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과연 다를까. 아니 달라야 한다. 한국 여자배구가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에 도전할 수 있느냐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차해원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확고한 방침을 밝혔다. 그는 18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도쿄 올림픽은 물론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장신 유망주 발굴·육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미 세계 배구 강팀들은 작년부터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장신 유망주를 주요 국제대회에 적극 기용하면서 육성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차 감독이 꼽은 장신 유망주는 대부분 현재 고등학생이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고교 최고 기대주인 정호영을 비롯 박은진, 이주아, 나현수 등이다.

정호영(선명여고)의 최대 장점은 고교 2학년임에도 한국 배구에서 김연경 다음으로 큰 190cm 장신 공격수라는 점이다. 특히 점프력과 공격 타점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공격 파워와 기술 향상, 체력 보강 등의 과제가 남아 있지만, 습득력이 좋아 국가대표 공격수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호영의 키는 지금도 자라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태백산배 고교 대회에서 정호영의 활약을 눈으로 본 프로 감독들조차 "지금 프로 무대에 가도 최고 공격 타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호영을 신인 드래프트에서 잡기 위해 다음 시즌 '꼴찌 경쟁'(탱킹)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프로 감독들 "정호영, 지금 프로 가도 최고 타점"

 정호영(왼쪽, 190cm)과 박은진(오른쪽, 188cm)

정호영(왼쪽, 190cm)과 박은진(오른쪽, 188cm) ⓒ 박진철


차해원 감독은 "정호영이 대표팀 라이트 공격수로 성장해줘야, 중국의 리잉잉(19세·192cm) 같은 세계 강팀들의 막강한 장신 공격수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정호영은 U19(청소년)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끝나는 순간 곧바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들어온다"며 "아시안게임부터 세계선수권 대회까지 계속 필요한 선수"라고 말했다. 정호영이 라이트든 레프트든 공격뿐만 아니라 장신 블로킹 벽을 쌓아준다면, 김연경과 다른 공격수들이 한결 수월해진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박은진(188cm·선명여고)도 정호영 못지않은 특급 장신 유망주다. 센터 공격수로서 파워 있는 속공과 블로킹 센스가 좋아 일찌감치 성인 국가대표 발탁이 예상됐다. 이주아(186cm·원곡고)도 센터 공격수로 기량이 좋고,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다.

나현수(186cm·대전 용산고)는 왼손잡이 장신 라이트 공격수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점프와 블로킹 능력이 좋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을 보고 전격 발탁했다. 박은진, 이주아, 나현수는 고교 3학년으로 올해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나온다.

'고교 특급' 박은진·나현수, 성인 국가대표 입성

현재 정호영과 이주아는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돼 있다. 여자배구 U19(청소년) 아시아선수권 대회는 오는 6월 10일부터 17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네이션스 리그(5.15~6.14)와 일정이 겹친다. 대회 일정이 겹칠 경우 규정상 두 대회에 이중 등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청소년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대회가 끝난 이후부터 성인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

반면 박은진과 나현수는 1999년생으로 나이 제한에 걸려 청소년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때문에 차 감독은 두 선수를 오는 5월 15일부터 시작하는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아래 네이션스 리그)에 출전하는 성인 국가대표팀에 우선 포함시켰다. 정호영, 이주아 등 일부 고교 선수는 청소년 대회가 끝나면 합류시킬 예정이다.

현재 여자배구 성인 국가대표팀은 지난 15일부터 진천선수촌에서 네이션스 리그 준비를 위한 소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민국배구협회가 12일 발표한 후보 엔트리 21명 중 18명이 소집훈련에 참가한다. 훈련을 통해 네이션스 리그 경기에 출전할 최종 엔트리 14명을 선발한다.

소집훈련에는 레프트에 김연경(192cm), 박정아(187cm), 강소휘(180cm), 이재영(178cm), 김주향(180cm), 유서연(174cm)이 포함됐다. 라이트는 김희진(185cm), 나현수(186cm), 센터는 양효진(190cm), 김수지(188cm), 정선아(183cm), 김채연(184cm), 박은진(188cm)이 참여한다. 세터는 이효희(173cm), 이나연(173cm), 이다영(179cm), 리베로는 임명옥(175cm), 나현정(163cm)이 합류했다.

