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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29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검찰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지난 1월 29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검찰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 JTBC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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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를 넘어 이제는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미투(#MeToo)운동에 불을 지핀 것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JTBC 뉴스룸 인터뷰였다.

"범죄 피해자들에 '결코 당신의 잘못 아니다' 말해주고 싶었다"

지난 1월 29일 생방송 인터뷰를 통해 전해진 서 검사의 이 말에 많은 여성이 용기를 내어 과거와 현재의 성폭력 경험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최영미 시인과 연극배우 엄지영씨, 그리고 지난 5일에는 김지은 전 충청남도 정무비서가 연달아 뉴스룸의 문을 두드렸다.

인터뷰는 거센 폭풍을 몰고 왔다. 검찰 내부에는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이 꾸려졌으며, 서 검사가 가해자로 지목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조사대에 올랐다. 엄지영씨가 폭로한 배우 오달수는 출연하기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줄줄이 하차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지사직 사퇴 후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값을 치르기 시작했다.

성범죄 피해자가 직접 스튜디오에 등장해 인터뷰를 하겠다는 결단은, 대중을 미투 운동의 지지자로 영입하는 데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했다. 미투 운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어딘가 씁쓸함이 남는다. 왜냐하면 성범죄 피해자가 생방송 뉴스에 직접 등장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이 유례 없는 상황들은, 성폭력 피해자를 향하는 사회적 의구심에서 연원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뉴스룸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실명과 얼굴을 걸고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줄 것 같았다"는 소회를 밝혔고, 이것이 생방송 인터뷰가 성사된 핵심이다.

신원 공개는 물론 피해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지만, 더 넓은 맥락으로 보면 '자발'이라고 단정하기 힘들기도 하다(미투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장막 밖으로 걸어 나오겠다는 피해자의 결단은, 그간 피해 여성을 향해온 사회적 의심에 대한 반동이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터뷰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시청자로서 더 '진실된' 보도를 접한다는 이유로 안심할 수 있는 것인지, 어딘가 해소되지 못한 의문이 뒤따른다.

신원 공개가 성범죄 증언의 '기본 값'이라니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조기숙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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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은 미투를 오염시키는 언론을 경계할 때>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조 교수는 해당 글에서 "모처럼 피해자 여성의 용기 있는 폭로가 사이비 미투에 의해 오염되기 시작했다"는 주장을 펼쳤다(관련 기사 : 조기숙 "미투, 사이비 미투에 의해 오염되기 시작").

"미국에서 미투운동은 위력과 위계에 의한 반복적이고 상습적인 성폭행과 성추행을 폭로하는 데에서 시작됐다. 상대의 권력이 너무 커 조용히 법적으로 해서는 이길 수 없기에 다수의 여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실명공개로 한 남성의 추행을 연대 고발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론재판을 하게 된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여론재판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에 한해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조기숙 교수가 생각하는 '진정한' 미투 운동은 미국의 그것이다. 그리고 조 교수는 미투 운동의 조건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여성의 실명공개'를 내걸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한 미투만이 진정한 고발이며 정의구현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일까.

나는 이것을 대단히 위험하고도 폭력적인 생각이라 지적한다. 여성의 실명 공개는 성범죄 폭로의 충분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했듯, 피해자가 직접 등장한 뉴스룸 인터뷰는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고 피해자를 향한 연대의 범위를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성범죄 폭로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신원 공개 인터뷰는 그 효과만큼이나 무거운 2차 피해를 낳기도 했다.

... 그 큰 권력 앞에 저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저를 드러내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고 있습니다. 신변에 대한 보복도 두렵고, 온라인을 통해 가해지는 무분별한 공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김지은씨 자필 편지 내용 중에서)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지은씨는 지난 12일, 자신과 가족을 향한 악의적인 소문 유포를 그만두어 달라는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관련 기사 : '안희정 성폭행' 폭로 김지은씨 "거짓 이야기 유포 막아달라"). 편지에서 김지은씨는 "저를 비롯한 저희 가족들은 어느 특정 세력에 속해 있지 않다"며 "제 가족들에 관한 허위 정보는 만들지도, 유통하지도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는 요청을 건네왔다.

