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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018년 4월 4일 <중앙일보>의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
 2018년 4월 4일 <중앙일보>의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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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보도는 <중앙일보>가 5일 '정정보도'에 가까운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용납할 수 없다" "모욕적인 딱지를 붙였다" 등 가장 격하게 반발했던 청와대가 그 기사를 얼마나 수긍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5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중앙일보>가 정정보도에 가깝게 기사를 쓴 것 같다"라고 촌평하자,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잘 모르겠다"라고 응수했다. 대변인 공식 논평까지 내며 정정보도를 요구했던 청와대로서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중앙>의 주장 "스트라우브는 '1+1', 즉 2년을 계약하고 왔다"

<중앙일보>는 4일 치 기사(1면)에서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의 사례로 몇 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유독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세종-LS 연구위원의 사직 건'에서만은 청와대의 반박을 수용하지 않았다.

'정정보도'에 가까운 5일 치 기사(6면)에는 "반면 스트라우브는 LS측의 후원을 받아 세종-LS펠로로 근무했고, 사실상 2년 계약이었다는 주장이 관계자들 사이에서 여전하다"라며 "스트라우부는 연구소 동료를 포함한 지인들에게 급작스레 그만두게 돼 서운하다는 입장을 토로했다고 관계자들이 전하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이는 전날 세종연구소와 청와대가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연구위원(아래 스트라우브)이 세종-LS 연구위원 자격으로 계약한 기간은 2017년 3월 1일부터 2018년 2월 28일까지 1년이었다고 반박한 데 따른 재반박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전 세종-LS 연구위원. 사진은 2017년 11월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북핵, 한미동맹을 흔들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모습.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전 세종-LS 연구위원. 사진은 2017년 11월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북핵, 한미동맹을 흔들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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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중앙일보>는 같은 날 '분수대'라는 고정연재물에서도 스트라우브 건을 다뤘다. 고정애 <중앙선데이> 정치에디터는 '스트라우브 논란 단상'이라는 칼럼에서 스트라우브를 '한국에 비판적이나 애착을 가진 미국인'으로 묘사했다.

그 근거로 스트라우브가 자신의 책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현대사>에서 "40년 동안 한국은 내 가족의 일부였고 나의 두 번째 집이었으며 내 커리어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쓴 대목을 소개했다. 그의 부친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였고, 부인은 서울 출신이라는 사실도 곁들였다. 

특히 고정애 에디터는 이 칼럼에서 "그가 (한국에) 올 당시를 아는 인사는 '1년 계약이지만 1년을 연장하는 '1+1', 즉 2년으로 약속했고 펀드도 확보한 상태였다. 이는 연구소 사람들도 대충 아는 내용'이라고 전했다"라며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김대중 정부 때 국책연구소(한국개발연구원, KDI)의 선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던 중 정부 정책을 비판하다 급여가 대폭 줄고, 대외 논문 발표와 신문기고 금지 처분을 받았던 유승민 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를 '진보정권이 반대 목소리를 탄압한 사례'로 언급했다.

스트라우브도 유승민 공동대표처럼 '진보정권으로부터 탄압당한 사례'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대목이다.

스트라우브는 어떻게 세종-LS 연구위원으로 오게 됐나?  

그렇다면 <중앙일보>가 유독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스트라우브는 '1+1' 계약(1년을 근무한 뒤 1년을 추가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일까? 기자는 5일 오후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랬더니 정 실장으로부터 "그것은 맞는 얘기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스트라우브가 세종연구소와 '1+1' 계약을 맺고 '세종-LS 연구위원'으로 근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추가 1년 근무'는 서면으로 계약한 것이 아니라 전임 이사장이 구두로 약속했다는 점이다. 정 실장의 설명이다.

