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의 주요 캐릭터들(포스터)

<블랙 팬서>의 주요 캐릭터들(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블랙 팬서>는 28일 현재 흥행 질주 중이다. 누적관객수 450만을 넘어선 이유가 궁금해서 나도 객석에 앉는다. 아빠가 어린 딸에게 와칸다 왕국의 블랙 팬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가 강렬한 사운드 트랙에 묻히며 서막이 오른다. '블랙 팬서'가 마블 코믹스의 첫 흑인 슈퍼히어로 캐릭터임을 슬쩍 밝힌 것이다.

현실에서 '블랙 팬서(Black Panther)'는 1966년 흑인들이 결성한 공동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자기방어와 사회적 평등을 목표한다. 그보다 3개월 먼저 마블 코믹스가 동명의 캐릭터를 출시했다 할지라도, 영화 <블랙 팬서>는 현실 공동체의 정신을 접목한 액션 SF로 다가온다. 흑인 약자들을 위해 세계에 개입하는 열린 결말을 봐서도 그렇다.

영화에서 '블랙 팬서'는 와칸다 왕국의 최고 전사를 일컫는다. 정통성을 계승해 왕이 된 티찰라(채드윅 보스만 분, 블랙 팬서 역)가 그다. 티찰라가 명실상부한 블랙 팬서가 되도록 돕는 SF적 요소는 셋이다. 와칸다에만 있는 희귀 금속 '비브라늄'과 비브라늄이 필수인 최첨단 과학기술력, 그리고 신체에 슈퍼에너지를 부여하는 신령한 허브다. 

그런데 블랙 팬서 티찰라는 자국민 보호를 우선한다. 와칸다가 비브라늄의 원산지임을 세계가 모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그를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도록 자극하는 인물이 나키타(루피타 니옹 분)와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 분)다. 흑인 약자들을 돕는 휴머니스트 나키타는 그의 연인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한 세계를 변혁하고픈 킬몽거는 그의 사촌이다.

성평등을 보여주는 여성캐릭터들의 활약, 그럼에도...

첫 장면은 에릭 킬몽거의 아버지가 와칸다 왕이자 형인 티찰라의 아버지에 의해 죽는 장면이다. 킬몽거의 태생과 왕국에 대한 원한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비브라늄으로 만든 와칸다의 유물 쟁탈전에서 킬몽거는 블랙마켓의 거물 율리시스 클로(앤디 서키스 분)의 주검을 이용해 왕궁 입성에 성공한다. 이후 킬몽고는 비브라늄으로 세계를 제압하려고 티찰라의 왕위를 찬탈한다.

영화는 킬몽거의 증오심에 편승해 본격적인 SF 액션에 돌입한다. 창과 방패도 최첨단 무기와 어우러지는 전투에서 눈에 띄는 존재는 여전사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분)다. 여성 호위대 대표인 그녀는 티찰라의 경호팀장이면서 와칸다 왕국의 안전을 수호한다. 왕위를 되찾으려는 티찰라와 맞선 와카비(다니엘 칼루유이 분) 부족과의 난투극은 <블랙 팬서> 액션의 정점이다. 하지만 오코예의 액션처럼 볼거리가 없다.

 과학자인 공주 쥬리

과학자인 공주 쥬리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오히려 <블랙 팬서>의 잔재미는 성평등을 연출한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에서 느껴진다. 그들은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낸다. 흑인 약자들을 구호하는 데 힘쓰겠다는 티찰라의 말을 듣고서야 청혼을 수락하는 나키타는 그가 더 나은 지도자가 되도록 격려하고 유도한다. 티찰라의 여동생 슈리(레티티아 라이트 분)는 비브라늄이 쓰인 최첨단 기기들을 개발한 유능한 과학자인데, CIA 요원 에버릿 로스(마틴 프리먼 분)에게도 개방적이다.

<블랙 팬서>에 대해 사전정보가 없었던 나는 관람 중에 놀란다. 느닷없이 한국이 거론되더니 부산이 현지가 되어 화면에 나타난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다. 생기가 떠도는 자갈치 시장 대신 검은 돈과 세력이 흘러든 카지노가 현장이어서 그렇다. 광안리 일대에서의 추격신도 초점은 광안리의 아름다움이 아닌 폭력적 기예다. 한국의 부산이어야만 드러날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니다.

세 개의 쿠키 영상까지 챙겼는데도 관람 후 기분이 '쌈박'하지 않다. 무엇보다 블랙 팬서 티찰라를 세계적인 지도자로 급부상시키는 설정이 어설프다. 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은 지혜인데, 선왕들보다 옳은 길을 선택하려는 티찰라의 선의가 곧 지혜는 아니다. 탄탄하게 내실을 다진 흑인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마블의 차기작에서는 볼 수 있을까.

한편, 킬몽거가 죽으며 노을 풍경에 감탄하는 마음은 동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블랙 팬서>는 아빠가 어린 딸에게 들려줄 동화로는 부적절하다. 대개 동화 세계는 현실의 틈새를 낙관적으로 엿보게 하면서 동심이 지속가능하도록 돕는다. 왕위 계승 방법을 위시해 폭력이 일상적인 <블랙 팬서>는 동심을 할퀴는 비윤리성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블랙 팬서>는 마블 영웅 중 흥행 최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제작물에 대한 기대치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영화가 끝난 후의 내 기분은 더 꿀꿀하다.

 왕좌를 두고 경합하는 킬몽거와 티찰라

왕좌를 두고 경합하는 킬몽거와 티찰라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블랙 팬서 흑인 슈퍼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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