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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영어가 아니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다
ⓒ ⓒelement5digital,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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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관련 링크 : 한국의 영어교육이 잘못된 이유, OO이 부족하다)에서 "입력 부족"을 영어 교육의 잘못된 이유로 들었다면 이번 기사는 "망가진 교육 시스템" 편입니다.

[문제점 2] 망가진 교육 시스템

공교육 현장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꾸준히 반복해서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기자들이 취재한 몇 되지 않은 공통된 내용입니다. 무한정 대립하는 진보와 보수 양쪽이 모두 우리 공교육 현장교육이 무너졌다는 데는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정치라는 게 이런 면도 있는가 봅니다.

교육이 무너졌다는 의미가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지 잠깐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흔히 무너졌다는 말은 집이라든가 건물의 경우에 쓰이는 말인데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 개념인 공교육에 기자들이 즐겨 그 말을 사용하였는지 궁금합니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교육이 조금 잘못되었다는 의미보다는 더 강한 의미로 쓰지 않았을까 헤아릴 뿐입니다.

오늘 오후 시간에 있었던 고등학교 2학년 문과반 학생들의 수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20명 학생 중 체육특기생 2명을 빼고 18명이 출석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머리가 아프다고 양호실에서 누워있다는 일 외에 특별히 다른 상황은 없었지요.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 서너 명의 학생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합니다. 나머지 서너 명의 학생들은 고개를 아래로 하여 스마트폰을 합니다. 그 이상은 말 안 해도 다 짐작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이 이렇듯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를 오늘은 시스템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중학교에서 4년 근무하고 고등학교에서도 4년 근무해본 저로서는 같은 재단에서만 학생을 지도한 덕분에 중1부터 현재 고3까지 6년에 걸쳐 올라온 복수의 학생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6년이 지난 셈이죠. 학생들과 대화해보면 왜 시스템이 문제인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시스템 문제 1] 집단교육

우리 교육은 집단교육입니다. 같은 학년은 같은 책으로 공부하고 같은 시험을 보는 집단체제입니다. 공장이나 군대에서 하는 방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서 수천 명의 신병을 모집하여 4주간 꼭 같은 훈련을 시키는 방식. 제조업체에서 수백 명의 신입사원을 모집하여 같은 공간에서 동일 교육을 받는 방식. 문제는 이런 방식이 언어 교육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배우는 환경을 떠올려보면 굳이 영어교육학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을 배우기 위해 우리가 교실에 모여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미 아이들은 우리말을 듣고 말하고 읽고 씁니다. 설령, 그렇지 못한 학생이 있다고 해도 학교에 입학해서 우리말을 더 잘 듣거나 읽는 것은 개인을 둘러싼 언어 생태계일 것입니다. 많이 듣고 대화하며 자연스레 익혀나가는 과정이니까요. 우리나라에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없으니 집단교육이 필요한 것일까요?

[시스템 문제 2] 교육행정

얼마 전 영어과 학력 향상방안을 언제까지 제출하라는 교육청 공문을 접수하였습니다. 친절하게 양식까지 이미 만들어 그 양식에 맞게 방안을 작성하라고 것입니다. 마케팅 회사에서 흔히 사용하는 SWOT(Strength-Weakness-Opportunity-Threat) 도표도 그 양식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 내부 결재를 통해 교육청에 문안을 제출하며 느낀 점은 정말 교육청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학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보는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집단교육의 최면에 걸린 것일까요. 어떻게 관내에 있는 수십 개의 고등학교에 학력 향상에 대한 방안을 같은 양식으로 제출하라고 지시할 수 있을까요. 사교육에 공교육이 밀리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사교육은 자유롭고 창의적이지만 공교육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조적으로 그런 말도 듣습니다. 교육청이 사라지면 교과부가 사라지면 오히려 학생의 학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시스템 문제 3] 입학시험

입학시험은 교육계의 블랙홀입니다. 입학시험을 말하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영어 교과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든 게 입시 위주로 움직입니다. 입시 위주의 과정을 따라가는 소수의 학생을 빼면 나머지는 그냥 들러리일 뿐입니다. 운동장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 심정으로 학생들은 교실에 들어옵니다. 중고등학교 6년을 겪으며 이미 학생들은 좌절을 경험하고 스스로 포기합니다.

영어과를 말해보겠습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학생들은 6권의 검인정 교과서를 통해 영어를 배웁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고3이 되면 교과서로 공부하지 않고 EBS 수능특강이라는 이상한 참고서가 교재로 등장합니다. 그러기 위해 2학년 때 이미 3학년 교과서를 마쳐야 합니다. 1학기에 2학년 교과서를, 2학기에는 3학년 교과서를 배우니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시험 범위도 그만큼 확대됩니다.

교과서는 중1~고3까지 적절한 정도의 난이도로 구성되어서 학년과 학년 간의 위계가 있습니다. 중1보다 중2가 조금 어려운 방식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조금씩 어려워지는 교과서의 내용은 학생들이 따라가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인 고3 영어 교과서는 미국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수준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강의 고3 수준에 우리말로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이면 못하는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모의고사와 수능입니다. 고1 모의고사 지문은 미국 고1 수준이고 수능은 미국 고3 수준의 독해 능력을 요구합니다. 제가 실험 삼아 지난 3월에 있었던 "2018학년도 3월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 문제지" 지문 하나를 미국 교과서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넣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확하게 미국 고등학교 2학년 수준으로 나오더군요. 교과서는 초등학교 수준으로 학습하는데 시험과 평가는 고등학교 수준으로 해야 하는 이중적인 형태입니다.

언젠가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교수님께서 이런 이중적 형태에 대한 지적을 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반향이나 움직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촛불 혁명을 통해 적폐를 청산하고 이번 주말이면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종전 협상과 한반도 핵 폐기를 협의한다고 언론이 호들갑이지만 안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우리 학생들의 좌절과 포기에는 눈을 감습니다. 왜 우리는 학생들에게 잘못된 교육 시스템을 강요하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전가해야 할까요. 지금 이대로는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다음 기사에서는 원어민과 같은 수준의 영어 학습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올릴 계획이었으나 그 전에 먼저 "잘못된 영어 학습 방법"을 풀어보고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원어민 수준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논의하고자 합니다.


태그:#영어교육, #영어독서, #영어교육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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