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왼쪽이 진이(장예원)이고, 오른쪽이 백이(이규회)다. 진이는 카지노에서 일하고 백이는 영월에 당구장을 연다.
▲ 영화 〈감자 심포니〉의 한 장면 왼쪽이 진이(장예원)이고, 오른쪽이 백이(이규회)다. 진이는 카지노에서 일하고 백이는 영월에 당구장을 연다.
ⓒ ·

관련사진보기


얘기를 하고 나면 후회가 남아서

전용택 감독의 영화 〈감자 심포니 potato symphony〉가 있다. 돈을 적게 들여 찍은 독립영화다. 전용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 직접 '절벽' 역으로 나오고, 강원도 영월 초등학교 동창 유오성이 지역 건달 '진한' 역으로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절벽의 친구들은 모두 전용택의 초·중·고등학교 동창이다.

이 영화에서는 과장되지 않은 강원도 말을 들을 수 있다. '술 한 자 마셔'를 "술 한 잔 마세" 한다. 또 강원도 정선 출신 김형광 선생이 일본 유학 때 형광등을 발명했다거나 백열등의 백열은 '하얀 빛을 발사한다'는 뜻의 보통명사이고, 형광등의 형광은 김형광 선생의 이름을 딴 고유명사라는 구라를 들을 수 있다. 가장 웃긴 말은 "공부를 못했는데 머리가 좋다는 건 이 나라 교육 제도의 정통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위험한 좌익사상"이라는 말이다. 김형광도 좌익사상도 모두 절벽이 한 말이고, 전용택 표 구라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진이(장예원)와 백이(이규회)가 식당에서 주고받는 말이다.
진이 : 이혼했어요?
백이 : 진이씨 얘기해 봐요.
진이 : 과묵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착각들 하는데, 난 그런 거 안 믿어. 대개 말 없는 남자들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야. 겪어 보니 그렇더라고요.
백이 : 내 얘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후회 같은 게 남아서 그래요. 그냥 있어 보이려고 그런 게 아니라...
진이 : 맞아. 그건 좀 그래.
백이는 과묵하다. 웬만해서는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 까닭이 얘기를 하고 나면 나중에 후회가 남아서 그런다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활자병에 걸린 사람들의 속성이 그렇다. 어떤 모임에 가서 했던 말을 활자로 기억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활자로 떠올린다. 이렇다 보니 자연히 말수가 적어지기도 한다.

가장 위에 있는 이가 이 영화의 감독 전용택이다. 그는 영화에서 ‘절벽’ 역으로 나온다. 그 아래 전설의 주먹 백이(이규회), 영월 건달 진한(유오성), 백이의 여자 친구 진이(장예원)를 볼 수 있다.
▲ 영화 〈감자 심포니〉(2009) 포스터 가장 위에 있는 이가 이 영화의 감독 전용택이다. 그는 영화에서 ‘절벽’ 역으로 나온다. 그 아래 전설의 주먹 백이(이규회), 영월 건달 진한(유오성), 백이의 여자 친구 진이(장예원)를 볼 수 있다.
ⓒ ·

관련사진보기


그 불편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용택 감독에 관한 자료를 찾다 우연히 그의 대학 1년 선배 이남호 신부님이 쓴 네이버 영화 리뷰를 읽었다. 거기에 전용택과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1985년, 전용택이 연세대학교 불문과에 입학하고 3월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선배와 용택은 선후배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오밤중에 둘이서만 신촌 어느 놀이터에 남게 된다. 둘은 무척 배가 고팠다. 선배는 돈이 한 푼도 없고 용택에게는 순댓국 한 그릇 사 먹을 돈이 있었다. 용택은 식당에 들어가 순댓국 한 그릇을 시킨다.

용택이 묻는다. "형, 안 먹나?" 선배가 대답한다. "괜찮다. 너 먹어라" 선배는 한 번 더 권할 줄 알고 아니라고 했는데, 용택은 더 권하지 않고 혼자 그 한 그릇을 다 먹는다. 선배는 그날 그때 일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한 번 더 권할 줄 알고 아니라고 했는데, 깔끔한 용택군은 더 권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먹고 싶었지만 아니라고 했기에 억지로 참았다. 사실 숟갈을 들이대고 같이 먹어야 했지만, 지금도 고질인, 자기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습성, 1년 선배라는 위치, 내가 뱉은 말을 책임져야 하는 그 무익한 의무감, 뭐 그런 걸로 인해 찾아온, 그때의 배고픔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용택군은 그처럼 나의 허기의 기억과 함께하는 존재이다. (...) 용택아, 생각해 보니 너를 원망할 게 아니었다. 나의 소심함이 문제였던 게지. 하여간 용택이 너는, 나의 주림의 기억과 같이할 것이다. 영원히. - 2010년 4월 6일, 〈감자 심포니, 전용택 표 구라〉
 
이남호 신부님은 애써 '깔끔한' 용택이라 하면서 그가 원래 쿨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그날 몹시 서운했고, 그만큼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그러니 25년 전 일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게다. 그런데 위 글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과거 어떤 일을 해결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선배는 이 일을 자신의 문제로 가져온다. 사실 그때 나도 엄청 배가 고팠고, 그래서 솔직히 좀 서운했지만, "이 비겁한 놈아, 한 번을 더 물어보지 않냐? 나도 배고프다" 이러면서 숟갈을 들고 덤볐어야 했다고, 문제라면 자신의 '소심함이 문제'였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영화 〈감자 심포니〉는 '기억'과 그 해결 방식 또는 기억과 반기억(또는 '되기')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이남호 신부님이 후배 용택과 있었던 옛일을 떠올리는 것도 이 영화가 '기억'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감자 심포니'에서 감자는 찰옥수수와 더불어 강원도를 상징한다. 그도 그렇듯이 이 영화는 강원도 영월이 배경이다. '심포니'가 여러 악장으로 되어 있듯, 이 영화는 네 악장으로 시퀀스를 나눴다. 영화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 한 구절을 깔고 시작한다.

