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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긴급 수석보좌관회의를 열었을 당시 모습.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긴급 수석보좌관회의를 열었을 당시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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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사회'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의 탄생과 함께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그리고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받는,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와 사회적 적폐의 청산이 진행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등장은 '경제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환상에 기인한 부분도 컸다.

그 대가는 컸다. 두 정권을 거치는 동안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원리가 우리들 삶과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더욱 커졌다. 많은 국민들은 '무한경쟁 속에서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강요받았으며, 불공정한 갑을 관계 속에서 괴로워했고, '각자도생과 승자독식의 시대' 속에서 좌절감과 열패감에 휩싸인 사람들은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을 보호하는 국가의 안전망은 기능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사회 만들기'의 관점에서도 나라다운 나라에 대해 토론하고 실천이 가능한 정치사회적 조건이 마련되고 있는 중이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는 주민과 함께 실천 가능한 사회만들기 차원의 정책들이 경쟁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각 지역의 역사성과 사회경제적 조건을 반영하는 가운데 '성숙한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정책을 둘러싼 공론장이 활성화됐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다. 지난 20여 년 동안, 경제성장이 주민의 행복을 보장해주리라는 믿음에 대한 근본적 반성 위에 자본주의적 시장에 의해 주어진 삶과는 다른 삶을 조직화하고자 하는 사회적 움직임들도 서서히 활성화되고 있는 중이다. 저성장 시대에 걸맞은 미래 사회의 비전에 대한 정책 경쟁이 지방자치를 통해 얼마나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나라다운 나라의 사회적 내실을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박원순 시정의 성숙사회 패러다임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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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출범한 박원순 시정은 지방정부가 새로운 사회만들기에 대한 정책 개발과 실천의 주체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박원순 시정의 대표 브랜드인 마을공동체 사업은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만들기를 상징하는 정책이었다. 서울시를 저성장 시대에 걸맞은 '성숙사회'(mature society)로 바꿔 나가겠다는 서울 시정의 적극적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 사람과 자연 사이의 에코적 관계라는 튼튼한 바탕 위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미래사회의 비전을 선언한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장이라는 행정직을 소셜 디자이너 혹은 사회적 혁신 기업가(social entrepreneur)로서 주목하게 만든 첫 번째 서울시장이었다. 

성숙사회라는 용어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이자 미래학자이기도 했던 데니스 가보르(Dennis Gabor)가 경제성장 사회를 넘어선 미래사회의 비전을 나타내기 위해 1972년, <The Mature Society. A View of the Future>란 책에서 제시했던 개념이다.

가보르에게 성숙한 사회란 소비를 통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제성장 지향적인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적 다양성과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 속에 근거한 삶의 다양한 욕구 및 필요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근본적 반성 위에서 새로운 사회의 지향성을 표현하기 위해 '성숙사회'란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 것이다.

가보르가 성숙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강조했던 것은 '관계성'(relationship)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정신적 풍요로움 및 행복을 사회의 성숙도(maturity)를 가늠하는 핵심이라고 봤던 것이다.

사회의 성숙도란 새로운 지표는 사회만들기와 관련된 새로운 생각거리들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성숙한 사회에 대한 담론은 나의 소득은 얼마인가, 올해의 경제성장율은 얼마인가, 라는 질문보다도 나는 내 삶의 양식을 주도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개인의 행복의 토대가 되는 공동체적 기반이 얼마나 풍요로운가, 지방정부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등과 같은 같은 질문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정책의 실험

유창복이 쓴 책 두 권. 왼쪽은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휴머니스트), 오른쪽은 신간 <마을정부를 말하다>(행복한 책읽기).
 유창복이 쓴 책 두 권. 왼쪽은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휴머니스트), 오른쪽은 신간 <마을정부를 말하다>(행복한 책읽기).
ⓒ 휴머니스트/행복한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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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라는 열쇠 개념으로 성숙사회 패러다임에 입각한 사회만들기의 정책을 논의한 흥미로운 책이 두 권 있다. 유창복의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2014)와 올해  출간된 <마을정부를 말하다>(2018)가 그것이다.

이 두 책은 구체적이고 현장감이 있다. 마을공동체나 성숙한 사회에 대해 추상적으로 이해되기 관념성을 제거하고 실제로 도시형 마을의 주민을 만나고 온 것과 같은 현장감이 있다. 이는 저자가 제시하는 정책 이야기들이 오랜 기간의 마을살이와 지난 6년간 서울시정에서의 행정 경험을 통해 경작된 것에 기인할 것이다.

