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남교실에서 튀어나온 미투, 분위기가 '싸해졌다'. (사진은 영화 파수꾼 스틸컷,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남교실에서 튀어나온 미투, 분위기가 '싸해졌다'. (사진은 영화 파수꾼 스틸컷,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KAFA FILMS

관련사진보기


3월, 새 학기가 시작됐다. 등교를 준비하는 동안 각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뉴스를 장식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학기 초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그 누구도 미투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미투에 관련한 이야기를 처음 꺼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선생님이다.

"나 이제 귀 깨무는 거 그만하련다."

이 선생님은 말을 안 듣거나 숙제 같은 걸 안 하면 귀를 깨무는 습성이 있다. 그동안 남자애들한테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어찌 됐든, 그는 말을 이어갔다.

"요즘 미쓰리 때문에 시끄럽잖아."

교실에 적막함이 흘렀다. 요즘 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의 줄임말)된 것이다. 나는 이 분위기의 원인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첫째, 선생님이 되도 않는 농담을 해서. 둘째, 아이들이 미투가 뭔지 몰라서. 그렇게 머릿속으로 두 가지 경우를 그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다들 수군거렸다.

"미쓰리가 뭐야?"

그러자 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미투 운동 몰라?"

다시 교실은 '갑분싸' 됐다. 그 싸한 분위기를 뚫고 누군가가 말했다. "미투, 그거 오달수 아니야?" 그러자 친구들은 하나둘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그거 안다'는 식의 말을 꺼냈다. 그렇다. 남학생들에게 미투는 오달수고, 미투보다는 유럽리그 축구 결과에 더 관심 있다.

여자 교실은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남자 교실은 이렇다. 그리고 그 이후로 누구도 미투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자도 꺼내지 않았다. 순진한 건지, 무지한 건지, 무관심한 건지, 알 필요 없는 건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저렇게 기쁘게, 또 신나게 떠드는데 굳이 저기다가 찬물 뿌리는 얘기를 해야 할까? 이런 교실에서 페미니즘 수업이 가능할까?

 많은 남자들이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낀다.
 많은 남자들이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낀다.
ⓒ pixabay 합성

관련사진보기


페미니즘에 거부감 표현하는 친구들, 나도 그랬다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라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런 친구들은 페미니즘을 '항상 남자와 여자를 비교하며, 남자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항상 옆에 붙어 있는 친구로서, 또 같은 남자로서 그 친구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페미니즘이 어렵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어느 선생님한테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는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그때 선생님은 "나는 그냥 남자인데 어쩌다 어느 여학생이 나랑 엘리베이터를 단둘이 타게 되면 그 여학생이 나를 두려워해. 뭔가 우리나라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라고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기도 없이 가만히 있는 남자를 왜 무서워하는 걸까, 그저 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것 아닐까? 정말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곰곰이 여러 생각을 하다가 '내가 만약 여자라면'이라고 그 상황을 가정하자, 그 무서움에 어 느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더 생각해보니, 여태 살면서 여자가 강간 살해당했다는 식의 무서운 소식은 많이 들어봤어도, 남자가 강간 살해당했다는 소식은 접한 적이 없다. 그래서 거꾸로 내가 여자라고 가정했을 때, 단순히 엘리베이터에 둘이 있는 상황이 무서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난 페미니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하나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통의 친구들은 나처럼 생각할 기회를 가지는 게 쉽지 않다. 내게도 아주 우연히 생각할 기회가 주어졌다. 한국에선 명절에 여자만 요리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다. 행여 남자가 설거지라도 하면 유세를 떠는 나라다. 그뿐이겠는가. 학교 선생이라는 사람이 농담이랍시고 미원, 미투, 미쓰리거리며 비아냥거리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렇게 남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고,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차별을 받아 그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페미니즘은 무뎌진 감각을 대체할 새로운 '날카로운 감각'이다. 사람들은 이 낯선 날카로움 때문에, 아직 적응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남자가 나빠서 차별을 하고 있다기보다, 여자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할 기회와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이 어떻게 여성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공감의 기회를 준 그 선생님처럼, 다른 친구들에게 기회를 준 경험이 몇 번 있다. 한번은 친구가 "여자도 투표권 있고, 여자도 일자리 얻고, 여자도 길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무슨 남녀 차별이 있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네가 여자친구가 있다고 가정할 때, 여자친구가 밤길을 혼자 걸으면 걱정되지 않겠어? 만약 여자친구가 밤길을 혼자 걷다가 무슨 일을 겪으면, 범인은 남자와 여자 중 누구일 것 같아?"

그러자 친구는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말했다. 이렇게 남자들은 여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처한 상황에 공감할 기회가 필요하다. 공감할 기회를 제공하는 건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미투
 미투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차별을 향해 부는 새롭고 날카로운 바람, '미투'

나는 인간이 자라나는 시기인 초·중·고등학교에서 남녀분반 또는 남학교, 여학교의 형태를 고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여자를, 또 여자가 남자를 이해하고 서로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같은 반에서 자주 부대끼고 가끔씩은 연애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세대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남녀 파트너로 '같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고, '미투 = 오달수' 같은 웃픈('웃기고 슬픈'의 줄임말) 공식 말고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한 반에 남자만 모여있으면, 남자선생님은 "남자끼리 있으니까 말인데~"라며 "여자는 애 낳고 복직 안 하니까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는 둥, "남자가 대학 가지 못하면 남자 구실을 못한다"는 둥 각종 성차별적인 망언을 쏟아낸다. 여자반에서 여자선생님은 따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남자반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떨어져 있으면 서로 멀어지고 공감은 온데간데없다.

남자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여자들이 왜 '차별을 당한다'고 하는지, '남녀의 사회적 권력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남자들이 부디 펜스룰 같은 걸 만들어서 "성추행 못 하게 하니까 너랑 안 놀아"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보다, 성추행은 당연히 해선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깨닫길 바란다.

미투를 통해 남자들이 여자들의 삶에 공감할 기회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인정사정없이 진행되면서도 미투가 성별 화합의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투'라는 새롭고 날카로운 바람은 '차별'을 향해 불어야 한다.


댓글2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