"우리들의 야망 없는 현재는 그 불편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한 구절에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편한 기억'은 고등학교 때 백이(이규회)를 대장으로 한 광산파 넷이 곡괭이파 진한에게 두들겨 맞고 무릎을 꿇었던 일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이 일을 뚜렷하게 보여 주지 않는다. 다만 진한이 약속을 어기고 떼거지로 몰려와 이 넷을 무릎 꿇렸던 일이라고만, 그도 영화를 다 봐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강원도 영월 전설의 주먹 백이(이규회)다.
▲ 영화 〈감자 심포니〉의 한 장면 강원도 영월 전설의 주먹 백이(이규회)다.
ⓒ ·

관련사진보기


주인공 백이(이규회), 절벽(전용택), 혁이(이석호), 이노끼(김병춘)는 서른아홉인데도 20년 전 고등학교 때 당했던 '굴욕'에 사로잡혀 있다. 그 기억은 '상처로서의 기억'이고, '트라우마'가 되어 있다. 기억이란 게 원래 그렇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란 대체로 행복했던, 충만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라기보다는 상처로서의 기억일 때가 많다. 그 상처는 생채기일 수 있고, 서운함, 서러움, 안타까움, 억울함,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되돌릴 수 없는 후회 같은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절벽이 백이한테 말한다.
처음으로 기가 콱 막히던 그런 경험 기억나나? 며칠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결국 평생 그 상태로 살게 되더라. 난 그게 그때 진한이 새끼한테 무릎 꿇었을 때여.
넷은 모였다 하면 그때 일을 떠올린다. 혁이는 "아이 씨팔 그때 죽자 사자 한번 붙었어야 하는 건데..." 하면서 후회한다. 사실 진한이 영월에 없다면 이렇게 괴롭지도 않을 것이다. 이들이 20년 전 굴욕에 사로잡혀 찌질하게 살고 있는 반면 진한은 고등학교에서 잘렸는데도 그 학교에 장학금을 내고, 9시 뉴스에 미담으로 나오고, <조선일보>에도 한 면을 통 털어 인터뷰가 실린다. 영월 건달 진한이 잘 나가면 잘 나갈수록 그때 그날의 상처는 더 커지고 곪아터지기 직전이다. 그들은 그 상처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루도 더 살 수가 없다.

이 영화에 전용택 감독의 강원도 영월 초등학교 동창 유오성이 지역 건달 ‘진한’ 역으로 나온다.
▲ 영화 〈감자 심포니〉의 한 장면 이 영화에 전용택 감독의 강원도 영월 초등학교 동창 유오성이 지역 건달 ‘진한’ 역으로 나온다.
ⓒ ·

관련사진보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변명이었는지

백이, 혁이, 이노끼는 진한을 찾아간다. 백이가 진한에게 전화로 "빚 갚으러 왔다, 한번 치자" 한다. 진한은 그날 '혼자' 나온다. 백이는 진한을 때려눕히지만 무릎을 꿇리지는 않는다. 친구가 할 짓이 아니라면서. 그 뒤 진한은 건달 짓을 그만두고 래프팅 사업을 한다.

광산파 동무들 가운데 가장 상처가 깊은 이는 절벽이지만 그는 그날 결투에 가지 않고 길을 떠난다. 그 뒤 소설가가 되어 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는다.

걷고 걷다 보면 수많은 생각이 오고갑니다. 그리고 이내 상념에 젖어들면서 기억이 투명하게 떠오르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변명이었는지가 명확히 보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난 처음으로 강둑에서 소주를 들이키던 그 특별한 날의 기억을 보았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제 미술도구 일체를 아궁이 속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지금도 장작불 앞에 앉으면 그때 타들어 가던 유화물감 냄새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타다 만 장작같이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화가의 꿈을 완전히 쓸어냈습니다. (...) 저는 사람은 변한다는 말도 믿게 되었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여전히 믿습니다.

〈감자 심포니〉의 4악장 주제가 "필요한 것은 모두 내 안에 있다"인 것처럼 절벽의 20년 전 기억, 상처로서의 기억을 치유할 힘 또한 자기 안에 있었던 것이다. 걷다 보면 기억이 투명해지고, 무엇이 변명이고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명확히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변한다는 말도 여전히 믿는다고 한다. 물론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오래된 상처에, '그 불편한 기억'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아직 속이 없어 그런지 사람이 변한다는 말을 웬만해서는 믿지 않는 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태그:#김찬곤, #감자심포니, #기억에관한이야기, #전용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