책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이 성미산마을에서의 마을살이와 서울시 초대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공동체의 형성 과정과 마을 친화적인 행정의 과제를 논의한 결과물이라면, 책 <마을정부를 말하다>는 서울시 협치자문관의 활동을 통해 터득하게 된 마을정부와 마을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주민이 주도하는 사회만들기의 제도적 환경과 관련된 지방정부의 역할 및 과제를 논의한다. 여기서는 <마을정부를 말하다>란 책을 중심으로 그가 제시한 마을정부에 대한 이야기들을 저성장 시대의 성숙한 사회만들기라는 관점에서 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숙한 사회만들기와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

저자 유창복에 따르면, 저성장 시대의 성숙한 사회만들기를 과제로 하는 지방정부의 핵심 역할은 마을공동체의 형성과 그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에 있다. 사실 6년 전, 박원순 시장이 마을공동체 사업을 들고 나왔을 때 생뚱맞다는 느낌을 가진 서울시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아직도 그런 시민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립과 적대로 표현되는 각자도생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바쁜 주민들에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전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마을'이란 말이 한가하게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전통적 마을과 달리 호혜적인 생활관계망을 뜻하는 도시형 마을공동체는 그 효과를 직접 경험하지 않는 한 체감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정은 밀어붙였다. 박원순 시장은 유창복이 관여했던 '성미산마을'이 저성장 시대의 실현가능한 성숙사회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했고, 그에게 마을공동체 정책의 골간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이는 박원순 시장이 도시사회에서의 사회적 성숙도를 가늠하는 기준을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의 강화에서 찾는 관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시장에게 마을공동체는 성숙한 사회를 가늠하는 기준이었고, 성숙한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추동력이 생성되는 것으로 위치 지어졌던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각종 저서 등의 기록에 비춰 보면, 그에게 지역사회를 거점으로 하는 다종다양한 호혜적인 생활관계망의 존재는 도시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을 강화시키는 것을 의미했고, '경제성장 지향적인 사회'의 각종 문제점을 (저성장 시대에 걸맞는 형태로) 해결할 수 있는 인적 자원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보고(宝庫)였다. 이는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대안에너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와 같은 혁신적인 정책들의 최종 목적을 마을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해 성장사회를 성숙사회로 재편하는 것에 설정했던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마을공화국, 서울시

성수2동 찾동 마을계획 워크숍에 참석한 박원순 시장이 마을경제분과에서 토론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성수2동 찾동 마을계획 워크숍에 참석한 박원순 시장이 마을경제분과에서 토론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이강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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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의 마을공동체 사업은 25개의 자치구로 확산됐고, 자치구 고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과 자원들을 반영하는 형태로 경쟁적으로 실시되게 됐다. 지난 6년 간의 서울은 '마을공화국'이라고 불려져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을공동체를 통한 주민 자치력의 향상과 마을공동체와의 협치를 통해 새롭게 발굴되고 증식된 사회적 자본은 서울시정의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대안 에너지와 같은 다른 혁신적 사회정책들의 사회적 기반이 됐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을공동체가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각 정책 들의 융합 효과를 좌우하는 기본 요소임을 증명하는 정책 사례들도 차곡차곡 쌓이게 됐다. 그 결과, 마을공동체의 자치력과 주민주도적인 협치의 활성화는 '서울형 성숙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서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됐다.

민간과 지방정부의 협치는 일반적으로 지방정부의 성과를 높이는 제도적 장치로서 위치지어진다. 그러나 성숙한 사회에서의 협치는 '과정'을 중시한다. 그 과정을 통해 협치의 당사자인 주민들과 조직들 및 행정이 얼마나 '성숙'해지는가가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유창복에게도 협치란 '그 성과가 협치의 공동체적 기반의 강화와 주민들의 자치력 및 공무원 조직의 시민적 성숙도의 향상에 얼마나 피드백 되는가'에 두어졌다. 협치에 대한 주민만족도는 협치의 직접적 목표가 얼마나 잘 달성됐는가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당사자들이 얼마나 보람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얼마만큼 성장했는가에 의해서도 달성된다는 점을 중시했던 것이다.

즉, 협치 그 자체가 협치 당사자들의 삶의 질의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유창복의 이러한 신념은 '주민주도적인 협치'라는 정책 개념으로 표현됐는데, 이는 마을공동체를 통해 주민들이 협치의 당사자로 등장할 때만이 성숙한 시민과 성숙한 사회로의 발전을 추동하는 힘이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유창복은 서울시의 협치 정책을 설계하고 그 집행 과정을 점검하는 가운데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도 감지했다. 그는 협치하는 과정 속에서 주민들이 마을공동체를 통해 행정과 정치의 힘을 이용해 현장을 기점으로 하는 사회혁신을 만드는 민주주의가 작동되고 있음을 체감했다. 또한 지방정부가 마을공동체를 통해 주민들의 자원과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내어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는 민주주의의 가능성도 실감했다.

그는 이러한 민주주의를  '마을민주주의'로 표현했다. 그에게 마을민주주의란 협치를 통해 주민도 공무원도 자신이 '통치의 주체임과 동시에 객체가 되는 중층적인 관계'를 경험하는 가운데 협동하는 힘을 기르는 것을 의미했다. 주민주도적인 협치는 그에게 마을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길을 열고 다지는 제도적 장치였던 셈이다. 