김지은씨는 해당 편지에서 방송 출연 이후 잠들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신변에 대한 보복이 두렵고, 온라인을 통해 가해지는 무분별한 공격에 노출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그저 숨죽여 지낼 뿐이라는 상황을 알렸다.

언론과 대중은 함께 짐을 져야 한다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전직 정무비서 김지은씨가 자필 편지로 2차 피해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전직 정무비서 김지은씨가 자필 편지로 2차 피해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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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씨는 자신의 상황이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지만 고통이 심각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지금 겪는 고통에 대한 부채감은 그의 '미투'를 시청하고 지지한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의 사활을 건 폭로를 격려하고 지지했지만, 폭로 이후 그에게 남겨진 핍진한 현실까지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언론과 사회가 함께 이러한 부채의식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피해자는 언론의 영향력을 믿고 인터뷰를 결정했을 것이다.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성(性)권력에 맞서기 위해 또다른 권력을 가진 언론의 마이크 앞에 선 것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와 일부 권한까지를 언론에 위임했다면, 언론은 더욱 적극적으로 방송 이후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얼굴 공개 생방송 인터뷰가 앞으로 성범죄 폭로의 정석이 될 필요는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피해자와 언론의 결단은 '피해자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나름의 강구책이었지만, 성폭력 담론에서의 새로운 오해를 낳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피해 여성의 신원 공개가 성범죄 폭로에서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우려, 모습을 드러낸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 사이의 '진정성의 위계'를 나누려는 시도, 신원 공개를 꺼리는 피해자를 향해 더 강도 높게 가해질 의심('너는 왜 당당하지 못해? 뉴스룸에 나가서 얘기한 사람도 있었는데...'), 신원 공개 이후 언론에 의해 2차 3차적으로 재가공될 피해자의 과거와 그에 대한 사회적 검열. 이러한 것들이 신원 공개 인터뷰 이후 우리 앞에 남겨진 새로운 '오해'들이다.

얼굴 공개를 택한 김지은씨의 경우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의혹 폭로자를 대하는 양상이 매우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현재를 보면, 새롭게 설계된 오해들이 벌써부터 현실에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대들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다

 나도 고발한다, 미투
 나도 고발한다, 미투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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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오해들, 성범죄 폭로의 왜곡된 헤게모니를 넘어, 언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몰아쳐오는 미투의 폭풍 속에서 이 질문에 대한 '옳은' 답을 찾는 건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혹자는 "피해자가 간절히 원했더라도 방송사가 강력하게 막았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김지은씨는 뉴스 출연만이 자신을 가해자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판단했다. 그의 판단이 '틀렸다'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피해자들의 용기로 시작된 인터뷰가 미투 운동을 촉발시키고, 화력을 더했으며, 남성 권력에 군림해온 가해자들을 끌어내렸다. 우리는 이러한 단기적인 성과에 주목하고 환호할지 모르지만, 폭로를 마치고 뉴스룸 밖을 나온 피해자들이 앞으로 성범죄 피해자로서, 폭로자로서, 내부 고발자로서 짊어져야할 사회적 짐이 무겁다. 피해자들이 할 몫을 다 했다면, 폭로 이후의 짐은 언론이, 미투를 지지하는 대중이 오롯이 지기를 바란다.

피해자의 신원 공개 없이도, 피해자의 목소리가 가해자의 주장과 같은 무게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지대한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 어떻게 제보자의 신원을 보호하며 제보 내용을 보도 할 수 있을지, 피해자 주장의 쟁점과 가해자 주장의 쟁점을 '기계적'으로가 아닌 '합리적 균형'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피해자 신원 공개 인터뷰가 불가피하다면 인터뷰 진행자는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할지, 중립의 미덕이 아닌 위로의 윤리를 '사실 보도'와 어떻게 잘 버무릴 수 있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 우리 앞에 놓였지만, 가장 확실한 대답 역시 우리 앞에 왔다. 생방송 인터뷰를 택한 성범죄 피해 여성들은,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들의 결단이 가해자의 범죄 행위를 이제 멈추고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았다는 것. 인터뷰를 지켜본 여성들이 무한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 우리가 지금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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