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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반미치광이처럼 대성통곡하며 봉하로 내려간 사람이 있었다. 이틀 전 불길한 마음이 들어서 전화로 '잘 버티셔야 합니다'라고 부탁한 일이 더욱 그를 애통하고 허망하게 만들었다. 그가 그토록 염려해서 수시로 찾고 전화로 안부를 챙겼던 노무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 아래로 투신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한 날 굳은 표정으로 곁을 지켰고, 조사실에서는 검찰 측의 공세에 온몸을 불살라 맞섰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그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민정수석을 최연소로 역임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 때나 시민으로 되돌아간 때나 가장 의지했던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사태 수습만을 전담했던 그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전해철이다.

<함께한 시간, 역사가 되다> 표지
 <함께한 시간, 역사가 되다> 표지
ⓒ 다신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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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책을 낸다고 하기에 그동안 어떤 책을 냈는지 찾아봤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입력했는데 '0'건의 상품이 검색되었다. 믿기지 않았다. 내세울 경력은 하나 없는 평범한 아재인 나도 집구석 서재에서 야밤에 파리를 잡은 이야기, 하고 많은 날 아내와 싸운 이야기를 소재 삼아 책을 여러 권 냈는데 변호사에다 민정수석을 지냈고 국회의원에 두 번이나 당선된 저명인사가 그동안 낸 책이 없다니.

더구나 전해철 의원은 자연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지켰으며, 정치하기 싫어하는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쓴 첫 책이 몹시 궁금했다. 매일 인터넷 서점에 기웃거렸지만, 그의 이름으로는 0건의 상품이 검색되었다. 마침내 그가 쓴 책이 나타났을 때 전광석화처럼 주문했고 초조하게 배송을 기다렸다. 그렇게 전해철 의원이 쓴 첫 책 <함께 한 시간, 역사가 되다>를 만났다.

<함께 한 시간, 역사가 되다>는 가난하지만, 정의를 꿈꾼 청춘을 이야기한다. <함께 한 시간, 역사가 되다>는 우리가 애통해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자랑스러워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한 시간을 회고한다. <함께 한 시간, 역사가 되다>는 전해철 의원이 구상하는 경기도의 미래를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두 대통령과 함께 한 시간이 궁금했다. 똑똑하고 정의를 꿈꾼 가난한 청춘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릴 수 있다. 나는 경상도민이니 경기도정에 대해서도 관심이 덜하다.

큰 정치를 꿈꾸었지만 작은 사람들의 횡포에 고생했던 사람과 정치에는 소질이 없다며 '밥이나 먹고 가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무용담이 궁금했다. 전해철 의원이 살아온 길을 읽자니 이 분이 솔직담백하신 성품이라는 사실을 알겠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한 경험, 1987년 6월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친 것이 아니고 고시 공부에 '온 힘을 다 쏟아부었다'는 이야기를 솔직히 기술한 내용이 그렇다.

전해철 의원은 고시에 합격한 이후에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주로 노동법 사건을 다루면서 소위 말하는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노무현은 한 방울의 물로 바위를 쪼갤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정치의 선한 작용을 믿었다. 그는 인간으로서도 가장 순수했다. 노무현은 연설문을 직접 썼다. 연설문을 직접 쓸 정도가 아니라면, 정치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할 정도였다. 2018년 오늘, 새로운 봄을 기다리며 그날의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다시 읽어본다. 눈앞에 연설문 초안을 쓰고 지우고 다시 고치는 노무현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 문장씩 꼼꼼히 읽어보고, 다시 고치는 그의 진정성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목이 멘다."

두 대통령과 함께 한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뭔가 비밀스럽고 재미있는 자기 자랑을 기대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도 기대했다. 전해철 의원은 '자기 자랑'에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다. 책장을 계속 넘겨보아도 내가 원했던 내용은 없었다. 두 대통령의 측근이라기보다는 두 대통령의 사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통령의 말과 생각을 기록했을 뿐이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패배했다. 패배의 원인은 안철수와의 단일화에 너무 힘을 뺐고, 불법 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승리하고자 했던 박근혜 캠프보다 덜 절박했고 덜 절실했으며, 문재인 후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그저 유순하고 점잖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를 잘 못 봤다고 한탄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무적 감각과 적폐청산에 대한 의지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해철 의원의 대선 패배 소감을 읽으니 알겠다.

이토록 솔직한 대선 패배 반성이 어디 있겠는가? 이토록 냉철한 대선 패배 반성이 어디 있겠는가? 전해철 의원의 솔직하고 냉철한 반성이야말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국민은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오늘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개인 삶의 근거지인 지역이 충분한 권한과 역량을 가질 때 민주주의는 풀뿌리 차원에서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삶의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민주주의는 대한민국 전체를 한층 더 성숙한 사회로 이끌 것이다."

전해철 의원이 왜 경기도지사로 나서려는지 알겠다. 그는 중앙이 이끌고 지방은 따라가는 식의 발전보다는 지역 정부가 앞장서는 풀뿌리 발전을 추구한다.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경제발전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음을 우리는 몸소 체험하고 있다.

뿌리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다. 뿌리가 튼튼하면 가지나 잎은 언제든 다시 살아난다. 전해철 의원이 주장하는 지방분권이 부디 실현되고 성공되어야 하는 이유다.


함께한 시간, 역사가 되다

전해철 지음,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2018)


태그:#노무현, #전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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