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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된 바보', 고 노무현 대통령. 그는 한 장의 수묵화 속에서 슬픔으로 흘러 내렸고,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슬그머니 일어나 산이 되었다. 한 장의 그림으로 우리의 눈가를 젖게 만들었던 수묵화가 허달용 작가가 오는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G&J 광주전남갤러리에서 <허달용 개인전>을 열고 있어 찾아 나섰다.

 산이 된 바보.  허달용.  수묵화
 산이 된 바보. 허달용. 수묵화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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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된 바보'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니 누군가가 말을 건다.

"서거 직후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였어요. 몇 날 며칠을 울다가 갑자기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붓을 들어 단숨에 그린 그림이에요.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무엇에 홀려서 그린 듯, 누가 내 손을 빌려서 한 것처럼 그려졌어요. 사실 저 작품은 완성해 놓고 제 스스로도 깜작 놀랐죠. 너무너무 그리워하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면 이렇게도 그림이 나오는구나. 어쨌든 너무 그립기도 하고, 애착도 가고, 눈물도 나고."

허달용 작가가 팔짱을 끼고 옆에 서서 같은 그림을 보고 있다.

 연서.  허달용.  한지에 수묵채색
 연서. 허달용. 한지에 수묵채색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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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광주에서의 <4인4색 동행> 전에서 뵙고 다시 서울에서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4인4색 동행> 전에 참여하셨던 임남진, 조정태, 김희상 작가들에 이어 선생님께서 서울에서의 릴레이 개인전을 마무리 하시네요. 어떠셨어요?
"광주의 뚝심을 서울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즘 서울에서는 장식성이 강한 미술이 대세인듯해요. 뭐, 촌놈의 정신이라고나 할까?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촛불혁명이 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우리 미술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미술이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되거든요."

- 선생님, 그럼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또 선생님께서 작업하시면서 생각하신 촛불정신은 어떤 것일까요?
"허허허, 저야 수묵을 하는 사람이니 '수묵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하겠죠. '수묵의 정신'이라는 것은 소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그림으로 표현하는 거지만 화선지, 먹, 작가가 삼위일체가 됐을 때 자연스러움을 지닌 그림이 나오게 돼요. 화선지는 자신만의 결이 있어요. 그래서 그 결이 상하지 않도록 따라서 먹이 번지고, 먹은 화선지 위에 올려져서 화선지가 움직이는대로 따라 움직이면서 번지죠. 작가는 고민을 해서 붓질을 하지만 화선지에 몸을 맡기게 되는데 저는 그게 '수묵의 정신'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오는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G&J 광주전남갤러리에서 수묵화가 <허달용 개인전>이 열린다.
 오는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G&J 광주전남갤러리에서 수묵화가 <허달용 개인전>이 열린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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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하늘.  허달용.  122x184cm.  한지에 수묵채색.  2018
 붉은 하늘. 허달용. 122x184cm. 한지에 수묵채색. 2018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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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붉은 하늘.  허달용.  한지에수묵 채색. / <아래>  붉은하늘.  허달용.  한지에 수묵채색
 <위> 붉은 하늘. 허달용. 한지에수묵 채색. / <아래> 붉은하늘. 허달용. 한지에 수묵채색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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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허달용 작가는 자신이 붓을 들고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붓에 닿는 화선지와 그 위에 올려지는 먹을 먼저 생각하고 있구나. 어쩌면 그것이 허 작가가 삶을,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근본으로 삼은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상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것. 허작가가 말을 잇는다.

"촛불의 정신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이 아니라 서로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소통이 제일 중요한 거지요. '이게 제일이야, 이 쪽으로 가야 해'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하고 생각의 차이와 입장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접점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어요."

그림들이 참 고요하다. 연먹이 깔리고 그 위로 층위를 다르게 가진 중먹이 지나가고, 진먹에 다시 눈길이 머무른다. 까만 먹 하나로 고요를 그려내고 있는데 무겁지 않고, 위압감을 주지 않으면서 사뿐이 내려 앉아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 주고 있는 듯하다.

 고요.  허달용.  한지에 수묵
 고요. 허달용. 한지에 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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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  허달용.  한지에 수묵
 고요. 허달용. 한지에 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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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래 농사를 짓는 바다의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낸 대나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물결에 실어두고 고요와 만난다. 빛이 있고, 물상이 있고, 그림자가 있는 곳에 잔잔한 장흥 바다가 그것들을 품고 있다. 어쩌면 허 작가는 바다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선생님, 광주 민예총 회장이신데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활동하시기는 힘들지 않으셨나요? 또 앞으로는 어떤 일들을 해보고 싶으셔요?
"탄압이야 늘상 있는 일이죠. 이명박 시절 광주에서 4대강 때문에 솔찮이 싸웠죠. 제가 대표를 맡고 있을 때라 사찰 대상이었는데, 늘상 받아 온 사찰이라 그것 때문에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못 그리고 하지는 않았어요. 촛불혁명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능한 박근혜 정부를 탄핵시킨 것 뿐 아니라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어요."

