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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모악산 금산사, 소나무가 인상적입니다.
 김제 모악산 금산사, 소나무가 인상적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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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신앙 성지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에는 시(詩)가 여러 편 전해옵니다. 조선시대 생육신 중 한 분이셨던 <금오신화> 저자 매월당 김시습. 그도 하룻밤 묵은 후 시를 남깁니다.

구름 기운 아물아물, 골 안은 널찍한데
엉킨 수풀이 깔린 돌에는 여울소리 들려오네.
중천에 별들은 금찰(금산사)을 밝히는데
밤중에 바람과 우레가 석단(방등계단)을 감싸 도는구나.
낡은 짐대「幢」엔 이끼 끼어 글자가 희미한데
마른 나무에 바람 스치니 저녁 추위가 생기누나.
초제(객실)에서 하룻밤 자고 가니
연기 속 먼 종소리에 여운이 한가롭지 않다.     - 출처: 금산사 -


시 속에서 금산사는 번뇌가 사라진 천상계 풍경으로 그려집니다. 허나 김시습은 천상계에서 하룻밤 자고난 뒤에도 속세에 대한 미련이 여전함을 보여줍니다. 아마, 세상에 대한 원이 컸던 모양입니다. 다 부질없는 것을….

"나는 쉬고 싶다. '나'부터 내버려 두세요"

모악산 금산사. 쉬고 싶다는, 분별하지 않는다는, 나부터 내버려 두라는, 템플스테이를 알리는 현수막 문구가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모악산 금산사. 쉬고 싶다는, 분별하지 않는다는, 나부터 내버려 두라는, 템플스테이를 알리는 현수막 문구가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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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가람에 들기 전 세속의 번뇌를 벗고 진리 세계에 드는 일심(一心)을 요구합니다.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그걸 알면 이미 해탈이지요. 스님 한 분 저만치 앞서 걸어갑니다. 금산사 템플스테이를 안내하는 현수막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나는 쉬고 싶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지 않습니다. '나'부터 내버려 두세요."

개울을 지나니 금강문입니다. 절집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과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모셨습니다. 금강문과 일직선상에 천왕문이 있습니다. 불국정토 외곽 동, 서, 남, 북을 맡아 지키는 사천왕을 모셨습니다. 스님 한 분 걸어 나옵니다. 만나기로 했던 짜장 스님은 아닙니다. 홀연히 한 순간 깨닫는 돈오가 있듯 때가 되면 만나겠지요.

금산사에 따르면 "백제시대 600년에 창건되어 신라 경덕왕 때(762~766년 사이)에 진표 율사가 중창하여 대찰 면모를 갖추었다. 이후 법상종 근본도량이 되었다"고 합니다. 금산사 전각을 둘러봅니다. 문화재로 노주(보물 제22호),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 5층 석탑(보물 제25호), 석종(보물 제26호), 6각 다층석탑(보물 제27호) 등이 있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신 후 돌 위에 앉습니다. '참 나' 찾기에 돌입합니다.

다시 복기하는 '참 나' 자리에 돌입한 순간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입니다.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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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마음을 집중합니다. '참 나' 자리에 기운을 모읍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뚫려 있었던 상단전에 기운이 금방 모입니다. 허나, 공적영지 속으로 들어가기가 만만찮습니다. 간절함을 담아 다시 반야 체험을 시도합니다. 아~~~. 불성, 한 번 체험을 허락한 후 여전히 난공불락입니다. '견성'을 보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찬찬히 다시보기를 시도합니다.

"…. '나'라고 하는 그 자리가 어디십니까. '나'라고 한 번 말로 해보세요. '나'. '나'. '나'. 누가 '나'라고 하는지 보세요. '나'라고 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한 번 느껴보세요.…"


간절함을 담아, 가슴으로 "나~ 나~ 나~ 나~ 나~ 나~ 나~"를 찾습니다. 순간,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여기에 '공(空)'의 의미를 덧붙이면 어떨까? 다시 '나~'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 나~ 나~ 나~ 나~ 나~ 나~"를 찾으면서도, 공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한 순간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자리이더이다. 아!!!!!! 마침내 그토록 바랐던 '참 나' 자리에 앉았더이다. '공(空)', 불성이 떡 버티고 있더이다. 이래서 '열반'이라 하는구나 싶더이다. 한발 물러나 공적영지 전체를 보았더이다.

엄청난 양의 물이 떨어지는 폭포수를 뚫은 기분이더이다. 폭포수 뒤쪽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동굴을 찾아 앉은 듯한, 시원하고, 맑고, 고요한 느낌이더이다. 경이롭더이다. 그러면서 세상일들은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이중의 현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더이다. 다만, 선정과 지혜가 추가 되었을 뿐! 여전히 귀로는 윤홍식 씨의 <수심결> 강의가 들리더이다.

