 꾸리겠다고 '혼자 바빴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도 가자고 하지 않았는 데도 내가 안 챙기면 누가 하냐며 날짜 맞추고 장소를 알아봤다. 그러다 모두 바쁘고 관심 없다는 걸 알며 혼자 상처받고 속상해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나오는 시어머니들은 '나쁜 분'들이 아니다. "가서 밥 안쳐라", "빨리빨리 하지 않고 뭐하느냐"고 무뚝뚝하게 말해도 악의가 있지 않으며 나름대로 며느리들을 배려한다. 하지만 무심결에 내뱉는 말이라도 깊이 새겨진 통념, 차별, 습관이 내면화된 결과고, 며느리들은 시부모 앞에서 자아, 성격, 취향을 지우고 '자동 반응' 한다. 대한민국 며느리가 되는 순간 '유전자'에 어떤 변이가 생기는 걸까. 우리도 밖에선 할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인데.

남편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등장하는 남편들도 분명 선량하고 자상하다. '폭력'을 휘두르지도, '바람' 피우지도, '도박'도 하지도 않는 '정상 남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겐 한 가지 치명적 문제가 있다. 매일 얼굴 보며 사는 아내가 느끼는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한다.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자궁파열 위험 때문에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권한 상황인데도 박세미씨의 김재욱씨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했다. 시아버지가 아무리 자연분만을 권한다 한들 '참고사항'일 뿐이며 결정권은 박세미씨 본인에게 있다. 엄밀히 말하면 '허락'의 영역조차 아니다. 그런데 부부끼리 합의하고 아버지에게 전달하면 되는 일에서 김재욱씨는 자기는 쏙 빠지고 며느리인 박세미씨가 시아버지와 옥신각신하도록 만들었다. 남편으로서 '책임 방기'다.

 지난 4월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지난 4월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 MBC


 지난 4월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지난 4월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 MBC


이 밖에도 민지영씨, 김단빈씨의 남편도 아내들이 겪는 어려움을 '본체만체' 한다. 아니 그들 눈엔 전혀 안 보이는 것 같다. 아내에게 '왜 나처럼 못해?'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 그들이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나의 경우 남편과 입장 차, 온도 차를 느끼는 건 시가에 가면 항상 2박 이상을 하고 와야 할 때였다. 경기도에서 경북의 시가까지 오랜만에 내려간 거 1박은 아쉽다며 앞뒤로 휴가 내서 2박, 3박까지 하곤 했다.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켜는 집에서 아이가 잠을 못 자기도 했고, 시어머니가 아무리 일을 안 시키셔도 시가는 불편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렇게 편한 시댁 없다'고 말하며 나보고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했다. 반면 남편에게 처가에서 2박, 3박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는 "너무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봐주시지, 집안일에서도 '완벽 제외', 집에서 못 먹던 아침식사부터 진수성찬으로 먹으니 남편에겐 휴식처다. 하지만 나는 '사위 대접'하겠다며 온종일 신경 곤두서 있는 친정 엄마 보기가 속상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법인데' 왜 남편만 모를까.

결국 타협안을 내밀었다. 친정이고 시가고 1박만 하자. 오고 가는 길이 길어 너무 피곤할 땐 중간 지점에 숙소 잡고 하루 쉬다 가자. 이렇게 했던 2년 동안, 장거리 이동 후 부부싸움이 현저히 줄었으나 남편은 여전히 '편한 집' 놔두고 왜 다른 곳에서 쉬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를 직장상사처럼, 최종 결정은 부부가 한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한결같이 남편들은 외부자이며 방관자 위치에 있다. 왜 이런 태도가 가능할까. 결혼은 했으나 여전히 '돌봄 받던 아들'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에 '세트로 딸려온' 며느리는 이런 남편에 추가로 그의 부모까지 챙겨야 하는 '돌봄 노동자'가 되고야 만다.

남편들이 무거운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식구'로 소속되는 게 아니라 별도의 가족 구성원이라고 인식하는 게 인식이 먼저다. 사위가 처가 식구들에게 '손님'인 것처럼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둘째, 결혼한 성인인 이상, '아들' 역할에 안주하지 말고 '부부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이 두 가지에 '합의' 돼 있어야 한다.