"시대가 어려울 때 민족미술이 활성화 되는 측면에 대한 고민도 컸어요. 시대가 좋을 때도 민족미술, 민중미술이 있는 거고, 시대가 각박할 때도 민족미술, 민중미술이 있는 거거든요. 민족미술이나 민중미술이 선동의 역할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민중의 가슴속으로 들어가야 진짜 미술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그림으로 가슴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걸까? 또 민미협이나 민예총 같은 진보 진영에서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 고민하고, 움직이고, 미래에 대해 다시 담금질을 해야하는 시기라는 생각도 들고. 이제 시민 의식이 높아진 만큼 문화판도 질높은 고민들을 하면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죠."

왼손으로 머리에 쓴 모자를 만지며 웃는다. 코 밑에 수염이 조금 전에 본 장흥 앞바다 파래 채취터 풍경을 그린 연작 <고요>에서 삐죽삐죽 솟아 오른 대나무를 닮아있다. 어쩌면 미술을 하는 작가들은 자신을 닮은 것들을 그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야.  허달용.  한지에 수묵
 전야. 허달용. 한지에 수묵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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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서 그리는지, 아니면 그리다가 닮는 건지. 이야기를 듣다가 그런 생각이 들자 슬몃슬몃 웃음이 배어 나온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바라보면서라 그런지 웃음이 채색화 그림 속 노을처럼 느껴진다. 다시 질문을 건넨다.

 수묵화가 허달용씨가 자신의 수묵채색으로 완성한 자화상 시리즈 사이에 섰다.
 수묵화가 허달용씨가 자신의 수묵채색으로 완성한 자화상 시리즈 사이에 섰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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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술대에서는 동양화가 폐강이 되는 곳이 제법 있다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묵이 어려운 작업이기는 해요. 다른 작업들은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고쳐 할 기회가 있기도 하는데 수묵은 그렇지가 않아요. 더군다나 우리는 서구의 미술 위주로 교육을 받았고,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고, 생활도 서구적으로 변했죠. 원색에 가까운 색채에 더 익숙하고, 미술판도 자본의 논리를 따라가게 되니 수요가 적은 수묵이 발붙이기 어렵게 되었어요.

하지만 수묵은 우리 민족의 미술이기도 하고, 형상화 이전에 철학적 사고를 많이 요구해요. 요즘 사회는 정적이거나 느림보다는 빨리빨리를 요구하잖아요. 결과로 바로 연결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수묵화의 수요가 적으니 대학이나 그림 그리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기피하게 되는 거지요. 어떤 면에서는 문화에 대한 품격이나 고민이 가벼워지고 있는 듯 한데 힘들더라도 단단해지고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선생님께서는 평생을 통해 그림을 그리셨을텐데 '그림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를 한다면 무엇일까요?
"종교. 그림이 저에게는 종교라고 생각해요. 하느님 믿듯이 무작정 믿고 따르는 거. 그림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변화 시킬 수 있으니까 저에게는 종교인 거죠.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도, 또 그림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우리는 그림 그릴 때 예쁘게 그릴려고 하지 말자.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거지만 그 전에 우리들에 대해서 고민 많이하고, 공부하고, 대상에 대한 올바른 관심과 애정을 담자. 머리로 그리지 말고 뜨거운 가슴으로 그리자' 뭐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는 해요."

붓이 그렇다. 날렵한 선으로 보인다고 해서 빨리 그려낸 것만은 아니다. 날렵하되 가볍지 않기 위해 화선지 위에서 날렵한 붓끝은 제 무게를 딱 실을 만큼만 실었을 것이다. 그 흉중에 품은 먹물 또한 그랬을 것이다.

허달용 작가는 수묵화를 통해 흉중에 자신이 품은 민족의 미술과 민중의 미술에 대한 고민을 품고 그것을 풀어낼 것이다. '민중의 진경(眞景)'을 그리던 허달용 작가가 '묵언의 빛'을 밝히며 전시를 진행한다. 그의 기도 같은 묵언 앞에서 갑자기 거실 책상 위에 뒹굴고 있을 나의 붓들이 생각난다.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무엇을 그리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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