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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유적지 위치 제주시
▲ 제주 4.3유적지 위치 제주시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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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2018.3.10 도민총파업 기념대회, 관덕정
▲ 태극기 2018.3.10 도민총파업 기념대회, 관덕정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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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 제주4.3 항쟁의 서막

71년 전 3월의 첫날, 제주 관덕정 광장에는 3만여의 태극기가 휘날렸다. 28주기 3.1 기념대회에 참석한 군중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 기마 경찰의 말발굽에 치인 어린이가 넘어지며 사건은 시작됐다.

넘어진 아이를 무시한 채 지나가는 기마 경찰에 시민들이 항의가 이어지고 이를 피해 도망가는 경찰을 향해 돌팔매가 날아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온 총소리! 혼비백산의 아우성과 함께 사람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여인과 어린이를 포함한 6명이 사망하며 비극은 시작됐다. 제주4.3 항쟁의 서막이다.

관덕정 현재 관덕정 모습
▲ 관덕정 현재 관덕정 모습
ⓒ 강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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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정치 1번지 관덕정 광장

제주시 원도심에는 조선시대 제주지방을 관할했던 제주목관아가 있다. 관덕정은 제주목관아의 부속 건물로 병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이 관덕정 앞마당에서 수많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반복돼왔다. 1901년 신축교난에는 제주도민과 천주교도들 간의 충돌로 제주목을 장악한 장두 이재수가 천주교인들을 처형한 장소였고, 제주4.3 당시에는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곳이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제주를 찾은 이승만 대통령은 이곳 관덕정 광장에 수많은 제주도민을 운집시킨 채 연설을 진행했다. 지금도 제주 정치인들은 어떤 결의의 순간을 맞닥뜨리면 관덕정 광장에서 그 뜻을 천명하곤 한다. 제주 정치의 1번지인 관덕정 광장은 아직도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제주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하다

제주목관아 뒤로 돌아가면 제주북초등학교가 나온다. 1907년 설치된 제주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가 말해주듯 현대사의 굴곡을 같이 겪어낸 곳이기도 하다. 운동장 한편에 세워진 비석들이 이 학교가 걸어온 길을 알려주고 있다. 1947년 3.1 기념대회의 첫 희생자 역시 북초등학교 출신의 학생 허두용이었다. 아픔과 기쁨, 영광을 뒤로 한 채 지금은 도심의 작은 학교로 남아있다.

'칠성통'의 유래를 아시나요?

목관아의 동쪽으로 가면 기다란 상가골목이 나온다. 과거 원도심의 중심지였던 칠성골이다. 탐라국 시대 북두칠성 형태로 7곳에 제단을 쌓아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던 칠성단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현재는 '칠성통'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현대식의 건물들 뒤로 좁은 골목길들이 아스라이 남아있다. 근대화의 바람이 불며 이 거리를 휩쓸었을 단발머리의 여인들과 양복을 차려입은 모던걸, 모던보이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다. 한국전쟁 시기에 제주로 피난 온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계용묵, 박목월, 장리석 등 예술가들의 사연도 녹아 있다.

엄마 품처럼 끝없이 모든 걸 내어주는 

칠성골 끝자락은 산지천과 맞닿는다. 한라산 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마을들을 훑고 내려와 이 산지천에서 마지막 소임을 다한 뒤 바다로 흘러간다. 그래서인지 이곳 산지천은 엄마 품처럼 끝없이 모든 걸 내어주는 느낌이다. 과거 제주 사람들은 이곳에서 목욕하고 빨래하고 물을 길어가 식수로 썼다. 삶의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유원지로 복원, 여름이면 '테우'(제주의 전통 떼배)를 띄워 과거를 추억하곤 한다.

주정공장터 1934년 일제가 설립한 동양척식회사 제주주정공장은 4.3 당시 수용소로 활용되었다.
▲ 주정공장터 1934년 일제가 설립한 동양척식회사 제주주정공장은 4.3 당시 수용소로 활용되었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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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들을 떠나 보낸 제주항의 안타까운 사연들

산지천 넘어 항구로 향해본다. 제주의 관문인 제주항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항구를 통해 들고났을까? 누군가는 큰 꿈을 품고 떠났고 누군가는 이별을 슬퍼하며 발길 돌려야 했을 곳이다. 4.3의 와중에도 제주항은 더욱 그랬다. 컴컴한 어둠에 영문도 모르고 실려 나간 이후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들, 제주항 맞은편 주정 공장에 잡혀있던 사람들이다.

죽음을 피해 산으로 숨어들었다는 이유로 혹은 자식이 무장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잡혀갔던 이들이다. 행방불명자의 후손들은 누군가는 생일에 맞춰, 누군가는 집을 나간 날에 맞춰 제사상을 차린다. 아직도 이들은 행방불명자로 남아 영혼의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무심히 지나간 70년 시간이 아직도 가슴 시린 기억으로 남아있는 한,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주4.3은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제주 섬만이 지니고 갈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관덕정 앞 집회 깃발 2018.3.10 도민총파업 기념대회
▲ 관덕정 앞 집회 깃발 2018.3.10 도민총파업 기념대회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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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10 도민총파업 기념대회 현수막
▲ 2018.3.10 도민총파업 기념대회 현수막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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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미영 씨는 여행작가입니다. 사진은 노순택 씨의 작품입니다. 이 기사는 제주4.3 범국민위의 4370신문 3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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