이 중 고교생인 박은진과 나현수는 태백산배 고교 대회가 끝나는 19일 밤 진천선수촌에 합류한다. 김연경은 22일에 입촌한다. 중국 리그가 늦게 끝난 데다 한국-태국 올스타전, 중국 리그 올스타전 참가 등으로 국내 선수와 달리 거의 휴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 감독은 주전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도 신경을 쓸 계획이다. 올해 국제대회의 살인적인 일정을 감안하면, 주전 선수 위주로 모든 대회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정답도 아니라는 게 차 감독의 생각이다. 네이션스 리그는 거리가 먼 대회는 김연경, 양효진, 김수지 등 고참급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줄 방침이다. 올해 가장 중요한 국제대회인 세계선수권에 주력하기 위해 AVC컵 대회도 1.5군 또는 신진 유망주 위주로 출전할 생각이다.

장신 유망주 성공작 나와야, '도쿄 올림픽 메달' 보인다

 김연경(왼쪽) 선수와 정호영(오른쪽) 선수.

김연경(왼쪽) 선수와 정호영(오른쪽) 선수. ⓒ 박진철


차 감독이 장신 유망주 발굴·육성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 메달과 김연경 이후'를 위해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이기 때문이다.

김연경이 은퇴할 경우 한국 여자배구는 세계 최고의 완성형 공격수가 빠지는데 그치지 않고, 장신화마저 무너지게 된다. 여자배구가 국제대회에서 올림픽 4강, 8강까지 가고 세계 강호들과 맞대결이 가능한 이유는 김연경의 존재와 함께 신장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를 빼고는 다른 세계 강팀들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190cm대 공격수와 장신 센터가 국가대표 주전급으로 성장해 준다면, 김연경과 대표팀 모두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다름이 없다. 도쿄 올림픽 메달 도전이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경험과 노련미만으로는 어렵다. 어리고 힘 있는 장신 선수의 겁 없는 활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열악한 학교 시스템에만 맡겨 놓으면, 장신 공격수는 성장이 멈추거나 실패할 위험이 크다. 때문에 김연경이 건재할 때 하루라도 빨리 옆에서 보고 배우도록 하고, 큰 국제무대 경험도 쌓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차 감독의 장신 유망주 중용 방침은 그런 인식과 절박함이 바탕에 깔려 있다.

차 감독은 김연경 등 고참급 선수들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장신 유망주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이들이 국제대회에서 쉴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기 때문이다. 또한 중간급 선수들에게는 더 잘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되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유망주 기용, 대표팀 운영·리그 흥행 '일석삼조 효과'

 차해원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차해원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 한국배구연맹


세계 배구 강국들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주요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해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제대회를 통해 새로운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들을 키워내야 국가대표팀 운용에도 여유가 생긴다. 20대 후반~30대 초반 선수들은 도쿄 올림픽 때까지 현재의 기량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운이 나빠 부상을 입게 되면 출전조차 못할 수 있다. 그런 경우 등을 대비해 지금부터 유망주들을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시켜 기량과 경험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것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세계 강팀들의 필수 코스이자 당연한 국가 전략이다.

한국 배구도 과거 국가대표를 보면 고등학교와 대학생, 프로 초년생 등 나이 어린 유망주들을 발탁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남자배구의 김세진, 문성민, 전광인, 여자배구의 김연경, 양효진 등이 그런 과정 속에서 대형 스타로 성장한 것이다.

어린 유망주들이 국제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경우 프로배구 V리그 흥행에도 큰 활력소가 된다. 유망주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지금이 여자 프로배구 신생팀 창단의 최적기이며,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배구가 세계 강호들과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스피드 배구, 장신화, 서브 강화'가 시급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건 더 이상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차 감독은 "여자배구 대표팀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다 빠르게 가져갈 생각"이라며 "스피드 배구는 리시브 타령만 해서는 안된다. 리시브가 조금 나쁘더라도 빠르게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여자배구 대표팀의 장신화가 무너지지 않도록 장신 유망주 발굴·육성에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실천이다. 신념을 가지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차 감독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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