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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잘 시간도 부족한 상태로 힘든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 직장인 잠 잘 시간도 부족한 상태로 힘든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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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30분이면 억지로 눈을 떴다. 졸린눈 비벼가며 비몽사몽으로 출근준비를 하고 아침은 먹는둥 마는둥 시간에 쫒겨 겨우 몇숟가락 뜨고 6시 30분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버스를 놓칠새라 서둘러 집을 나선다. 여름엔 그래도 좀 괜찮은 편인데 한 겨울에는 새벽 공기가 너무 차다. 심지어 버스안에 히터를 틀어놓아도 버스에 앉아 졸고 있으면 발이 너무 시렵다.

6시반 버스를 타야 김해 시내를 뱅글 뱅글 돌아 창원에 있는 경남도청 근처 회사에 8시쯤 떨어진다. 출근시간은 8시반까지이지만 40분 배차 버스라 다음차를 타면 늦다. 그래서 매일 같이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야만 했다. 5시 30분이라는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제 시간에 퇴근하는건 한달에 한번 있는 '패밀리 데이'에나 가능했다.

일이 많을 때는 창원대 앞에서 12시에 집으로 오는 막차를 타고 퇴근했다. 그런날이면 하루에 5시간도 잠을 자지 못하고 또 일어나 다음날 출근을 해야했다. 버스를 타지 않고 자차를 이용하면 출근 시간이 조금 줄어드는데 당시 창원 2터널이 뚫리지 않았던 시절이라 단 하나뿐인 김해-창원간 터널을 지나기 위한 차들로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때로는 부족한 잠으로 졸음운전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과감하게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루 하루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때부터 사회에 나와 오롯이 돈버는 '일'만 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일 말고는 딱히 내가 할 줄 아는게 없었다. 다른 또래 친구들처럼 PC 게임을 즐기는것도 아니었고 스포츠 관람과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는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뭐든 경험 해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 알텐데 나는 그런 경험 자체를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일밖에 할 줄 몰랐다.

그런 내가 독립을 선언했다. 나름 과감한 결정이었다. 내가 암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계기가 없었더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직장생활 이외에 다른 인생이 있다고는 상상 한번 못해보고 살았다. 게다가 나는 나이 많은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늦둥이인 나를 낳고는 엄청난 고생을 하며 사셨다. 그런 어머니는 내가 독립선언을 했을 때 아주 큰 걱정을 하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 후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해 집에서 빈둥대던 시절까지, 어머니는 낮이나 밤이나 집앞 길가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며 내 뒷바라지를 하셨다. 그 때는 그런 어머니가 너무 부끄러웠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어머니를 부끄러워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더욱 악착같이 살았다. 내가 좀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승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드리는게 '효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딱 어떤 일을 하고 싶은건 아니었고 단지 조금은 '여유롭게' 살고 싶었다. 조금 느리게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며 살고 싶었다. 지금껏 나에겐 '일'이 가장 우선이었고 나머지 모든 것들은 '나중에'라며 미루고만 살았다. 그런데 막상 아파보니 나중으로 미뤄뒀던 모든 일들을 영원히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독립 아이템을 잘 찾았다. 그리고 그 아이템으로 한달에 100만원 가까운 수익을 벌 수 있게 됐다. 직장에 다닐 때 받던 월급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돈이지만, 막상 회사를 안나가니 돈 쓸 일도 별로 없어서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괜찮았다. 물론 퇴직금과 그 동안 모아둔 돈도 조금 있었기 때문에 적은 수익으로도 한동안은 버틸만 했다.

수익이 줄어든 대신 나는 엄청난 '시간'을 보상받았다. 하루 24시간중에 5시간 잠자고 12시간에서 많게는 14시간 넘게 회사에 있었고 하루에 버스로 출퇴근 하는 시간만 3시간 하던 쳇바퀴를 벗어난 것이다. 나에겐 충분한 수면 시간과 내가 원하는대로 조정할 수 있는 스케줄, 그리고 그동안 뒷전으로 미뤄왔던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블로그, 요리, 글쓰기...나의 '수익 파이프 라인'

