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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장.
 야구 경기장.
ⓒ 박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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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스포츠 프로야구, 작년에만 약 840만 명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 한때 야구장은 주로 남성 관중들이 찾는 장소였다. 그러나 근래 야구장을 찾는 이들은 다양해졌다. 야구장을 둘러보면 연인, 친구, 가족끼리 온 관중이 대부분이다. 특히 야구장은 가족단위 팬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지역 연고 팀을 응원하는 경험을 통해 추억을 쌓는다. 더 나아가 이런 경험을 통해 사회화된다. 최근 야구 경기 욕설 논란이나 심판과의 다툼에 대해 구단이 자체 징계 내지는 협회 차원의 징계를 내리는 것도, 야구장에서 아이들이 사회의 관점과 기준에 대해 익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야구장에서 사회화는 경기에만 있지 않다. 경기가 쉬는 시간엔 관중들을 위한 하프타임 이벤트가 가득하다. '댄스타임'이나 '경품추천' 등의 이벤트와 함께 '키스타임'도 있다. 카메라가 무작위로 커플로 온 관객을 화면에 잡으면 이들이 여러 관중 앞에서 키스하는 이벤트다.

지난 7일 경기를 보러 어느 야구장을 찾았을 때다. 키스타임 전광판에는 세 커플이 화면에 잡혔다. 두 남녀 커플이 잡힌 이후 남자 두 명이 화면에 잡혔다.

"숨겨왔던 나의~"

경기장 일대는 폭소가 터졌다. 화면에 잡힌 두 사람은 당혹스러워했고 사회자는 둘의 키스를 종용했다. 결국엔 두 사람은 키스하지 않았고 경기는 7회 말로 넘어갔다. 비단 그 야구장에서만 있던 일일까.

그 지난 시즌에 기자가 직관을 갔을 때에도 남남커플을 키스타임에 잡아준 일이 있었다. 게다가 유튜브에 '키스타임'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이 같은 남남커플의 키스타임이 다른 구장이나 다른 종목의 경기장에서도 왕왕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왜 하필 남남커플의 키스타임일까?

왜 남남(男男) 커플이 유독 키스타임 카메라에 잡히고 희화화되는 걸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인식이 깔렸다. 첫 번째로는 이 공간에 동성애자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동성애자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두 남성의 키스타임은 '이상한 일'이고 '재미있는 유희 거리'가 된다.

만약 구단 측에서 카메라에 잡히는 관객이 성 소수자일 가능성을 고려했다면 유사 아웃팅(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행위를 공중에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구단 측은 이를 지켜보는 동성애자 관객의 불편함 또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남성은 성 의식에 둔감한 성별이라는 전제가 있는 듯하다. 동성 키스타임은 꽤나 많이 있지만 여여(女女) 커플의 키스타임은 없다. 즉 여성은 공중에서 동성과 키스를 강제하기에는 성 감수성이나 민감도가 더 높고 남성은 둔감하거나 무신경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의식의 발현이다. 남성은 공중에서 동성과 키스해도 좀 부끄럽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성별과 무관하게 개인의 성 감수성이나 민감도는 천차만별이다. 둔감한 개인은 있을지 모르나 둔감한 성별은 없다.

문제는 경기장에서 많은 이들, 특히 아이들이 이러한 편견을 사회화한다는 것에 있다. 희화화된 남남커플의 키스타임 장면을 경기장에서 목격한 아이들은 동성애나 성 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은연중에 '동성애자는 없는 존재', 혹은 있더라도 '우습고 이상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또 동성애 성향을 가진 아이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커밍아웃한 유명 방송인 홍석천 씨는 "게이는 내 친구, 내 가족일 수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이반도 일반과 다름없는 사람이며 실존하고 있다. 야구팬일 수도 있고 야구장에 올 수도 있다.

야구장이 야구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 성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멈추어야 할 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키스타임이 보여주는 의식의 벽은 야구장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넘어서야 할 장벽일 것이다.


태그:#야구장, #키스타임, #성소수자, #인권,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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