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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집결한 광주시민들. 이날 시민들이 목이 터져라 부른 애국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국가는 그 국민을 죽였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80년 5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집결한 광주시민들. 이날 시민들이 목이 터져라 부른 애국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국가는 그 국민을 죽였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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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그날로부터 38년. 한 세대 하고도 8년이 지나가고 있다. 광주시민들은 작년 5·18 37주년 기념식을 잊지 못한다.

뜻하지 않게 치러진 대선에 당선되어 막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광주시민들의 큰 아픔 하나를 치유했다.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었다. 지난 보수정권 9년 동안 '종북의 옷'을 입고 갇혀 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주의 옷'으로 갈아입는 순간은 감동 그 자체였다.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프랑스혁명 시기에 만들어진 프랑스 국가 <라 마르셰에즈>와 비유되는 이유는 광주민중항쟁이 세월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금년 38주년 기념식을 맞아 관현악과 합창 등이 어우러진 교성곡 형태로 재탄생한다. 광주문화재단에 따르면 교성곡으로 완성하여 '5.18 민주화운동 38주기 기념음악회' 무대에서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장엄한 교성곡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작년 5.18 광주민중항쟁 37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인사들. ‘민중의 노래’는 그 시대의 가치와 사고를 공유하는 공통의 언어다.
 작년 5.18 광주민중항쟁 37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인사들. ‘민중의 노래’는 그 시대의 가치와 사고를 공유하는 공통의 언어다.
ⓒ 광주광역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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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희생자들이 상무관에 임시 안치되기 전 도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5.18 희생자들이 상무관에 임시 안치되기 전 도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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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광주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 말고도 여럿 있다. '민중가요' 또는 '저항가요'라는 이름으로 민주화 투쟁이나 노동 현장에서 많이 불러졌지만 이제는 잊혀 가고 일부만이 영화나 TV 다큐멘터리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그중 작사 미상으로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며 광주의 거리에서 가장 강렬하게 불렸던 노래가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더불어 광주민주화운동을 대변하고, 80~90년대 5·18 관련 시위 현장과 심지어는 프로 야구 경기중에 해태 타이거즈 응원가로도 불려졌던 노래, <5월의 노래 2>가 바로 그 노래다. 기억을 되살려 한 번 불러 보자.

1980년 5.18 당시 시민들과 계엄군들이 금남로에서 대치하고 있다.
 1980년 5.18 당시 시민들과 계엄군들이 금남로에서 대치하고 있다.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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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산자들아 산자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고통 없이 어떻게 헤치고 나가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대머리야 쪽바리야 양키놈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 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라는 강렬한 후렴구와 함께 4절로 구성되어 있는 <5월의 노래 2>는 그날의 참상을 매우 직설적으로 담고 있다. 광주의 아픔과 슬픔, 분노와 결의를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어느 이름 모를 작자에 의해 편곡된 이 노래는 우리들에도 친숙한 '홀리데이(Holiday)'의 프랑스 샹송 가수,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의 번안곡이다.

1970년대 프랑스 어느 재개발 지역에서 한 할머니가 정성 들여 가꾼 정원이 도시계획으로 망가지는 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그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가 원곡이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저항하다 죽임을 당한 무고한 할머니를 추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곡과 <오월의 노래 2>는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 곡은 <목마와 숙녀>로 잘 알려진 '노래하는 시인' 박인희가 1978년 원곡을 개사해서 <사랑의 추억>이라는 음반을 내며 소개했는데 원곡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또한 뉴 에이지 피아니스트 이루마(Yiruma)가 'When the Love Falls'라는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여 드라마 <겨울 연가> OST로 삽입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서정적 멜로디와는 다르게 가사의 내용은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중 무참하게 짓밟힌 채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 열아홉 소녀, 손옥례 열사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열흘 동안의 항쟁 기간 중에 가장 처참하게 학살당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손 열사다. 손 열사는 여고를 막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합격하여 출근 일자를 기다리고 있던 5월 19일 친구 동생의 병문안을 갔다가 소식이 끊겼다.

5월 21일 손 열사는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검시서에 의하면 우측 가슴과 턱 그리고 골반부와 대퇴부에 M16 총탄이 관통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계엄군들은 그녀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찢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손 열사는 망월동 제3묘역에 영면하고 있다. 손열사의 아버지는 망월동에서 실신한 후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그로 인한 충격에 중풍으로 6년 동안 누워서 살다가 한 맺힌 이승과 작별했다. 동생 손병석씨도 계엄군에게 두들겨 맞고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한 가정이 참혹하게 파괴되었다.

<오월의 노래2>의 모티브가 된 손옥례 열사가 망월동 5.18 국립묘지에 영면하고 있다
 <오월의 노래2>의 모티브가 된 손옥례 열사가 망월동 5.18 국립묘지에 영면하고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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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망월동에 자리하고 있는 5.18 국립묘지.
 광주광역시 망월동에 자리하고 있는 5.18 국립묘지.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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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그로부터 38년, 우여곡절 끝에 '5·18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손 열사를 찌르고 쏜 자들의 수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민중가수 정태춘의 노래처럼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회수되지 않고 있다.

요즘 광주 시내 곳곳에 "5·18 특별법, 우리당이 해 냈습니다"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선거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서막이다. 공허하고도 공허해 보인다.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 전문에도 5·18 정신이 들어 있지만 통과는 묘연해 보인다. 옛 전남도청의 원형 복원은 지지 부진하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시간과 함께 점점 풍화되어 가고 있다.

역사란 무엇일까.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만은 아니다. 특정 장소와 함께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고 있으며, 미래를 비추는 등댓불이다. 새로운 것의 근원이다.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는 여러 형태로 기억된다. 사진과 그림으로, 영화로, 연극으로, 시와 소설로, 노래로.

'한국의 밥 딜런' 음유시인 정태춘은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말고, 5·18을 잊지 말자고 열창을 하고 있다.

"···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국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 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명열사의 묘.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그들의 붉은 피를 기억해야 한다
 무명열사의 묘.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그들의 붉은 피를 기억해야 한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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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노래'는 그 시대의 가치와 사고를 온몸으로 공유하고 기억하는 공통의 언어이자 서사(敍事)다. 38년 전, 피를 토해내듯 간절하게 '오월의 노래'를 불렀던 민중들을 기억해야 한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그들의 붉은 피가 아직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불러야 할 '오월의 노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언제나 길은 '민초'들이 만들었고, 그길은 의심할 여지없이 역사가 되었음을 목하 경험하지 않았던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민중의 노래'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그:#민중의 노래, #노래로 기억하는 5.18, #오월의 노래2, #저항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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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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