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슛하는 라틀리프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최근 귀화하며 대표팀에 합류한 라틀리프가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이 뉴질랜드의 벽을 넘지 못했다. 26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중국 남자농구월드컵' 아시아예선 1라운드 A조 뉴질랜드와의 홈 4차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84-93으로 패했다. 뉴질랜드가 3승1패를 기록했고 한국은 2승 2패로 공동 선두에서 밀려났다.
한국은 귀화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라건아)가 가세하기 전, 뉴질랜드를 상대로 A매치 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지난 2017 FIBA 아시아컵 조별리그와 3·4위전, 그리고 지난 농구월드컵 예선 1차전에서 모두 뉴질랜드를 제압했다. 탄탄한 수비와 외곽슛의 조화가 돋보였다. 라틀리프까지 가세하며 골밑도 보강한 만큼 이번에도 내심 승리를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대표팀은 홍콩전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뉴질랜드의 강력한 압박과 높이에 무릎을 꿇었다.
귀화선수 라건아, 기대만큼 제 몫을 해냈지만라틀리프는 충분히 자기 몫을 해냈다. 국제 무대에서는 '언더사이즈 빅맨'인 라틀리프가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강호인 뉴질랜드를 상대로도 29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활약을 보였다. 라틀리프는 자신보다 큰 뉴질랜드 빅맨들을 상대로도 적극적인 몸싸움과 과감한 골밑 공략으로 고비 때마다 한국 공격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오세근-이정현과의 2대 2 공격 시도는 물론이고 본인이 직접 속공에 가담하며 전준범-두경민의 오픈 찬스를 열어주는 등 활발한 팀플레이도 돋보였다.
하지만 정작 대표팀은 '라틀리프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우려한 대로 라틀리프에 대한 의존도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한국은 라틀리프가 합류하기 전 모든 선수들이 볼 소유 시간을 줄이고 빠른 패스워크와 부지런한 활동량으로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찬스를 만들어내는 모션 오펜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날 한국은 오히려 지난 경기처럼 민첩한 패싱게임이 나오지 못했다. 라틀리프가 공을 잡을 때마다 나머지 선수들의 움직임이 한 박자 늦거나 순간적으로 서 있는 장면이 많았다. 프로 리그에서 득점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에게 일단 공을 넘겨주고 기다리던 습관이 대표팀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아무래도 손발을 맞춘 시간이 짧다보니 라틀리프와 기존 선수들의 호흡이 맞지 않는 장면도 많았다. 라틀리프가 골밑에서 자리를 잡고있는 상황에서도 한 박자 빠르게 패스를 넣어주는 선수가 부족했다. 득점과 리바운드에서는 제몫을 다한 라틀리프였지만 수비는 아쉬웠다. 골밑에서 힘으로 버텨주는 수비나 탄력을 활용한 블록슛은 위협적이었지만 팀 수비에서는 상대가 2대 2 게임을 펼치는 상황에서 스크린 이후 도움 수비나 외곽수비 커버 타이밍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헤매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은 이날 장기인 드롭존 수비의 위력이 반감되면서 헐거워진 공간을 뉴질랜드 선수들이 거침없이 파고드는 상황이 자주 나왔다.
▲ 드리블하는 오세근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대표팀 오세근이 드리블 하고 있다. 2018.2.26 ⓒ 연합뉴스
파트너인 오세근이 너무 일찍 파울트러블에 걸린 것도 뼈아팠다. 전반부터 많은 시간을 소화하며 체력이 소진된 라틀리프와 파울트러블에 걸린 오세근이 3쿼터들어 잠시 빠지자 뉴질랜드는 아이작 포투를 앞세워 골밑을 집중 공략하며서 점수차를 벌렸다. 김종규와 최부경이 분전했지만 뉴질랜드의 속도와 높이를 제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한 이종현과 이승현의 공백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었다. 뉴질랜드같은 강팀을 상대로 93점이나 내주고서 이기기는 어렵다. 그만큼 이날 한국의 팀수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설욕 위해 독기 품었던 뉴질랜드결정적으로 뉴질랜드와 전력과 준비가 한국보다 더 우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A매치에서 한국보다 전력에서 앞선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덜미를 잡혔던 뉴질랜드는 이번에야말로 설욕을 위하여 독기를 품고 나온 기색이 역력했다. 전반까지 팽팽한 승부를 펼쳤던 양팀은 후반 들어 뉴질랜드가 기습적인 전면강압수비로 한국의 잇따른 실책을 유도하면서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볼 핸들러가 없는 한국의 약점을 간파한 수비 전략이었다. 기본적으로 높이에서 앞선 뉴질랜드는 빅맨진의 지속적인 물량공세로 라틀리프-오세근의 체력을 깎아먹는 데도 성공했다.
어려울 때 경기를 풀어줄 수 있는 해결사의 유무도 양팀의 중요한 차이였다. 이날 뉴질랜드에서 가장 돋보인 플레이를 펼친 가드 코리 웹스터는 30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국의 수비를 초토화시켰다.
웹스터는 지난 23일 중국 전에서도 18득점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던 선수다. 뉴질랜드가 이젠렌, 궈 아이룬등 정예 1진을 앞세운 중국을 상대로도 역전승을 거둘수 있었던 것은 웹스터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한국전에서도 웹스터는 3점슛을 6개나 성공시켰고 적중률은 무려 66.6%에 달했다. 공간이 열리면 언제든 골밑을 파고들어 파울을 끌어내거나 빅맨인 아이작 포투와 알렉스 프레지어에게 손쉬운 찬스를 열어주기도 했다. 한국은 양희종과 박찬희 등 수비력이 좋은 선수들을 잇달아 투입했으나 웹스터를 봉쇄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도 전반에 두경민, 후반에는 전준범이 어느 정도 공격의 활로를 열어주기는 했지만 웹스터처럼 화려한 개인능력으로 수비를 흔들거나, 경기 내내 꾸준하게 지배력을 행사할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4쿼터에 이정현마저 상대 선수와 안면 충돌로 부상을 당하며 벤치로 물러나면서 한국은 더 이상 추격의 동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돌파, 포스트업, 플로터 등 다양한 공격기술을 구사하는 뉴질랜드 선수에 비하여 중장거리 점프슛 위주의 단조로운 플레이에 의존해야하는 한국 선수들의 기술적 한계가 두드러진 경기였다.
▲ 작전 지시하는 허재 감독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대표팀 허재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18.2.26 ⓒ 연합뉴스
이날 패배로 허재 감독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어차피 현재의 전력이 베스트멤버에 가깝다. 라틀리프의 위력은 분명했지만 귀화선수 한 명으로 뉴질랜드이나 중국같은 강팀을 상대하는데 지나친 환상은 금물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첫 술밥에 배부를수는 없다. 앞으로 조직력이나 수비면에서 더 보완하지 않으면 '라틀리프의 위력'이 대표팀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숙제를 남긴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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