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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상, 162 x 336cm(3pieces), 흙 위에, 2018
▲ 4_3레퀴엠 임옥상, 162 x 336cm(3pieces), 흙 위에, 2018
ⓒ 임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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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의 선구인 셈이다. 지금 4.3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70년이 지났다. 30년을 한 세대라고 할 때, 벌써 두 세대를 훌쩍 넘어선 역사 속 사건이 되어버렸다. 3만 이상이 죽어갔던 사건인 만큼 피해와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제법 흘러갔기 때문인가. 치열함은 보이지 않고 갈등의 어설픈 봉합과 맹목적 화해만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김포공항 등 사람들이 제법 많이 다니는 곳에는 '제주 4.3 70주년 2018년 제주방문의 해'라는 안내 문구가 걸려 있다. 역사는 사라지고 다만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용 소재가 된 느낌이다.

과연 그러한가. 70년 전의 4.3이 이제는 박제가 되어 전시실 한 코너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면 그만인가. 기념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후세들에게 가르치면 그만인가.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무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정녕 그렇게 4.3을 생명력 없는 역사로 만들어도 괜찮은가. 그렇게 오늘 우리의 삶에서 분리되어 그저 관광의 소재가 될 만큼 한가한 역사가 되었는가.

물론 노파심에서 하는 소리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4.3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온 것을 안다. 그 노고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우려스러운 모습들이 목격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행태들이 4.3을 생명력 없는 역사로 만들어 버린다.

생명력 없는 역사는 오늘 나의 삶과 무관한 역사다. 단지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학습하고 연구하는 역사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역사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의 내 삶'과 직접 연결된 역사가 살아 있는 역사다. 내 삶과 직결되어 있기에 그것을 학습하고 거기에서 시대적 과제를 찾고 그 해결을 위해 결단하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살아 있는 역사 학습이다.

4.3도 마찬가지다. 내 삶과 떨어뜨려 놓고 멀리서 쳐다보는 4.3은 죽은 4.3이다. 4.3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관람하는 4.3은 생명력을 잃은 4.3이다. 4.3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은 4.3의 본질과 정면으로 마주하여 '오늘 나의 삶'으로 끌어올 때 가능하다.

그런데 4.3에 대한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은 어떠한가. 작년(2017년) 제주지역 교사들을 대상으로 4.3에 대한 의식 조사를 했다. 4.3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도 그 조사 내용 중 하나였다. 가장 많은 응답이 '양민학살'이었다. 교사뿐 아니라 일반인들 인식 속의 4.3도 유사하다. '제주 사람들이 억울하게 많이 죽은 사건' 정도의 인식을 넘어서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면 끝인가. 제주 사람들이 억울하게 많이 죽은 사건이기에 그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인가. 분명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신원'은 너무나 필요하다. 그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 '왜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는가'까지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건의 배경 원인을 빼고 결과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3은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며 일어났다. 제주 사람만이 아니었다. 당시 생각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단독 정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김구 역시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며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기도 했다.

왜냐하면, 단독 선거는 2개의 정부가 한반도에 수립됨을 말하고, 그것은 곧바로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반도는 2개의 정부가 들어섰고, 급기야 2년 뒤에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일 뿐이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전쟁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지역 중 하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벌이는 신경전만 봐도 피곤하다. 이것은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만약 1948년 4.3이 일어날 때, 제주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단독정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6.25 한국전쟁도 없었겠지만, 지금의 한반도 긴장도 없을 것이다. 4.3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의 선구인 셈이다. 지금 4.3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전쟁 방지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올해 우리 국방비가 얼마인지 아는가. 45조 원이다. 45조 원이라면 감이 오질 않는다. 이렇게 바꿔 생각해 보자. '연봉 4500만 원짜리 100만 명의 일자리'다. 오늘 한국의 청년 실업은 심각하다. 그래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청년수당을 지급한다. 돈이 어디 있어서 그러냐고? 사실 우리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다. OECD 11위 경제 대국이다. 돈 많은 나라다. 분단이 아니었다면 국방비의 상당액을 복지비로 돌릴 수 있다. 이게 다 분단으로 인한 문제다. 단독 선거 반대는 결코 1948년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오늘, 우리는 전쟁 반대와 함께 평화 정착, 군비 축소, 복지 확대에 힘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4.3'을 제대로 실천하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영권씨는 제주역사교육연구소장입니다. 이 글은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의 <4370신문> 3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영권, #제주4.3, #임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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