말이 쉽지, 많은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자식을 품 안에 두고 싶어 하고, 조금만 여지가 있어도 관여하려 한다. 그래서 더욱 자식이 먼저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 부부끼리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각자의 배우자는 자기 부모에게 먼저 선을 긋기도 해야 한다.

부모와 일일이 상대하며 '싸우라'는 말도 참으라는 말도 아니다. 내가 친정 부모님과 감정적으로 얽혀들며 괴로워할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다. "부모를 직장 상사처럼 대하라." 부모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상사처럼 보고할 건 보고하되 '거리 두라'는 의미였다. 부모는 자식 걱정에 '선의의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으니, 그 점을 인정하되, 자식 입장에서 그 말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라는 것.

부모님의 요구나 관여가 과도하다고 느껴질 때 어디까지가 넘으면 안 되는 '선'인지 알려드릴 필요도 있다. 시아버지가 자연분만을 권유한다 해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희가 생각해보고 결정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내기. 소소하게는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와라"라는 부름부터 크게는 자녀 양육, 이사나 직장문제까지 관여할 때 "OO(배우자)와 상의해볼게요" 혹은 "저희일은 저희가 결정할게요"라고 말하기.

그런데 이 사소함을 왜 선뜻 실행할 수 없을까. '혼날까 봐? 미워할까 봐?' 부모는 상사와 다르게 자식을 해고할 수도 없는데. 우린 부모라는 '타인'에게 지나치게 나를 내어주곤 있는 건 아닌지. 중요한 건 부모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도 성인이라면 최종 결정도 책임도 본인에게 있다는 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해도. 서로 '불화'가 생긴다 해도, 이런 과정이 '분리'과 '독립'의 불가결임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거절하는 용기, 무리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해 

 지난 3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지난 3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 MBC


 지난 3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지난 3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캡처. ⓒ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3회까지 파일럿 방송을 마쳤다. 3회 끝부분에서 남편들은 제3자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자신들의 태도를 '반성'했다. 반성이라도 하니 다행인가. 대부분 남편들은 '나는 안 저런다'고 발 뺌 한다. 본인들이 직접 아내의 '번거로움, 어색함, 불편함'을 분담해야 비로소 그간 누린 '특혜'를 실감할 터.

6월부터 정규방송으로 편성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앞으로 어떤 상황과 해법이 제시될지 궁금하다. 남편들, 부디 아내 입장 생각하기를 '생각'에 그치지 말고, 해오던 습관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저녁 먹으러 오라는 부모에게 껄끄러운 '거절'도 하고, '자기 부모님' 일에는 본인이 직접 거들어야 할 것이다. 아내들도 '뻔뻔함'을 무릅쓰고 '무리하지 않는 용기'를 내야 한다.

2년여 전, 시키지도 않던 며느리 역할에 전전긍긍하던 나는 시가에 연락하는 일들을 남편에게 맡겼다. 쉽진 않았다. 초조하고 애타는 나에 비해 남편은 언제나 느긋했고 명절, 생신 며칠 전까지도 전혀 일정을 잡지 않았으니까. '욕 먹을 각오' 하고 기다린 끝에, 생신 못 챙길 경우 남편이 '대응'하기로 약속한 끝에, 이제 남편은 언제 찾아뵐지, 어디를 갈지, 직접 시부모님에게 연락하고, '형제들끼리' 선물을 마련하며, 가족 모임 할 음식점을 정한다. 서로 양가에 안부 인사는 드리지만 그 밖의 '챙김'은 각자 하기가 우리의 원칙이 되었다.

우리의 방법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해오던 대로,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 부부끼리 무엇이 더 좋은 방법인지 적극적으로 합의, 타협, 결정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을까. 각자 부모와 충돌을 감내하더라도 상의와 조율을 반복하는 일도. 우리 사회의 완고한 '가족주의' 내에선 무척 어려운 과제지만 결국 넘어야 할 산이다.

따로 산다고,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는다고 '독립'은 아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지 않는 한 부모의 '어린아이'로 영원히 살겠다는 거니까. '이상한 나라'의 장단에 맞추지 않기 위해, 투쟁은 불가피하다. 거저 얻는 '독립'이란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신나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중복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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