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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아. 너도 잘 알겠지만, 아빠는 책도 수집하고 피겨도 모으잖아. 심지어는 테니스 라켓이나 콜라병을 수집하기도 했어. 네가 보기엔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뭔가를 수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란다. 희귀한 책이나 피겨를 힘들게 구했을 때의 기쁨은 등반가가 높은 산을 등정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산악인이 산이 있으므로 산에 오르듯이 수집가는 희귀품이 있으므로 구하려고 하지. 아빠도 읽지 않을 책도 단지 희귀하다는 이유로 구하기 위해 애쓴 경험이 많거든. 솔직히 토로하자면 수집의 가장 큰 즐거움은 '소유'가 아닐까 해.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귀한 물건을 소장한다는 자부심 말이다. 아빠도 서재에서 희귀본 책을 보면 괜히 흐뭇하고 뿌듯하거든. 그저 바라만 보아도 즐거워.

가끔은 회의가 들 때가 있어. 귀하고 소중한 책을 내 서재에 가둬놓고 나 혼자만 관상용으로 즐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 말이다. 아빠가 희귀본을 수집한 경험을 토대로 쓴 <오래된 새 책>이나 수집에 관한 <수집의 즐거움>을 출간했을 때 적지 않은 독자들은 책 속에 소개된 수집품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더구나.

<수집이야기 >표지
 <수집이야기 >표지
ⓒ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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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개하려는 <수집 이야기>를 주목한 것은 저자가 본인은 '수집을 위한 수집'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야. 아빠처럼 단지 소유를 목적으로 수집하는 사람과는 차별성을 둔 것이지.

이 책을 계기로 아빠도 수집품을 단지 내 공간에 가두어 둘 것이 아니라 뭔가 공익을 위해 활용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거든. 굳이 공익이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수집한 물품을 활용해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기 시작했어.

수집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제기했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해. <수집이야기> 저자는 사실 빼어난 글솜씨와 수집에 대한 열정으로 유명해. 내용과는 별도로 문장이 하도 아름다워서 명수필로 인정받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고 해도 될 법하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서 이 책을 너에게 권하는 것이란다.

"함부로 문 밖에 내돌리지 않는다"는 말은 옛날부터 항용 해오던 얘기지만,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은 필요하다. 수집은 하나의 보호라고도 말 할 수 있다. 뿔뿔이 흩어진 것들의 만남이다. 소중히 다루는 것은 지당하다. 또한 일일이 보여주는 것이 번잡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파손되기 쉬운 물건을 자주 밖으로 꺼내서는 위험하다.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보이는 것이 불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넣고 꺼내기가 불가능한 때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모든 장애들을 고려하더라도, 수집이 단순한 사유로 끝이 난다면 그것은 사장이다. 그것은 수집이라기보다는 퇴적이며 한낱 저장에 지나지 않는다. 물건은 살아나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 물건을 소장한 사람도 살게 되는 경우는 없다. 사람들과 함께 보는 기쁨을 상실할 때, 그리하여 모든 것이 사유물로 변해갈 때 수집은 일종의 범죄라고 불러도 어쩔 도리가 없다. 소유가 개인이라는 벽에 가로막히게 되면, 그것은 일종의 은닉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사물에 대한 단절이요, 살육이다. - 수집이야기 23~24쪽

수집이라는 행위는 일차적으로는 역사의 훼손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라는 말에 동의해. 수집가들이 수집하고 보관함으로써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 잘 보존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수집가는 수집품을 다른 사람과 공유를 한다거나 함께 보는 기쁨을 나누는 경우는 많지 않아. 물론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지. 가령 화폐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친한 사이라도 자기가 어디에 사는지 정확한 주소를 말하지 않는다고 해. 그럴 만도 한 것이 도둑이 침범할 수도 있잖아.

도윤이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야구 피겨도 수집하는데 몇 년 전 친구가 그 피겨를 만지다가 바닥에 떨어뜨려서 망가뜨렸잖아. 어디 그뿐이냐. 아빠가 힘들게 구한 미국프로야구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 모형(심지어 라이터에 조명도 들어오지)을 현관 입구에 뒀는데 너희 엄마는 자동차 열쇠 보관함으로, 너는 머리띠 같은 액세서리 보관함으로 사용했잖아.

<수집 이야기>의 저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아빠가 방금 언급한 '파손이나 분실 위험'을 고려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수집품을 감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비밀 장소나 자신만의 공간에 수집품을 두고 혼자서만 즐기는 것은 '살육'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에 대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

수집의 끝은 소장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함께 보기라고 해야겠구나. 그러고 보니 수집품을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즐거움을 실천한 사례가 많다는 것을 <수집의 즐거움>을 쓸 때 알았어. 한정판 코카콜라 병을 수집하는 김근영씨만 해도 그렇다. 우선 코카콜라 병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겠구나. 코카콜라 병은 다양한 한정판이 있단다. 병모양이나 디자인뿐만 아니라 소재도 다양해.

