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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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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 "어서 오십쇼, 어디로 모실까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평화번영로로 부탁드립니다."
: "어이구, 멀리 가시는 손님이시네. 길이 막히는데...약간 돌아가긴 하지만 올림픽대로를 거쳐 '미국로'가 가장 빠른데 괜찮겠습니까?"
: "네 괜찮습니다. 멀다고 하면 안되갔지요."
: "손님, 콜이 왔는데요, 올림픽대로에서 한 분이 꼭 타시겠다고. 노벨상으로 가시는 분이에요. 평화번영로와 아주 가까우니 합승하셔도 될 듯 한데요"
: "네, 일 없습니다."

(택시, 올림픽대로로 주행)

: "어서 오십쇼. 노벨상으로 가신다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노벨, 하하. '종전로'를 거쳐 가요. 그 길이 제일 좋아. 일명 '축복의 길'."
: "저도 좋아하는 길입니다."
문 : "잘 됐네요. 그 길을 거치지 않으면 사실 다른 길이 없죠. 출발합니다~"

(잠시 주행)

: "지름길이 있긴 한데, 다른 기사들은 길에 자꾸 안개가 낀다고 안 가고 그러던데, 비핵화길이라고요, 그 길로 가면 노벨상이랑 평화번영로가 확실히 나옵니다."
트럼프 ; "우리 비서는 비핵화길을 끝까지 완전히 달려봐야 한다고, '완전한 비핵화길'이라고 하던데?"
: "저도 들어 봤어요 '완전한 비핵화길' 얘기는. 그길로 가시죠!"  

지금까지의 남북과 북·미, 한·미 대화상황을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입해 가상으로 정리해 본 글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와 그에 대한 미국의 평가를 종합하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자의 목표를 향해 같은 차를 타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길' 초입에 들어선 모양새다. 이제 일본이 이 차에 같이 올라타려 한다.

이 같은 상황을 이뤄내기까지, 한국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던 것은 보지 않아도 훤하다. 하지만 핵심 역할은 문 대통령의 몫이었다. 각 정상들의 결심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문 대통령 특유의 '겸양 외교'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북한 올림픽 참가에 트럼프에 감사 인사, 딸 이방카 극진 환대

문재인 대통령이 1월 4일 밤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 문 대통령의 전화 통화 문재인 대통령이 1월 4일 밤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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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화국면의 물꼬를 튼 것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였다. 지난해 12월 19일 미국 NBC와 한 인터뷰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가능성"을 언급한 문 대통령은 올해 1월 4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평창 올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는 다음날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을 수용, 올림픽에 참가하는 걸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전화로 감사를 표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이 방한했을 때 극진히 환대하면서 "한반도 긴장 완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강력히 지지해 주신 덕분"이라고 또 감사를 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큰 인상을 받은 듯 하다. 그리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내 덕분에 별 관심도 못 끌던 평창 동계올림픽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말한다"는 대목을 각종 대중연설과 기자회견에서 빼놓지 않고 얘기하고 있다.

지난 28일 미시간주에서 있었던 중간선거 유세에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그(김정은)가 대단했다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미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에 따르면 같은 날 문 대통령과 한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 전화를 언제라도 최우선으로 받겠다"고 했다.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문 대통령에 무한 신뢰를 표시한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연루 의혹, 포르노 배우와 성관계 추문 등 정치적으로 위협적인 사안들을 맞닥뜨린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 좋은 소재가 됐다. 지지자들은 대중 집회에서 "노벨! 노벨! 노벨!"을 연호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일본 납치자 문제와 북일대화 의사 전달로 '성의'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일본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뀐 데에도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컸던 걸로 보인다.

회담 전까지 신중한 자세를 지켜왔던 아베 총리는 회담 직후에도 "과거에도 성명은 나왔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29일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뒤엔 "문 대통령의 성의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서훈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방문한 자리에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뒤 방문해 줘서 감사하다"고도 했다.

아베 총리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일 국교정상화를 원한다는 아베 총리의 뜻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적극 전달했고, '북한도 얼마든지 일본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김 위원장의 의향을 전해준 데 따른 걸로 보인다.

사실, 납치자 문제는 인도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일본과 북한이 일 대 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남북관계만 논의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남북 정상이 다뤄도 되고 안 다뤄도 되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이 문제를 북한에 거론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어깃장을 놓는 형국이었다. 일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만찬 후식에 독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장식이 사용되는 데 대해서도 항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성의를 갖고 일본 측의 입장을 김 위원장에게 적극 전달했고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냈다.  '공문서 조작·자위대 문서 은폐' '총리 친구 특혜' '모리모토 스캔들' '국회 해산발언' 등 연속된 위기를 겪고 있는 아베 총리가 타개책으로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할 길을 열어준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머리 맞댄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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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겸양 외교'는 남북정상회담 현장에서 가장 빛을 발했다. 겸양은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시작했다. 정상회담 시작 전 환담장에서 김 위원장은 백두산에 가고 싶다는 문 대통령에게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북한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철도 연결 문제는 이전의 합의서에 다 있는데 10년 세월 동안 그 맥이 끊어졌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께서 큰 용단으로 10년동안 끊어졌던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고 도로 추켜세웠다. 이후 회담은 그 결과가 보여주듯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겸양외교 바탕 뒤에 숨은 전략  

대화가 진행될수록 빛을 발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겸양 외교'는 그 자체로도 좋고,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반응까지 얻고 있다. 그러나 그 바탕엔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겸양을 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또 김정은 위원장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기조는 지난달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한 발언에서 이미 나타났다.

"한 가지만 좀 더 당부하자면 회담 자료를 준비할 때 우리 입장에서가 아니라 중립적인 입장에서 각각의 제안 사항들이 남북과 미국에 각각 어떤 이익이 되는지, 우리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고 북한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고, 또 미국의 이익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익들을 서로 어떻게 주고받게 되는 것인지 이런 것을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도록 그렇게 준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그:#문재인, #정상회담, #한반도운전자론, #김정은,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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