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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공동취재단 / 안홍기]

27일 3차 남북정상회담을 생중계하는 카메라를 통해 전해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과 행동이 파격적이라 할 만큼 즉각적이고 솔직하고 놀랍다. 예정에 없던 동선도 속출했다.

① "탈북자·북한군·남북" 남측 어휘 구사하며 "치유되길"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중만 작가의 '훈민정음'을 배경으로 환담을 나누고 있다.
▲ 환담하는 문재인-김정은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중만 작가의 '훈민정음'을 배경으로 환담을 나누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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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라운 부분은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평화의 집 1층 환담장에서 나온 김 위원장의 다음 발언이다. 

"대결의 상징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오면서 보니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보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김 위원장은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을 언급하며 이들의 숙원을 풀고 불안해 하지 않는 남북관계를 만들겠다고 했다. 우선, 그동안 북한은 탈북자를 반역자로 대해왔다. 김 위원장의 말은 더 이상 이들을 적대시하지 않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문재인·김정은 만나는 순간, 누구도 예상 못한 3가지 장면
ⓒ 김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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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연평도 주민들의 불안감을 언급한 것은 매우 전향적이다. 2010년 11월 포격 사태 뒤 4일만에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도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도발을 준비하면서 포진지 주변과 군사시설안에 민간인들을 배치하는 등 '인간방패'를 형성한 적들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김 위원장이 직접 연평도 포격을 언급하면서 '불안 해소'와 '상처 치유'를 언급한 것은 민주사회의 정치지도자라면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북한의 독재자로선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행간에서도 김 위원장의 솔직성을 엿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실향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남측 주민들의 기대를 '오면서 봤다'고 했는데 사실, 이는 북측 매체로는 접할 수 없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이 남측 매체나 외신을 상시적으로 접하고 있음을 솔직히 내비친 발언으로 보인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김 위원장이 이 말을 하면서 북한식 어휘를 최대한 자제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탈북자' '북한군' '남북'이란 남과 북이 달리 쓰는 말을 하며 남측 어휘를 썼다. 이 발언 내용을 전달한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 발언이며, 김위원장이 남측이 쓰는 언어로 발언했다"고 밝혔다.

②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 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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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상황은 양 정상이 만나자마자 벌어졌다. 북측지역의 통일각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온 군사분계선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 인사를 하고 남측지역으로 넘어왔다. 기념촬영 뒤, 양 정상은 손을 잡은 채로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지역으로 넘어갔다. 예정에 없던 동선이었다.

이같은 상황은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에 대한 화답 차원으로 일어났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북측으로)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고 양 정상이 같이 남측지역으로 넘어왔다. 이어 김 위원장이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면서 문 대통령을 북측지역으로 이끌었다. 양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다시 넘어오는 장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휴전 이후 남북을 갈라놓은 군사분계선 혹은 휴전선을 남북의 양 정상이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쉽게 넘나들 수 있다'고 한반도 뿐 아니라 전세계에 생중계로 보여준 셈이다.

③ "고속철도 참 좋다고 한다...우린 교통이 불비해"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남측에서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북측에서는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남측에서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북측에서는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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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마주 앉은 회담장에서도 이례적인 발언을 이어 나갔다. 모두발언에서 "북측을 통해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 문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준비되지 않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며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1·2차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에 남북의 경제력이나 사회기반시설의 격차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이런 상황을 언급한 것은 '경제적 낙후성'을 스스로 먼저 인정하고 남측의 발전상을 언급한 것이라 상당히 이례적이다.  동시에 '우리도 준비하겠다'면서 자신이 최근 강조한 경제건설로 낙후된 사회기반시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 솔직함을 보이자,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큰 용단으로 10년동안 끊어졌던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고 김 위원장을 추켜세우며 정상회담장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며 김 위원장의 경제건설을 남측이 적극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④ 북한군 책임자들 문 대통령에 '특별 인사'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경기도 파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공식환영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 나누는 김여정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경기도 파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공식환영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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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의장대 사열 뒤 양측 수행원을 소개하는 순서에서도 다소 파격이 있었다. 남측 수행원들을 소개받은 김 위원장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측 수행원을 문 대통령에게 차례차례 소개한 뒤 문 대통령을 다시 리명수 총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 앞으로 이끌었다.

이 자리의 대화 내용은 파악되지 않지만, 김 위원장이 군부 책임자들을 문 대통령에게 특별히 인사시킨 데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군사 부문에 많은 걸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해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 아닐까 추측이 되는 대목이다. 이후 북한의 군 책임자들은 송영무 국방부장관과도 인사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18 남북정상회담특별취재팀]
취재 : 황방열(팀장) 구영식 안홍기 유성애 신나리
오마이TV : 이승훈 김종훈 정교진 조민웅 김혜주
사진 : 권우성 유성호 이희훈
편집 : 박수원 김지현
그래픽 : 고정미


태그:#김정은, #정상회담, #언행, #남한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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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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