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오후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대한민국 대 캐나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음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 주기를."
자전거탄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강릉하키센터에 울려퍼졌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에서 7-0으로 캐나다에게 참패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얼음 위로 나왔을 때였다. 관중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펼친 선수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있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감격에 찬 듯 눈시울이 붉어지는 선수도 몇몇 보였다.
경기 중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 15일 오후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대한민국 대 캐나다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대한민국 진영에서 캐나다 선수와 퍽 다툼을 하며 수비하고 있는 선수들. ⓒ 이희훈
기적은 없었다.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준결승전, 한국과 캐나다의 경기는 캐나다의 낙승으로 끝났다. 캐나다를 이기고 결승전에서 미국을 다시 만나 설욕하겠다는 꿈은 무산됐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관중이 경기가 끝나고도 자리를 지켜가며 2연패를 당한 선수들을 응원해준 건 또다른 종류의 기적이었다.
'또' 1피리어드였다. 밀집대형으로 수비진을 짠 한국 대표팀은 캐나다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캐나다는 매섭게 몰아쳤다. 쉬지 않고 계속되는 캐나다의 슈팅에 우리 선수들은 흔들렸다. 캐나다는 잠깐의 흔들림 사이에 생긴 공간을 파고들었다. 4분 17초에 첫 골이 터졌다. 1피리어드가 끝났을 때, 이미 스코어는 4:0이었다. 2피리어드에서는 무실점으로 선방했지만, 3피리어드 때 다시 3골을 연달아 먹혔다.
▲ 15일 오후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대한민국 대 캐나다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썰매가 뒤집어지고, 넘어져도, 한국 선수들은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 이희훈
캐나다가 24번의 슈팅을 날릴 동안, 한국이 날린 슈팅은 2번이 다였다. 24번의 슛을 7점으로 막은 데는 이재웅 골리의 슈퍼 세이브가 한몫했다. 파워플레이를 활용해 역습의 찬스도 간간이 있었고, 경기 흐름을 잡은 순간도 분명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조직적인 플레이를 앞세운 캐나다의 벽에 부딪혀 점수로까지는 연결되지 못했다. 경기 종료를 30여초 앞두고, 마지막 1골이라도 넣기 위해 작전타임을 썼지만, 결국 한국 선수가 날린 퍽은 캐나다 골대에 닿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인사하는 선수들에게 쏟아진 환호는 승리 후에 쏟아지는 함성 그 이상이었다. 선수들은 객관적 전력차가 크고, 승패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달려들었다. 썰매가 뒤집어져도 금세 일어났고, 폴을 놓치면 손을 이용했다.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관객은 예를 다했다.
동메달 결정전은 반드시 잡는다
▲ 첫 선발 출전한 이재웅 선수 이번 패럴림픽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한 이재웅 선수는 풀타임으로 경기를 소화했다. 몇 번의 슈퍼 세이브도 보여주며 선방했지만, "오늘 잘한 점을 꼽아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없는 것 같다"라며 아쉬워했다. ⓒ 곽우신
오늘 처음으로 선발 출전한 골리 이재웅 선수는 "풀타임으로 뛰어서 기분이 좋았고, 선발로 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라면서도 "감독, 코치, 선수 모두에게 감사했다. 팀이 앞에서 잘해줬는데 내가 못해서 골을 먹은 것 같다. 퍽을 끝까지 안 보고 먼저 동작해서 점수를 먹은 것도 있다"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초반에 갑자기 슛이 많이 날아와서 당황했다. 팀원들이 괜찮다고 침착하라고 해줘서 고마웠다"라며 "(내가) 딱히 잘한 게 없는 것 같다. 강한 상대 만나서도 분위기 떨어지지 않고 '으쌰으쌰' 해서 팀이 전체적으로 잘한 것 같다"라고 이날 경기를 평했다.
이재웅 선수의 선발 출전이 결정된 후, 같은 포지션의 선배인 유만균 선수가 조언을 했다고 한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하던대로 해라. 생각한 건, 두 번 생각하지 말고 바로 해라. 틀렸어도 일단 바로 해라"라고 응원했단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유만균 선수는 휠체어를 타고 빙판으로 나와 선수들과 포옹을했다. 이 선수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안았는데, 안고 나니까 울컥하더라"라면서 "절 처음 안아주신 건데, '수고했다'해주셔서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 아쉬워하는 정승환 선수 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공격을 책임지고 있는 정승환 선수는, 그 책임감 때문에 더욱 오늘의 경기 결과에 안타까워 했다. ⓒ 곽우신
경기가 끝난 후, 정승환 선수는 감정이 절제되지 않는 듯이 인터뷰 중간 중간 눈물을 보였다. 그는 "오늘을 정말 많이 기다렸고, 수천 번 상상했다. 간절했는데…. 결승 가고 싶었는데 못 가게 되어서 아쉽다"라며 "매 경기 계속 1피리어드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제 실수로 실점을 하는 바람에…. 초반에 너무 흔들린 것 같다"고 평했다. 이어 그는 "그 마지막 응원이, 정말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을 만큼 감사했다…. 끝까지 응원해주신 분들께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다"라며 "그 응원에 힘입어서 다음 경기까지 힘을 내보고, 좋은 경기하겠다"라고 말했다.
▲ 관중들께 감사를 주장인 한민수 선수는 오늘 거듭 관중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 감사에 보답하기 위해 반드시 동메달을 따겠다고 의기를 다졌다. ⓒ 곽우신
주장인 한민수 선수는 앞서 정승환 선수가 자책했다는 얘기에 놀라면서 "왜 그랬어? 바보"라고 말했다. "정승환 선수가 승부욕이 강하고, 뭔가 해야겠다는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을 너무 생각한 것 같다. 미스는 누구나 한다. 옆에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라고 위로했다. 그는 "(정승환 선수가) 아쉬움이 커서 그런 것 같은데, 3~4위 전에서는 전혀 후회가 안 남도록 잘 토닥여서 어깨를 세워주겠다"라고 덧붙였다.
한 선수 역시 관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응원 덕분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며 "많은 관중이 오셔서 골을 먹어도 '괜찮아, 괜찮아' 해주시고, 져도 '괜찮아, 괜찮아' 해주시니…. 지난 미국전도 그렇고 이번 캐나다전 때 보여주신 환호성, 매너….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치 때 은퇴를 못한 게,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달을 따고 싶은 것"이라며 "우리가 혼연일체가 되어서 지난 힘들었던 훈련 이겨냈던 건 이 시간 때문이다. 지금 팀 분위기 좋고, 선수단 분위기 좋고, 기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 분위기도 좋다. 죽기 살기로 해서 반드시 따겠다는 마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해서 감동을 선물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동메달 결정전에 나서게 되는 한국은 미국과 이탈리아 간의 준결승 전에서 패한 팀과 맞붙는다. 객관적 전력상 이탈리아와 붙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정승환 선수는 이탈리아에 대해 "유럽 팀답게 힘이 좋고, 중거리 슛을 잘한다"라면서도 "포워드가 디펜스를 압박해서 중거리 슛을 못하도록 하면, 승산이 있다. 이전에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우리가 강했다"라고 평했다. 이재웅 선수 역시 "이전 대회에서 우리가 다 이겼다. 한 번도 안 졌다. 자신있다"라면서 "지려고 운동하는 건 아니지 않나. 메달 딸 수 있다. 100%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17일 낮 12시, 한국은 꿈에 그리던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