<수집의 즐거움>의 표지사진도 란제리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한정판 콜라병이란다. 어쨌든 2015년 한국코카콜라에서 코카콜라 100주년 행사의 목적으로 그간 출시되었던 한정판 코카콜라 병 전시회를 열었는데,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한정판 코카콜라 병은 전부 김근영씨를 비롯한 국내 코카콜라 병 수집가들의 수집품이었단다.

코카콜라 수집가가 없었다면 이 행사 자체가 열릴 수가 없었겠지? 어때, 새삼스럽게 수집은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즐거움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되지? 스타벅스 텀블러를 수집하는 추형범씨도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즐거움을 실천한 수집가란다. 2013년 <여가의 새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스타벅스 텀블러뿐만 아니라 레고, 바비 인형, 구제 관절 인형과 같은 개인의 수집품을 전시했어.

이 행사에 추형범씨도 참가했는데 수백 개의 텀블러가 전시된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단다. 추형범씨는 개인 블로그 대문에 '스타벅스 텀블러는 절대 팔지 않습니다'라고 내걸 만큼 텀블러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사람이야. 수집하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수집품을 팔기도 하는데 추형범씨는 일단 본인이 입수한 텀블러는 절대로 팔지 않는다는 거야.

아무리 전시회 취지가 좋더라도 추형범씨 입장에서는 전시하기 위해서 이동하거나 배치하는 과정에서 텀블러가 파손되거나 흠집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걱정도 충분히 했을 거야.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모두가 텀블러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를 한 걸 보면 '야나기 무네요시'의 지론을 실천한 모범 사례라고 생각해.


가장 고마운 점은 수집이 높은 내용을 획득했을 때, 그것이 공공의 영역으로 이관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직 이런 행위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구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로, 이 때문에 박물관이며 미술관의 수도 많거니와 기부 재로 역시 풍성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기부행위의 사회적 의의가 일본에서는 아직 그렇게까지 충분히 성찰의 대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수집을 개인의 재산이라 여기는 경향이 너무도 강한 탓이다. 그로 인해 결국엔 여기저기 흩어지고 그 존재의의를 상실해버리고 마는 물품들이 많다. 만일 그 물건들을 공공의 영역으로 이전한다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여러 다양한 뜻있는 역할을 수행해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수집이야기. 92쪽.

수집품을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는 단계를 지나서 결국엔 박물관에 기증해서 공공재로 만들자는 주장이란다. 이런 생각은 아빠도 오래전부터 해왔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수집가와 수집품들은 언젠가는 영원히 헤어져야 해. 아빠가 평생 수집한 희귀본 책도 내가 없으면 헌책방이나 재활용 상자로 뿔뿔이 헤어지겠지. 그렇게 되면 내 수집품은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거란다. 그런 식으로 불행한 결말을 맞기보다는 차라리 공공 도서관에 기증을 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어.

조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1936년 일본민예관이라는 박물관을 설립해서 아끼던 수집품을 모두 기증했어. 일본인으로서 과오가 없지는 않으나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했고 일제가 광화문을 해체하려고 하자 <아!광화문>이란 글로 광화문 해체를 막기도 했지. 무엇보다 조선의 유물은 조선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1924년 경복궁 안에 조선미술박물관'을 세웠어.

자신이 책에서 주장한 지론을 몸소 실천한 것이지. 우리나라에도 일본민예관에 버금가는 박물관이 있단다. 카메라와 영상장비를 수집하는 김태환씨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한국 영상박물관>이야. 세계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영상장비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박물관이란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카메라와 영상장비는 모두 김태환씨가 평생 수집한 것이야.

비디오카메라를 제외하고 스틸(사진)카메라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집하고 있지만 수백 대의 희귀한 카메라를 수집, 소장하고 있으면서 공개된 장소에 전시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선 한두 사람에 불과합니다. 수 천대의 카메라를 수집하고 있다하더라도 자기 집에서 혼자 보고 즐기는 그러한 수집은 부의 상징 혹은 자기 과시용으로 이용하는 못난 수집가라 생각해야겠지요. - 한국영상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발췌

<수집이야기> 저자가 한 주장과 놀랍도록 비슷하지? 확실히 수집가에게 등급에 있다면 '야나기 무네요시'나 '김태환 관장'은 9단으로 봐야 할 것 같아. 한국 영상박물관이 참 대단한 이유는 또 있어. 이 박물관을 운영하는 모든 비용을 김태환 관장이 부담할 뿐만 아니라 전시된 모든 카메라와 영상장비를 관객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다고 해. 과연 수집의 완성은 '공개와 공유'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구나.


수집이야기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목 옮김, 산처럼(2008)


태그:#수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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