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2연승이다 10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2차전에서 서울 SK 나이츠에 승리한 원주 DB 프로미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2018.4.10

▲ DB, 2연승이다 10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2차전에서 서울 SK 나이츠에 승리한 원주 DB 프로미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2018.4.10 ⓒ 연합뉴스


'한국농구의 살아있는 전설' 김주성이 16년간의 화려한 프로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앞서 김주성은 2017-2018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원주 DB 프로미가 서울 SK 나이츠에 2승 4패로 무너지며 현역으로 마지막 기회였던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당초 꼴찌 후보로 거론될만큼 약체 평가를 받았던 원주였기에 정규 리그 우승과 챔피언 결정전 진출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마무리라고 할 만하다.

중앙대 졸업 후 2002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김주성은 줄곧 원주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한 원클럽맨이다. 전신인 원주 TG 삼보에서 시작하여 데뷔 첫 해인 2002-2003 시즌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비롯해 팀을 3번이나 정상으로 이끌었다.

원주의 간판스타이자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전설

김주성은 원주의 간판스타를 넘어 KBL와 한국농구를 풍미한 전설이었다. 김주성은 정규 리그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각각 두번씩 MVP에 선정됐고, KBL 베스트 5에도 8차례나 아름을 올렸다. 통산 득점은 1만276점, 리바운드는 4천423개로 모두 서장훈(1만3천231득점, 리바운드 5천235개)에 이어 역대 2위다. 특히 전매특허인 블록슛은 1천37개로, KBL에서 유일하게 1천 개를 돌파한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김주성의 활약은 눈부셨다. 김주성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은퇴무대가 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무려 16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아시안게임에만 5회 연속 출전한 것을 비롯하여 FIBA 아시아컵의 전신인 아시아선수권에도 6회 출전, FIBA 농구월드컵(구 세계선수권) 본선에는 2회 출전했다. 특히 2002년 부산과 2014년 인천, 홈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도 오직 김주성뿐이다.

김주성의 행보는 NBA(미 프로농구)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전설적인 빅맨인 팀 던컨, 프로농구 5년 선배인 서장훈과 자주 비교된다. NBA 역사상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꼽히는 던컨은 조용하고 착실한 이미지로 '스몰마켓' 샌안토니오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5번이나 챔프전 우승을 경험했다. 오랜 시간 한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원클럽맨으로 오랜 시간 군림하며 왕조를 열었다는 점이나,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와 자연스러운 팀내 세대교체의 모범을 제시했다는 점 등도 비슷하다. 심지어 '연속 우승' 기록이 없다는 것까지 던컨과 김주성은 닮은 부분이 유독 많다.

반면 서장훈과는 동시대를 풍미한 라이벌이자 대조적인 농구 스타일로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두 선수 중 누가 한국 농구 역대 최고의 토종 빅맨이었는가하는 논쟁은 농구 팬들 사이에서 지금도 심심찮게 거론되곤 한다.

정 반대의 스타일 서장훈과 종종 비교되기도

환한 표정의 김주성 8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 서울 SK를 상대로 승리한 DB 김주성이 웃음을 보이고 있다. 2018.4.8

▲ 환한 표정의 김주성 8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 서울 SK를 상대로 승리한 DB 김주성이 웃음을 보이고 있다. 2018.4.8 ⓒ 연합뉴스


김주성은 '수비형 빅맨'의 교과서와도 같다. 김주성은 기록보다 도움 수비나 스크린 등 궂은 일에도 헌신하는 팀 공헌도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주성은 다소 개인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도 오히려 팀원들의 능력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선수라는 점에서 서장훈의 플레이스타일과 정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개인보다 팀으로서의 업적은 김주성이 크게 앞선다. 서장훈이 3회 챔프전에 올라 2회 우승한 반면, 김주성은 8회 챔프전에 올라 3회 우승했다. 정규 리그 우승 경험은 김주성이 무려 5회나 되는 반면 서장훈은 의외로 단 한 번도 없다. 아시안게임 우승도 김주성이 2회, 서장훈은 1회다. 정규 리그와 달리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통산 기록은 김주성이 득점(1천500점), 리바운드(623개), 블록슛(102개) 등에서 모두 1위를 독점하고 있다.

모범적인 선수 이미지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김주성이지만 그에게도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골수 농구 팬들 사이에서 김주성은 과도한 플라핑과 거친 플레이, 판정에 대한 잦은 불만 등으로 비판 받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묵묵하고 성실하던 이미지였지만 노장 선수가 되면서 안 좋은 소리도 듣게 됐다.

대표적인 계기는 2004년의 '주성타' 사건이었다. 당시 피해자는 바로 서장훈이었다. 2004-2005 정규 시즌 경기 도중 골밑을 수비하다가 서장훈의 목을 스파이크 찍듯이 가격한 장면이다. 당시에도 김주성은 코트에 쓰러진 서장훈을 내버려두고 심판에게 파울이 아니라고 항의하기 바빴다. 이 사건 이후 서장훈은 은퇴할 때까지 목 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출전해야 했다.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갈 김주성

환한 표정의 김주성 8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 서울 SK를 상대로 승리한 DB 김주성이 웃음을 보이고 있다. 2018.4.8

▲ 환한 표정의 김주성 8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 서울 SK를 상대로 승리한 DB 김주성이 웃음을 보이고 있다. 2018.4.8 ⓒ 연합뉴스


화려했던 20대 시절과는 달리, 선수경력 후반부인 30대 이후로는 부침이 많았던 것도 조금은 아쉬운 대목이다. 김주성이 프로 무대에서 세 번의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것은 모두 20대에 달성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후로는 올해까지 4번이나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음에도 번번이 정상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국가대표팀에서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김주성의 마지막 우승 기록이다.

김주성의 30대는 한국 농구 역시 국제무대에서 암흑기를 겪던 시절이었다. 프로농구도 경기력 저하와 승부조작, 불법도박 등 각종 논란으로 인기 하락이 가속화되던 시기와 겹친다. 농구의 인기가 아직 살아있던 1990년대, 2000년대에 활약했던 스타 선수들과 비교하면 김주성의 업적이 조명받지 못한 점도 사실이다.

누구보다 파란만장하면서도 영광스러운 선수생활을 보냈던 김주성도 이제 정든 유니폼을 벗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됐다. '은퇴 후 영구결번'은 이미 예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주 DB 팬들은 김주성이 은퇴하더라도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언젠가 '미래의 원주 감독'으로 돌아올 것이라 벌써 예상하고 있다. 김주성의 농구인생은 이제 한 막을 내렸을뿐 완전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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