"올 2월에 연구소 이사장이 교체됐는데, 스트라우브는 전임 이사장이 데려온 사람이다. 전임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때 정무수석을 지낸 박준우다. 그렇게 이사장이 교체됐고, (같은 시기에) 전임 이사장이 데려온 스트라우브의 임기가 만료됐다. 그러면서 박준우 전임 이사장이 구두로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박준우 박근혜 청와대 정무수석. 사진은 2013년 12월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모습.
 박준우 박근혜 청와대 정무수석. 사진은 2013년 12월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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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실장은 "박준우 전 이사장과 LS가 가까운 사이다"라며 "박준우 전 이사장은 스탠포드대에도 1년 있었는데 스트라우브도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뒤에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런 인연으로 박준우 전 이사장이 스트라우브를 세종연구소에 데려온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6일 오전 기자들에게 보낸 논평('중앙일보의 거듭된 사실왜곡과 정정보도 요구 거부 유감')에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스트라우브가 세종연구소에 '세종-LS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박준우 전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박 전 이사장은 스트라우브에게 LS의 후원을 받아 1년 단위로 두 차례 계약을 진행해 총 2년간 세종연구소에 근무하는 것을 제안했고, 스트라우브가 이를 수락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고위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전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8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공교롭게도 박 전 이사장은 지난해 1월 14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다. 그가 근무했던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지시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지목된 곳이다.

"스트라우브가 연구소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이유

문제는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교체와 스트라우브의 계약기간 만료가 겹쳤다는 점이다. 박준우 전 이사장은 청와대 정무수석에서 물러난 직후인 지난 2015년 2월 10일부터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해왔다. 박 전 이사장의 임기는 당초 오는 2019년 2월 9일까지였지만 정관이 개정되는 바람에 지난 2월 9일로 앞당겨졌다. 스트라우브의 1년 계약기간도 지난 2월 28일에 만료됐다.

박 전 이사장의 후임은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었다. 백종천 신임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6년 11월 청와대 안보실장을 맡았고, 다음해 2월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장까지 겸임했다.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정책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대선 때에는 문재인 후보의 국방안보자문그룹인 '더불어국방안보포럼'에서 활동했다.  

정 실장은 6일 치 논평에서 "스트라우브가 연구소와 2차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박준우 전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되어 퇴임하게 되었고, 신임 이사장은 스트라우브와의 계약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추가계약을 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정 실장은 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도 "스트라우브는 정식연구원도 아니고 LS의 후원을 받아 연구소에 있는 건데 연구소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돼 추가계약을 안한 것이다"라며 "이것은 연구소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것이지 청와대로부터 압력을 받아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세종연구소는 왜 스트라우브가 연구소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한 것일까? 정 실장은 "그동안 스트라우브가 해온 발언 등을 봤을 때 연구소에 도움이 안 된다고 봤다"라며 "'평창올림픽 기간 중에도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적인 역할이 아니라 미국을 택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것들이 연구소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이미 (추가)계약이 체결돼 근무하는 중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계약도 만료됐고, 연구소에 도움도 안되는 사람을 굳이 (추가계약을 통해) 더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외교부 개입 흔적 없어... 연구소 "정정보도 안 하면 법적대응"

세종연구소.
 세종연구소.
ⓒ 세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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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백종천 현 이사장이 '문재인 코드 인사'여서 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비판적인 스트라우브와 추가계약하지 않고 1년 계약을 종료시켰다는 시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기술한 것처럼 어느 정도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이것이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된 '블랙리스트'과 같은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청와대가 지휘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과 달리 최소한 스트라이브 건에서는 청와대나 외교부가 개입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의겸 대변인이 지난 4일 공식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라고 표현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처럼 모욕적인 딱지를 붙였다"라고 강하게 반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보도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종연구소가 여전히 <중앙일보>에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실장은 6일 치 논평에서 "만약 이영종 기자와 <중앙일보>가 잘못을 인정하고 정정보도를 내면 이번 사건은 간단하게 종결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그러나 이 기자와 <중앙일보>가 계속 부적절한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연구소는 부득이하게 법적 대응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태그:#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중앙일보, #세종연구소,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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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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