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9년 3월 7일, 한 신인 여배우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여배우는 고 장자연씨였습니다.

장자연씨는 매니저에게 보낸 유서에서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없었고 결국, 그녀는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놓은 고통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녀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가해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31명에게 100여 차례의 술접대와 성상납을 강요당하다

'어느 감독이 골프 치러 올 때 술과 골프 접대를 요구받았다. 룸살롱에서 술접대를 시켰다. 끊임없이 술자리를 강요받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접대해야 할 상대에게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다.'

'방 안에 가둬 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렸다. 협박에 온갖 욕설로 구타를 당했다.'

장자연씨는 소속사 대표로부터 폭행과 협박,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 연예기획사와 방송국 PD, 언론사 관계자들, 대기업, 금융업 종사자 등 총 31명을 대상으로 100여 차례 이상의 술접대와 성상납을 하라고 강요 받았습니다.

소속사 대표는 장씨가 접대나 성상납을 거부할 경우 차량을 뺏는 등의 불이익을 줬습니다. 대표는 그녀가 수입이 많지 않은 신인 여배우였음에도 매니저 월급을 비롯한 각종 비용까지 부담하게 했습니다. 현대판 성노예와 같은 착취와 폭행을 당했던 장자연씨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성상납 가해자는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고통을 받은 피해자가 있다면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존재합니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은 가해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 장자연씨를 괴롭혔던 범죄자들은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장자연씨로부터 술접대와 성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인물은 20~30명입니다. 이중에서 재판까지 받은 인물은 소속사 대표 김아무개씨와 매니저 유아무개씨입니다.

소속사 대표 김씨는 폭행 및 협박 등으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폭행은 성폭행이 아닌 단순 폭행이었습니다. 매니저 유씨는 명예훼손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는데, 장씨가 아닌 소속사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이었습니다.

장자연씨 유서에 언급됐거나 거론됐던 인물들은 전부 혐의가 없다면서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강압 하에 성상납과 술접대를 했던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죽었지만, 가해자들은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장자연씨가 수차례 언급했던 조선일보 사장


장자연씨는 자신이 남긴 문건에서 <조선일보>를 수차례 언급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이름을 거론한 언론사와 민주당 이종걸 의원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또한 <조선일보>는 장자연씨가 <스포츠 조선>과 <조선일보>를 오해했다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 소속사 대표 김씨 신문 조서 중에서
경찰 :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의 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다'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표 김씨 : "저는 <조선일보> 방 사장을 본 적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릅니다."
경찰 : "'그 후 몇 개월 후 김OO 사장이 <조선일보> 사장 아들의 술 접대 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시켰습니다'라는 문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표 김씨 : "제가 장자연과 같이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과 룸살롱에 동석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나 술 접대를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언론과 이종걸 의원·이정희 전 의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부분 패소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MBC의 보도는 연예계의 구조적인 부조리에 의해 희생된 신인 연기자에 대한 사건을 다루며 조선일보와 해당 임원을 언급했다"며 "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보도로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조선일보가 당시 장자연에 대한 보도를 거의 하지 않은 사실, 장자연 소속사 대표의 일정표에 조선일보 국장이 기재돼 있는 사실 등이 인정된다"며 "MBC 보도가 암시하거나 적시한 사실, 의견표명의 전제 사실은 모두 진실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각 분야에서 미투운동이 일어나면서 장자연씨의 사건 또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미투운동의 목적은 더는 고통받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자연씨 사건에서 보듯이 술접대와 성상납을 받았던 가해자들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큰 변화를 바라기는 어렵습니다. 두려움에도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장자연씨 사건 재조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해 제2의 장자연씨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