지리산에 있는 캠핑장에 혼자 야영을 하며 저녁에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 야외 사무실 지리산에 있는 캠핑장에 혼자 야영을 하며 저녁에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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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니 '하고 싶은 일'이 하나 둘 생겨났다. 직장생활을 할 때 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 물으면 머릿속은 하얘졌다. 그리고 내 동료들 중 누군가는 회사의 '임원'이 되는게 꿈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 꿈도 귀한 꿈이다. 단지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삶에서 조금씩 원하는게 생기고 긍정적인 삶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것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릴적 취미삼아 해왔던 음악으로 인해 내 독립 아이템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크지 않지만 수익도 발생한다. 그 외 남는 시간을 쪼개 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하나씩 도전했다. 그리고 그 일들로 아주 적은 수익이라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적은 수익 파이프를 여러개 만들어 내가 원하는 목표 수익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나에게 더 안정적일 거라는 판단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 수익 파이프가 '월급' 단 하나 뿐이다. 물론 투잡, 쓰리잡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어렵다. 그리고 회사에서 싫어한다. 우리 회사는 취업 규칙에도 '투잡금지'가 명시 돼 있었다. 돈 몇푼 더벌려고 투잡 뛰다 걸리면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 승진이나 연봉인상에 영향을 끼쳐 오히려 더 적은 수익을 올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 하기도 한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월급'이 끊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면 대안이 사라진다. 나의 경우를 대입해보면 월급이 안나올 경우 평소에 일 외에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다른 직장을 찾아보는것 이외에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을 것 같다. 반면 적은 수익이지만 여러개의 수익 파이프 라인을 만들어 놓으면 그 중 한두개가 갑자기 끊어져도 나머지 파이프 라인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살면서 또 다른 파이프 라인을 만들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젊은 부자>라는 책을 읽고 이 '수익 파이프 라인' 이론에 대해서 격하게 공감했다. 그 후 '나도 꼭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했던건 아닌데 독립 하고 바깥에 나와 내 능력으로 돈을 벌려고 하다보니 월급 받던만큼 돈 버는게 아주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조금씩 조금씩 여러곳에서 수익을 발생시킬 방법을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이론이 맞아 들어갔다.

조금씩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방법을 찾아보고 취미로 시작해 조금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투병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만든 블로그는 내 첫 독립 아이템의 '영업사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한 부가적으로 매달 약간의 '광고 수익'도 발생한다. 티끌 모아 '태산'까지는 아니더라도 한푼이 궁한 나에게는 소중한 수익이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타지에서 혼자 자취를 하던 시절, 집에서 음식 만드는걸 좋아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잘 없다. 그러다 독립을 하고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다시 많아지면서 요리를 시작했다. 게다가 요즘은 TV만켜면 유명한 쉐프들이 나와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레시피도 척척 알려준다.

그 덕에 나는 '야매셰프'가 됐고 요리 레시피도 블로그에 올리면서, 각 지역의 크고 작은 요리 대회까지 나가게 됐다. 그렇게 대회 상금과 더불어 모 인터넷 요리 사이트의 '셰프'가 되면서 레시피 공개에 대한 약간의 칼럼료와 부상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한다. 블로그도 마찬가지고, 내가 경험한 일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 그 간접 경험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경험 공유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글 쓰는 일도 단순히 블로그를 넘어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매체나 정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기자단 활동 등을 통해 내가 쓴 글에 대한 원고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 외에도 다시 시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정기적으로 디지털 앨범을 발매하고 종종 지역 행사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약간의 음원 수익과 공연비가 들어온다. 그리고 모아둔 글을 책으로 출간하기도 하는데 책 역시 판매량에 따라 인세 수익이 발생한다.

이처럼 나는 투자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거창한 사업체 운영이 아닌 '프리랜서'와 같은 '지식 창업' 형태의 1인기업을 운영 중이다. 사업체라기 보다는 그냥 '나 자신'이 곧 회사다.

하나 하나 하고 싶은 일이 늘어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가능한 방법을 찾고 당장은 수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실행하면서 작은 수익이라도 발생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한다.

그렇게 하다보니 나에겐 여유로운 삶과 더불어 여러가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적은 돈이지만 오롯이 나의 능력으로 수익을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을 맛보며 매일을 새롭게 살 수 있었다. 그 덕에 독립을 하고 몇개월간의 시간이, 매일 똑같은 쳇바퀴속에 살던 몇년의 직장생활보다 더욱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태그:#직장인, #독립, #수입, #청년,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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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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