"…. 보조 스님이 그 자리를 '공적영지'라 불렀어요. … 눈 감아 보세요. 뭐가 보고 있지요? … 그게 '나'라는 존재 아닙니까? … 말이 생각이 나오는 그 자리 아시겠죠? … 그 자리가 그토록 찾던 그 자립니다. … "


어째 이런 일이…. 공적영지를, 집 안방 침대에서 앉아 느끼는 기분은 무덤덤하더이다. '참 나'를 체험하면 기쁨과 환희가 넘치고 게송이 절로 나온다던데, 그게 아니라 무덤덤하더이다. 왜 그럴까? 윤홍식씨에 따르면 이는 "무의식의 세계가 아직 '견성' 체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며, 이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고, 그때 기쁨과 환희가 넘친다"는 설명입니다.

"발 빼지 말고 한쪽을 들이 밀고 있어야 합니다"

참 나, 불성, 공적영지, 어디 있을까? 모든 건 내 마음 속에 있나니...
 참 나, 불성, 공적영지, 어디 있을까? 모든 건 내 마음 속에 있나니...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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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은 채 맑고 고요한 '선정'을 살핍니다. 마치 대숲에 앉아 걸림이 없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는 기분이더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반야심경)>에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即是空 空即是色)"더니 과연 그러하더이다. 공의 상태에서는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더니 정녕 그러하더이다.

눈을 떴더이다. 여전히 영원한 자유가, 불생불멸의 마음자리는 그대로이더이다. 생각이 멋대로 흐르더이다. 붙잡지 않고 흐르게 가만 두었더이다. 소소영영 하다더니, 이런 게 소소영영이구나 느꼈더이다. 30여분, 공적영지를 만끽했나이다.

"…. 이곳에서 발 빼지 말고 한쪽을 계속 들이 밀고 있어야 합니다.…"


안내에 따라 정신을 더욱 집중했더이다. 육바라밀 실천 설명에 끌리더이다. 집 청소에 생각이 미치더이다. 행동이 앞서더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와 청소기를 잡았더이다. 윙~ 윙~ 윙~. 청소기가 요란하게 움직이더이다. 거실, 안방, 아이들 방, 주방까지 청소했더이다. 그런데도 본래 마음자리는 여전히 그 자리더이다.

"…. 이 공적영지를 다시 부르는 방법이 필요하다.…"


앗! 어!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어느 순간 본성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다시 정신을 집중합니다. 공적영지에 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몇 번이나 시도합니다. 실패합니다. 조급하지 않습니다. 다시 만날 걸 알기 때문에.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진표 율사, 그리고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모악산 금산사 대적광전입니다. 금산사, 진표 율사 숨결이 가득하더이다.
 모악산 금산사 대적광전입니다. 금산사, 진표 율사 숨결이 가득하더이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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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 체험을 뒤로 미루고, 바위에서 일어나 금산사 진표 율사 행적을 더듬습니다. 진표 율사께서 "숭제법사 가르침을 받아 수행 끝에,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은 후, 금산사 중창불사를 발원"하여 세운 가람들을 또 둘러봅니다. 다음은 금산사가 소개하는 진표 율사 출가 설화를 각색한 것입니다.

"어느 날 진표는 사냥에서 짐승을 쫓다 밭에서 잠시 쉬었다. 그때 개구리가 많은 걸 보고, 개구리를 잡아 나무 가지에 꿰어, 꿰미를 만들었다. 사냥 후 가져가기 위해 물 속에 담가 두었다. 집에 갈 때 개구리를 잊고 말았다. 이듬해 다시 사냥을 갔다 개구리가 꿰미에 꿰인 채 물속에서 살아 울던 것을 보았다. 그는 잘못을 뉘우치고, 개구리를 풀어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출가 뜻을 품고, 산으로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진표 율사, 출가부터 남다릅니다. 이후 그는 절집 불사 뿐 아니라 "흉년에 백성들이 굶주리니 이들을 위해 계법을 베풀고, 고기들이 쌓이게 하여 백성들을 구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잃어버린 백제에 대한 그리움과 통일신라에서 억눌렸던 백제 유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해냈던 것"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한편, 가장 관심 끌었던 건 진표 율사 열반 과정입니다.

"진표 율사는 발연사 동쪽 큰 바위 위에 앉아 입적했다. 제자들은 그 시체를 옮기지 않은 채 공양하다가 해골이 흩어져 떨어짐에 흙을 덮어 무덤으로 삼았다 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인간이면 누구든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죽음을 맞아할 것인가?'는 우리네 인간 최대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집니다. 지금껏 이런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임종 직전, 가부좌를 튼 채 죽음을 맞는 꿈. 그런데 진표 율사께서 이런 죽음을 맞이하였다니, 놀라울 뿐!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스님 한 분, 저만치서 웃음 짓습니다.

김제 모악산 금산사. 스님, 한 분 저만치 걸어 갑니다. 공(空)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갑니다. 우리네 삶이지요...
 김제 모악산 금산사. 스님, 한 분 저만치 걸어 갑니다. 공(空)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갑니다. 우리네 삶이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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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모악산 금산사, #진표 율사, #깨달음으로 가는 길, #공적영지 체험, #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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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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