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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 행진 한 전장연
▲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 행진 한 전장연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 행진 한 전장연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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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발로 알아서 간다고. 내가 알아서 움직인다고!"

20일 오전 9시쯤 서울 종로구 내자동 사거리 한복판에서 울려퍼진 절규다. 이런 호소에도 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애인들의 휠체어를 들어 옮기려고 했다. 이에 장애인들은 분신과도 같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아스팔트 바닥에 누웠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는 이날 오전 8시쯤 효자동치안센터에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까지 약 3시간에 걸쳐 행진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포함해 500여 명(주최측 추산)이 차도 1차선 정도를 차지한 채 긴 행렬을 이뤘다. 그 행렬 양 옆을 480여 명 경찰들이 에워싼 채 걸었다.

장애인의 날 행진, 경찰과 실랑이로 30여 분 중단

휠체어 행렬은 길이 좁아지는 내자동 사거리 인근에서 30분 정도 멈췄다. 경찰이 차량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려고 장애인들을 인도쪽에 바짝 붙여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장애인들 동의 없이 휠체어에 손을 댄 것이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가겠다고 외쳤지만 경찰들은 인도쪽에서 멀어지는 일부 휠체어를 막아 세우며 휠체어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여경들이 여성 장애인의 몸을 동의 없이 만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 행진 한 전장연
▲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 행진 한 전장연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 행진 한 전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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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고 있다는 박길연씨는 "여경 4명이 와서 잡으려고 했다"라며 "'내 발로 간다, 내가 알아서 움직인다', '류머티즘 관절염이다'라고도 외쳤는데도 여경 한 명이 손을 꽉 잡았다"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휠체어에서 내려 바닥에 드러누운 채 경찰에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경찰들은 "위험해서 그렇다"라며 "장애인들이 행렬에서 이탈하는 것처럼 보였고 바로 옆에 차가 다녀 보호 차원에서 (휠체어를 이동시키려) 한 것이다"라고 했지만 장애인들은 수긍하지 않았다. 행렬은 "사과 받고 행진하자"라고 외치며 움직이지 않았다.

구본형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저희도 이동할 권리가 있다"라며 "이동하는데 경찰이 자꾸 막아서 항의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 스스로도 안전히 갈 수 있는데 자꾸 보호하려고 하니까 그렇다"라며 "장애인의 날인 오늘도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 하는거냐"라고 말했다.

노금호 대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도 "365일 거의 집 안에만 있다가 오늘 하루만큼은 자유로워 지고자 나왔는데 내 동의 없이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라고 분노했다.

이형숙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 3대 적폐폐지를 위한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장애인들에게 전동 휠체어는 몸과 같다. 몸 만지는 것 마냥 싫은 거니 만지지 말라는 것인데, 마음대로 만지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위험해서 그랬다는 경찰측 주장에 대해서도 이 집행위원장은 "위험하지 않다"라며 "(경찰들은) 차가 빨리 가야 하니까 사람 보고 조심하라고 하는데 사람이 위험하니 천천히 가라고 자동차 쪽에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

대치 상황이 30분 정도 이어지자 여경 지휘관이 누워있는 박씨에게 다가가 "옮기는 과정에서 불편하게 해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행진은 그제야 다시 움직였다. 박씨는 "진정한 사과라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제가 계속 누워있는 것이 불편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일어섰다"라고 밝혔다.

'출근길 행진' 비판에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살만 한 줄 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 행진 한 전장연
▲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행진한 전장연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심 행진 한 전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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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장애인 행진이 출근 시간대에 진행되다보니, 일부 시민과 운전자가 항의하기도 했다. 오전 8시쯤 청와대 인근에서 출발한 행진이 경복궁, 광화문, 안국역 일대 차도를 일부 차지해 차량 소통이 부분 통제됐기 때문이다. 시내버스 운행이 지체되자 일부 시민은 "출근길에 이래야 하냐"라고 투덜대기도 했다. 행진이 오전 10시쯤 안국역 인근을 지날 때는 일부 택시가 경적을 시끄럽게 울리기도 했다.

지난 19일 대전에서 와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 농성을 한 장애인 박명용씨는 "'장애인들이 뭐 저렇게까지 하나'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있다'라고 외치고,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아이가 울지 않으면 부모는 아이가 뭐가 필요한지 모른다"라며 "만약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장애인 살만 한가 보다'라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박씨는 "비 오면 활동하기 어렵다고 1년 내내 비 오지 말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라며 "불편해도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 한다. 365일 매일 행진하는 것도 아니고 1년에 하루나 이틀 정도 하는 것인데도 (시민이) 불편해 한다면 (행진이 왜 필요한지) 설득하는 방법 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한편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는 이날 오후 1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4.20 장애인차별 철폐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장애인 복지 예산 확충과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등을 촉구할 계획이다.


태그:#장애인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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