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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 한파와 미세먼지의 매서운 시소게임에서도 꿋꿋이 인권과 평화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소녀들. 이번 겨울 100명의 소녀를 만난 동시에 100명의 할머니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마음을 나눈 그 여정을 소개하려 합니다.

20세기의 할머니와 21세기의 소녀들. 그들이 간절히 부르짖는 평화는 한맺힌 역사에서 비롯합니다. 유대인 학살 장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보다 무서운 것은 단 한가지다. 인류가 이 사실을 잊는 것이다.'

지금, 이 치욕스러운 과거를 명확히 기억하고 당당히 마주함으로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작은 발걸음입니다. 꽁꽁 언 두 손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두 마음이 서로의 상처를 닦아주었습니다. 진실된 역사를 밝히기 위해, 폭력과 강압으로 피 흘렸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 땅과 인류 역사에 다시는 인권탄압과 전쟁이 없기를 바라며... - 기자 말

보은 평화의 소녀상 그리고 이옥선 할머니

 이번 겨울을 전국에서 가장 따뜻하게 보낸 보은 평화의 소녀상
 이번 겨울을 전국에서 가장 따뜻하게 보낸 보은 평화의 소녀상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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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보은대추축제' 개막일인 2017년 10월 13일 보은읍 뱃들공원에서 '보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중앙 전면에 위치한 '보은 평화의 소녀상' 뒤로는 이옥선 할머니의 얼굴이 새겨진 돌조각, 모금운동에 동참한 513명의 이름과 160개 단체명, 그리고 보은평화의소녀상 건립문을 나란히 함께 세워졌다.

당시 제막식에는 특별한 한 사람이 참석했다. 바로 마이크 혼다 의원이다. 혼다 의원은 지난 2007년 7월, 일본의 위안부 문제 인정과 사죄, 역사적 책임 및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 'HR 121'을 발의하고 만장일치 채택을 주도했다. 그가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면서 정상혁 보은군수와 인연을 맺어 보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뱃들공원은 지역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문화활동지다. 또한 보은군에는 충북 유일의 생존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살고 있다.

대구가 고향인 이옥선 할머니는 열여섯 살이던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갔다. 1945년 8월 해방 때까지 이 할머니의 위안소 생활은 계속됐다. 그곳에서 3년 동안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광복 후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지만 '위안부'라는 꼬리표 때문에 숨어살 듯 전국을 떠돌다 속리산 주변 식당 등에서 일하면서 보은군에 정착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결혼했지만 아이도 갖지 못했다. 고열과 함께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일상생활도 힘들었다고 한다.

속리산 국립공원 길목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 있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집에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매일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이옥선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평생 동안 음식점 허드렛일과 날품을 팔아 모은 생활비와 약값 등을 아껴 2천만 원을 보은군민장학회에 기부했다.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은 이 할머니는 2011년 국민추천 국민포장 수상자로 선정됐다. 할머니는 뛰어난 장구 솜씨를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요리와 바느질을 손수 한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부산 출신의 이옥선 할머니와는 동명이인이다.

제천 평화의 소녀상

 제천 평화의 소녀상
 제천 평화의 소녀상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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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평화의 소녀상은 3256명의 제천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2016년 10월 7일 제천 의병관장에 건립됐다. 제천은 의암 류인석 의병대장을 중심으로 지방 유생과 농민이 외세 침입에 항거한 의병항쟁이 일어난 '의병도시'다. 제천시 숭의로 85에 위치한 의병광장은 구한말 '남산전투 유적지'로서 안승우, 홍사구 의병이 전사한 곳으로 항일운동의 이념이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제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린 날은 창의 121주년 제천의병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곳에서 매년 이를 기념하는 제천의병제 행사가 열린다. 제천시는 제천 평화의 소녀상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2017년 3월 공공조형물로 등록, 관리하고 있다.

충북 평화의 소녀상

 충북 평화의 소녀상
 충북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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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청소년광장에서 '충북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했다. 평화의 소녀상 뒤에 석판을 세워 소녀상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소녀상이 청소년광장에 자리 잡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청주 평화의 소녀상은 시민추진위원회가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취지로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 15일 청소년광장에서 세웠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단체들과 인근 주민의 반대로 시봉식만 열었을 뿐 건립을 기념하는 제막식은 열지 못했다. 한동안 갈등이 빚어졌다.

인근 주민의 반대 이유는 추모 행사가 잦을 경우 사업장 영업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었고 일부 청소년 단체는 놀이목적으로 마련된 청소년광장과 추모 목적인 소녀상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논란으로 인해 임시 전시되어 있다가 결국 청주시의 중재로 간신히 합의에 성공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리를 찾은 이후에도 청주시가 토지점유비 명목으로 매년 임대료를 부과해 논란이 일고 있다.

청주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이 왜군과 맞서 청주성을 탈환한 최초의 승전도시이다. 일제의 침략 당시에도 동학농민투쟁과, 의병투쟁 등을 벌이며 독립에 앞장서 온 마을이다.

여성인권수호 기원상

 여성인권수호 기원상
 여성인권수호 기원상
ⓒ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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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성단체협의회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여성인권수호 기원상'도 논란 끝에 청주 서원구 배티공원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같은 청주시에 위치한 충북 평화의 소녀상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지만 충북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늦어지는 바람에 충북에서 처음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다.

대전 평화의 소녀상

 대전 평화의 소녀상
 대전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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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보라매공원 끝자락에 위치한 대전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3월 1일 광복 70주년 3.1절을 맞아 건립됐다. 제막식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노예처럼 지내다 70년 전 우리나라가 해방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우리는 해방이 되지 않았다"며 "국민이 화합해서 다시는 우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은 국민이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고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대전 평화의 소녀상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민·관 공동협력사업으로 추진됐다. 지자체가 지원하고 시민 2377명이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239명 중 대전시에서는 5명이 등록됐으나 2011년 9월 마지막 생존자가 영면했다.

세종 평화의 소녀상

 세종 평화의 소녀상
 세종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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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10월 3일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 세종호수공원에 세워졌다. 건립을 위해 83개 기관 및 단체와 83가족, 1269명의 개인이 모금에 참여했다. 기단석에는 신경섭 시인의 <접몽>이 새겨져 있다. 평화의 소녀상 뒤편에는 '위안부'의 명백한 증거인 사진이 새겨져 있는 추모비가 있다. 고 박영심 할머니와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담겨있는 유명한 사진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소셜미디어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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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구보 <사색여담> 시리즈 저자 <그렇게 여행자가 된다> <상처 위를 거닐다> <여행, 그 너머에 있을 무언가> <아파야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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