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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광장의 동료'였던 청소년을 존엄한 인간이자 시민으로 대접하지 않고서 '촛불혁명'의 완성도 없다고 생각하며 지난 2017년 9월 출범한 단체입니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부터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보장해 줄 것을 촉구하며 청소년 참정권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규탄 액션, 국회 방문 등을 진행해왔습니다. 3월 넷째주,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청소년 투표권 연령하향의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고, 3월 17일, 3월 31일 등 주말마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행동을 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오마이뉴스>와 공동기획으로,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릴레이 기고'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 기자 말

미투 운동 속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울컥거리곤 했다. 사무실에서 혼자 주먹을 움켜쥐기도 했고 나지막히 욕을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의 끝에 남겨진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과거 움츠렸던 나에 대한 복기, 그때의 용기없음, 자책감'이었다.

곧 서른을 앞두고 있는 여성인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성폭력들을 경험했다. 그중에는 나의 것도, 내 친구의 것도, 내 주변의, 혹은 알지는 못하지만 '알 것 같은' 이들의 것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것'들' 중에는 여전히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하고 내 안에서 흩어져버린, 그러나 가끔 찾아와 일상을 멈춰버리는 기억들도 있다. 이러한 것들 중 내게 가장 힘든 기억은 성폭력의 '경중'을 떠나 발생한 일에 대해 과거의 내가 외면했고, 이후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한 일이다.

교장선생님의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자이자 방관자가 된 느낌

한국YWCA '미투 운동' 지지 장미행진 3.8 여성의 날 '미투 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YWCA행진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국YWCA연합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한국YWCA '미투 운동' 지지 장미행진 3.8 여성의 날 '미투 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YWCA행진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국YWCA연합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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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고등학생이던 나는 학교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공부를 싫어한 것도,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지, 내게 동의를 묻지도 않은 교칙을 왜 잘 지키며 생활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지를 만드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 딴지를 걸기도 하고 몇 선생님을 찾아가 물어보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강성이었군' 싶을 정도로 거침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남자 교장선생님(아래 교장)의 지속적인 성추행이었다.

당시의 나는 교장실 청소를 맡았다. 나 말고도 몇 명의 여학생들이 함께 했다. 청소하는 곳들 중 교장실은 나름 '꿀'이라고 여겨졌다. 가끔 교장실에 손님이 있는 날에는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고 먼지가 크게 쌓일 일이 없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교장은 청소하는 여학생들의 엉덩이를 늘 툭툭 쓰다듬었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그 교장은 복도에서도, 계단에서도 만나는 여학생들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나는 불쾌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왜였을까.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나는 고3이 되었다. 그때도 교장은 어김없이 엉덩이를 치고 다녔고 그러던 중 고1 여학생이 울면서 양호선생님께 찾아가 그 일을 털어놓게 된다. 이 얘기를 들은 양호선생님은 교장에 문제제기를 했고 그때서야 교장은 해당 학생에 사과를 했다. 나는 이 일을 접하면서 통쾌함보단 자책감에 휩싸였다. '피해를 당했던 내가 문제제기를 했더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과 동시에 '나는 왜 문제제기할 수 없었는가'에 대한 원망이었다.

아마 그 당시 '손녀'이자 '딸'이기에 소위 엉덩이 한 번 치는 건 괜찮다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피하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는 무책임하고 더러운 인식 속에서 나 역시도 헤매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치만 그럼에도 아무 말 못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피해자이자 방관자가 된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만의 한정된 경험은 아닐 것이다. 미투 운동은 여성들에게 여러 감정을 던져주곤 하는데 이는 단순히 지금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분노 뿐만 아니라 피해자로서의 '위축된' 경험을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지난날 경험의 소환과 함께 '그때의 용기없음'이 무겁게 다가온다고 한다. 그러나 '용기있음'의 기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학 내 성추행 사건을 문제제기하고, 재판으로 넘어간 해당 남학생이 벌금형을 받자 우리 과 교수님은 그 사건의 피해자 대리인이었던 내게 말했다.

"같은 학교 친구들끼리 친하게 지내지 그랬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

한때의 나는 학위나 경력 등 새로운 능력치를 얻게 되면 여성인 내게 벌어지는 폭력적인 상황들에 대해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로서의 경험과 관점은 끊임없이 사소화되고 이미 남성화된 기준에 맞는 (존재하기 어려운) '타당한 증거'를 내놓아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그런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대하게 된 것은 정치였다. 일대일의 싸움이 아닌, 나의 경험과 관점을 공론장에 이끌어내고 정책화시키는 일. 정치에 참여하고 뛰어들어 사회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2018년 3월 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 한 여성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판이 아니라 제도와 정치"라고. 피해자가 본인의 얼굴을 드러내고이름을 밝히며 가족과 지인까지 털려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절대 공정치 않다. 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대신해 싸워줄 누군가를 찾는 것, 그리고 그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치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미투 운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정치적으로 사유하면 안 되는가. 지금의 정치가 누구의 언어로만 사유되어 왔기에 우리의 외침과 발언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타자화된 설명을 당신들이 덧붙이는지 묻고 싶다. 이처럼 지금의 판을 활용해내고 싶은 나는 미투 운동을 통해 지금의 여성들이 마주한 상황뿐만 아니라 10년 전, 숱한 성추행에도 말하지 못한 나와 울면서 양호선생님을 찾아갔던 그 학생, 그리고 지금의 청소년들을 만나고 싶다.

미투를 외치는 우리, 청소년 참정권에도 응답하자

 지난 18일 열린 제16차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 보장을 요구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지난 2017년 2월 18일 열린 제16차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 보장을 요구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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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대회에 참여한 한 여성 청소년은 무대에 올라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겪었던 성폭력은 젠더에 의한 위계질서 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 관계에 의한 폭력"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폭력의 위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의 실타래를 해결하기 위해선 소위 '어른'의 시각이 아닌 당사자들로서의 경험이 발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청소년들은 정당가입도 할 수 없으며 투표도 할 수 없다. 정치적 참여 행위 조차도 할 수 없는 이들, 청소년인 것이다. 선거권은 국민주권의 가장 기본적인 행사권임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 만 19세를 유일하게 고수하고 있는 한국이다.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어떤 의미인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있어왔다. 적어도 그 근거가 부족해 지금의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주어지지 못한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알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수없이 논의되었지만 밀려온 이유 역시 그들이 아직 '정치적인 권리'를 갖지 못했기 때문과 맞닿아있다. 청소년의 경험은 개별화된 목소리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존재로서 인정되고 그 권리가 주어졌을 때, 보다 힘 있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미투 운동은 여성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타이밍이자 정치에 응답을 요구해야 하는 시기이다.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 그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은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하던 시기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물음은 지금 한국 사회의 청소년에동일하게 주어지고 있다. 10년 전 나와 유사한 피해를 말하는 여학생이 여전히 2018년에도 있다는 것,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 여학생에게 미투를 외치는 우리도 청소년 참정권으로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청소년 투표로 0000당을 심판하고 싶습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중입니다. 공감하시는 분들께서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조혜민씨는 젠더정치연구소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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