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컬링 러브> 포스터

영화 <컬링 러브> 포스터 ⓒ Progressive Pictures


한국 컬링 국가대표 선수 이진일(김승우 분)은 기량은 월등하나 팀플레이를 무시하는 행동을 일삼다가 팀에서 쫓겨난다. 울적함을 달래고자 떠난 일본 여행에서 진일은 시체 역할밖에 맡지 못하는 조연 배우 이즈미(후카이시 카즈에 분)와 우연히 만난다. 진일을 한류 스타 강수형(김승우 분)이라 착각한 이즈미는 배역을 얻고자 하는 욕심에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진일이 남긴 열차 티켓을 보고 고향 아오모리로 돌아온 이즈미는 뒤늦게 진일이 수형과 쏙 빼닮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낙심한 이즈미는 고향 친구 사토코, 유코, 동생 히카리와 술을 마시다 유명해질 수 있다는 말에 충동적으로 컬링 선수가 되겠노라 선언한다. 그녀의 꿈을 위해 친구들과 동생이 힘을 모은다.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연습하는 열정에 진일의 마음도 서서히 움직인다.

얼마 전 막을 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 컬링팀 '팀 킴'은 최고의 화제를 몰고 다녔다. 이들이 펼친 대약진은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은메달에 이른 값진 여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네티즌들은 가상의 포스터와 스틸을 만들고 캐스팅을 언급하며 영화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컬링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과거 컬링를 소재로 삼았던 영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제작한 2007년 작품 <컬링 러브>가 그 주인공이다.

흔하고 뻔한 스포츠-로맨스 영화이지만

<컬링 러브> 영화의 한 장면

▲ <컬링 러브> 영화의 한 장면 ⓒ Progressive Pictures


영화 <컬링 러브>는 제목 그대로 스포츠인 '컬링'과 남녀 간의 '러브'를 소재로 다룬다. 멜로드라마를 의미하는 '러브'에선 로맨틱 코미디의 흔한 서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 한국인 진일과 일본인 이즈미가 티격태격하다가 점점 서로를 알아가고 결국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에 영화는 '컬링'을 덧씌운다.

다른 스포츠 소재의 영화가 흔히 보여주었던 틀을 <컬링 러브>는 충실히 따른다. 오합지졸들이 모이고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에 시큰둥한 감독이 차츰 동화되어 같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광경은 무척 익숙하다. 멜로 장르로 보아도, 스포츠 영화로 생각해도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문제점도 많다. 극의 구조는 헐겁기만 하다. 갈등을 일으키던 인물들이 화해하는 과정은 동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캐릭터도 일차원적인 형태에 머문다. 가장 큰 무리수는 컬링 국가대표 선수인 이진일과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한국 배우 강수형이 닮았다는 설정이다. 두 사람은 국가대표 선수와 최고 인기를 끄는 배우가 아닌가. 그럼에도 영화는 마치 드라마 <아내의 유혹>처럼 이진일의 얼굴에 점 하나만 찍으면 강수형이라고 외친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컬링 러브>는 전체적인 구성이 뻔하고 설정에서도 허점투성이지만, 아기자기한 맛을 내는 의외의 구석이 존재한다. 배경인 아오모리는 2003년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했을 정도로 겨울 스포츠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소소한 재미가 있다

<컬링 러브> 영화의 한 장면

▲ <컬링 러브> 영화의 한 장면 ⓒ Progressive Pictures


컬링 역시 일본과 사연이 깊은 운동이다. 컬링을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 대회가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니까 말이다. <컬링 러브>는 지역과 컬링 모두를 홍보하는 영화인 셈이다. 컬링 홍보 영화에 걸맞게 <컬링 러브>는 경기 규칙, 기본 동작, 스톤 투구법, 작전의 중요성을 세밀하게 담았다.

'오합지졸'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연 배우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즈미, 생선가게를 하면서 아기를 돌보는 사토코, 강수형의 열성적인 팬인 평범한 공무원 유코, 별다른 꿈이 없이 지내는 히카리는 컬링으로 뭉치며 꿈의 빛을 찾아간다.

이들이 일상에서 컬링을 연습하는 모습은 무척 재미있다. 유코는 회사 복도에서 스톤 던지는 폼을 잡고 히카리는 눈을 쓸면서 스킵을 연마한다. 사토코는 생선박스를 스톤처럼 밀기도 한다. 이즈미가 주문한 유니폼은 마치 걸그룹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에 색상은 분홍색이다. 모두가 유니폼을 입고 "우리는 컬링 앤젤스!"를 외칠 적엔 보는 이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어느새 응원하고 싶어진다.

<컬링 러브>는 처음과 마지막에 비슷한 장면을 배치했다. 초반 경기 장면에서 진일은 안전하게 점수를 따라가자는 팀원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기 실력을 과신하며 역전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즈미는 진일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두 장면은 같은 결과를 얻었지만, 의미는 달라져있다. 전자는 '나'로 끝났고 후자는 '팀'을 얻는다.

같은 것에서 다른 의미를 얻는 화법은 진일과 이즈미를 연결해주었던 대사에도 적용된다. 진일은 이즈미를 처음 만났을 때 한류 스타 수형이 광고에서 던지던 멘트 "아름다운 밤, 내게 주세요"(이 대사는 <컬링 러브>의 일본 원제이기도 하다)를 내뱉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진일은 다시금 이즈미에게 "아름다운 밤, 내게 주세요"란 말을 건넨다. 그러나 대사가 가진 뜻은 달라져 있다. 거짓은 진심으로 바뀌었다. '컬링'과 '러브'는 그렇게 완성된다.

<컬링 러브> 영화의 한 장면

▲ <컬링 러브> 영화의 한 장면 ⓒ Progressive Pictures


<컬링 러브>는 2007년 제3회 KBS 프리미어 페스티벌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다. 당시 KBS는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선별해 극장과 TV에 동시 상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컬링 러브>도 극장과 TV에서 동시에 선보였던 작품 중 하나다.

현재 <컬링 러브>는 일본에서만 DVD가 출시되었고, 국내에선 정식으로 출시 또는 다운로드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활활 타오른 컬링의 열기에 힘입어 <컬링 러브>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방영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바다.

컬링 러브 나카하라 슌 김승우 후카이시 카즈에 세키 메구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