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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 바스락 얼마 전 새로 산 이불의 감촉소리가 가시질 않고 침대 주변 공기를 채웠다. 안티알러지 제품이라 해서 큰 맘 먹고 구입한 이불의 가볍고 경쾌한 감촉에 오히려 짜증이 일었다.

부동과 침묵으로 일관한 지 삼십 여 분을 훌쩍 넘긴 것 같은데 바스락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무겁게 꾹꾹 누른 감정이 말해 주었다. 이미 한계지점을 넘긴 것 같다고. 조금만 더 지체하면 분노가 바스락 소리를 삼켜버릴 것이라고.

"그만 잠 좀 자자."

간신히 인내의 힘을 쥐어 짜내 나직하게 말했다. 내일 어린이집에 일찍 가야 하는 날이니 늦지 않으려면 얼른 자야 한다고. 내일은 늦으면 안 되는 거라고 조용히 다그쳤다. 알았다는 대답이 이불의 바스락 소리만큼이나 가냘프게 들려왔다.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는 어린 양의 작은 떨림에 그만한 사정이 있을 터인데도 묻고 싶지 않았다. 물었다가는 지금까지 버틴 시간의 두 배 이상은 또 기다려줘야 할 것이 뻔했다.

그림-순지
 그림-순지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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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여섯 살 생일이 지난 큰 아이는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독립된 잠자리는 두 아이가 아직 원치 않아 늘 함께 침대에 눕고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을 한다.

꽤 자란 아이들 머리 무게 덕분에 침대에 깊숙하게 파묻힌 양쪽 팔을 원래대로 복원시키는 일. 매일같이 반복되는 근육통에서 해방되는 그 첫 단추를 무리 없이 잘 꿰면 반은 성공한 셈이다. 이후 침실을 고양이 뺨치게 사뿐사뿐 걸어 나와 숨죽여 방문까지 닫으면 완전 성공. 또 다른 시간이 마법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어떤 책임져야 할 역할을 벗어던졌을 때 찾아온다. 아이들이 잘 때 함께 잠드는 삶이 물론 육체적으론 더 건강할 것이 틀림없다. 다만 모든 걸 알면서도 자꾸만 모두 다 잠든 밤에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는 것은, 하루를 온전히 나로 살지 못했다는 의식 때문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그 사람도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끔찍이 사랑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온전히 나로 살지 못한 시간이 아까워 밤이 늦었더라도 만회하고자 하는 것. 만회할 시간을 놓쳐버리면 연속될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 삐걱 될 것임을 잘 알기에 잠들기만을 기다렸다가 그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도대체 애들 재우고 뭘 하려고 하냐고, 대단한 걸 하냐고 묻는 이들도 적지 않겠다. 별 다를 것 없다. 저녁 시간 내내 아이들 그림책 읽어주느라 읽다 말고 방구석에 내팽개쳐진 책을 좀 더 읽는 것. 답해주지 못한 휴대폰 메시지를 정독하는 것. 혹여 부재중 전화가 있다면 다시 전화해도 될 시간인지 가늠 후 전화해 보는 것.

세계지도를 한 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보고 싶은 영화가 상영 중인지 스마트폰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귀가하지 않은 남편의 연락이 없어 전화해볼까 하다가 그 것마저 시간 아깝다 느껴져 이내 전화기를 내려놓고 어떤 이야기든 쓰고 싶어 노트북을 켜는 그런 일상. 소소한 행위 하나하나가 나로 완성될 퍼즐의 조각이다.

아이들은 밤 9시 30분에 재우기 시작했다. 먼저 잠든 작은 아이에 이어 큰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나와 시계를 보니 정확히 10시 58분이었다. 잠든 아이의 건너편 무의식 세계에 내가 있을지 없을지 알게 뭐야.

그건 꿈나라 사정이고 난 잠깐 다시 나로 돌아가야만 해. 그래야 또 그렇게 살지. 매일 들이닥치는 하루를 감당하려면 나를 또 채워야지. '엄마 어디가'하며 붙잡을까봐 매일 밤 도망치듯 아이들 자는 방에서 나오는 엄마의 변명같은 진심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s://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태그:#엄마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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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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