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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행동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행동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
ⓒ 한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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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투 운동(나도 당했다)이 활발하다. 미투에 관련된 기사도 많다. 여론이 궁금해서 기사의 댓글을 종종 본다. 매일 충격을 받고 있다.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를 무고죄로 다루라는 말, 우리나라는 무고죄가 너무 가볍다는 말들이 자주 보인다.

댓글을 다는 것은 자유이지만, 이로 인해 피해자가 2차, 3차 피해를 받는다면 책임질 수 있는 자유일까? 아직 폭로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댓글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당장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있다. 누구는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며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비난하는 행동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

가해자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미투가 나왔을 때, 안희정의 앞날을 걱정하는 댓글들이 있었다. 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안희정은 이제 어떻게 사냐", "지방선거에 영향이 있으면 어떻게 하냐", 심지어는 '안희정 뉴스는 적게 다뤄야 하는 거 아니냐", '왜 하필 이 시기에 미투를 한 거냐"는 말도 있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작 안희정이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냐고. 그대들이 표를 던지는 정당이 집권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고. 그 세상이 한 사람의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 정당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우리는 가해자 중심으로 듣는 방식에 익숙하다. 나는 가해자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그의 가족을 왜 걱정해주어야 하는가? 그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결국 당사자인 그가 자초한 일이다. 가해자의 책임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앞날도 피해자의 몫이 아니며 당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왜 우리 사회는 가해자를 걱정해주는가?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 때도 그랬다. 가해자는 선량한 목사가 되고 싶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는 목사를 꿈꾸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인가? 연민이라도 느끼라는 것인가? 궁금하지 않다. 그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었건, 중요한 사실은 23세의 여자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미투 운동도 그렇다. 정치 판세를 떠나 여기 한 사람의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몇 년이나 지난 일, 왜 이제와서 들추나

중학생 시절, 좁은 골목길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돈을 빼앗긴 적이 있다. 빼앗긴 금액은 적었지만 무서운 경험이었다. 그 뒤로 나는 그 골목길로 다니지 않았다. 18년 전의 일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인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수치심을 느꼈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한테 말을 걸었던 목소리, 때릴 것 같았던 주먹, 줄여 입은 교복 생김새. 내가 기억을 지우고 싶어도 기억이 난다. 내 의지와 상관이 없다. 이런 일을 당한 것 자체가 부끄러웠고, 많이 자책 했다. '그날따라 왜 골목길로 갔을까? 다른 길로 갈걸. 나는 왜 대들지 않았을까? 나는 왜 이렇게 왜소할까? 체격이 더 컸으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청하면 달라졌을까?'

미투로 과거의 경험을 폭로한 피해자들에게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오래전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기억해?"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이런 말을 멈춰 달라. 피해자가 당한 일에 비하면 내가 겪은 일은 극히 작은 일이다. 견줄 수 없다. 이런 말로 피해자를 취조하는 그대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기억을 못 하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거리에 선 페미니즘>이란 책에는 과거에 자신이 당했던 성폭력을 적나라하게 기억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기억하고 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당했을 때 바로 말하지 그랬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사회의 분위기는 피해자가 이런 일이 있을 때 왜 바로 말하기 어려운지를 반증한다. 피해자는 전직 수행 비서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여전히 많은 댓글들은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다.

피해자는 자신이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거란 분위기를 느끼면 위축한다. 직장에서 우리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고 다니는 이유는 바뀌지 않을 거란 사내 분위기를 직감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참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고,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은 굳어진다. 언론에 제보하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다.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피해자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곁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사람이 "제발"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상처를 받았을 때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은 분명하다. 내가 속한 곳이 안전해야 말할 수 있다.

부모님이 나를 공감해줘야 내 상처를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이 성폭력 당한 사람을 의심하는 분위기라면 미투 이전의 세상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가해자가 위축되고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이 가해자가 위축되고 피해자가 힘을 얻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withyou.


태그:#미투, #공감, #가해자가궁금하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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