복지국가 한계 넘어서는 '복지사회 만들기' 문제해결법, 찾동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BI.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BI.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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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와 주민이 주도하는 협치를 통한 공동체적 기반의 강화가 사회혁신의 길을 여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유창복의 확신은 서울 시정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 강화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확신에 영향을 준 결정적 계기는, 그가 서울시 협치자문관으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라는 복지 정책의 골간을 만들고 실행 과정에 참여한 것이었다. 유창복에 의하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서울시 '송파 세 모녀'의 가슴 아픈 사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 서울시가 모든 가능한 정책수단을 모색하던 가운데 만들어진 사업이었다고 한다.

유창복은 동 단위의 중층적인 호혜적인 생활관계망, 즉 다종다양한 마을모임의 현장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해결의 힌트를 찾았다. 마을공동체 정책을 통해 등장한 다양한 주민모임들이 마을을 오랫동안 지켜왔던 전통적인 주민단체들과 함께 동주민센터를 거점으로 함께 만나고 협력하는 경우, '지역사회 복지 생태계'가 동(洞) 단위에서 새롭게 구축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에 기초한 복지 서비스 정책이라면 국가의 손길이 미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에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복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으며, 사회적 약자의 '생존' 문제를 넘어 그들 개개인의 '삶의 질'에 대한 배려도 가능한 복지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시민기초생활보장조례'의 제정을

복지'국가'는 큰 정부를 필요로 하는 사회이지만 저성장 시대에 걸맞는 복지'사회'는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을 필요로 하는 사회다. '복지국가 패러다임'에 기초한 성장 지향적 사회에서는 국민이 복지 서비스의 수혜자임과 동시에 공급자라는 호혜적 관계성을 실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복지사회 패러다임'에 입각한 성숙사회는 시민이 시민을 돕는, 서로 신세를 지고 신세를 갚아가는 호혜적 관계망을 통해 연대감과 '사회적 우정'을 체감할 수 있는 사회이다. 성숙사회는 저성장 시대의 복지사회 패러다임에 입각한 정책들을 중시한다. 양극화 사회의 산물인 복지 문제를 경제소득의 재분배란 시각을 넘어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 강화에 기여하는 형태로 문제해결수법을 모색하는 정책들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의 개발에 적극적인 지방정부라면, 국가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보장하는 생활권에서 한 발 성큼 더 나아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시민기초생활보장조례'의 제정과 같은 새로운 정책들도 펼쳐볼 수 있지 않을까. 

신뢰, 호혜성 그리고 수평적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적 자본의 특징 중의 하나는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증식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주민주도적인 복지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사회적 자본을 활용하고 증식함으로써 복지의 공동체적 기반을 더욱 더 강화한 사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부산물 효과로서, 이 사업을 통해 확장되고 중층화된 동 단위의 주민관계망이 주민들의 각종 생활상의 필요와 요구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유창복에게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정책은 마을공동체의 가능성을 높이는 데 지방정부의 행정 혁신이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도 알게 해줬다. 여기서 행정혁신이란 지방정부가 마을공동체에 내재된 사회적 자본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위해 행정 내부의 각 부서 간의 칸막이뿐만 아니라 자치 단위 간의 위계질서를 넘어서는 융합적 행정구조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정책은 민간과 행정의 협력 뿐만 아니라 행정국, 복지국, 시민건강국, 여성가족실, 혁신기획관실 등 서울시 5개의 국장 간의 조율이 잘 이뤄져야 성공할 수 있게 되는 협력 정책이었고, 더 나아가 '동네-동-구-시' 일련의 집행체계가 협력을 이뤄야만 성공 가능한 고난도 협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 형성과 협치에 적극적인 마을정부의 과제

유창복. 사진은 지난 201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당시 촬영한 것.
 유창복. 사진은 지난 201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당시 촬영한 것.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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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고찰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유창복에게 마을정부의 기본적 역할이란 마을공동체의 형성을 지원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을공동체는 주민의 필요와 욕구로부터 출발하는 개인의 당사자성이 중요한 동력이 되지만 전통적 마을과 달리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에 바쁘고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도시사회에서의 주민들이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회비용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마을정부의 다른 중요한 역할은 동네 단위, 동 단위에서 주민과의 협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주민들의 필요와 요구의 질이 높아지고 다양화될 수록 이를 지방정부만의 능력만으로는 해결하는 것은 저성장 시대의 지방정부에게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협치 또한 지방정부에게 의지가 있다고 자동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우선, 협치 대상인 능동적인 주민이 없다면 협치를 통해 지방정부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것은 가능할 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행정이 주민들과의 협치 과정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면 효과적인 협치가 이뤄질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창복은 주민이 주도하는 협치를 촉진하며, 그 성과를 높이기 위한 마을정부 스스로의 과제는 행정혁신에 있다고 봤고, 그 과제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한다. 

정책 관계망의 개방성과 주민을 향한 권한 분배

첫째, 마을정부가 가장 우선해야 하는 원칙은 정책을 둘러싼 기존 주민 관계망을 열어 마을공동체와 같은 새로운 관계망을 언제든지 초대할 수 있는 개방성이다. 단, 정책 관계망을 개방한다고 마을공동체가 자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마을정부는 현안이 되는 정책마다 이해관계가 있는 마을공동체를 찾아가서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결정 권한과 재정 등의 권한을 주민들에게 일정 부분 부여하는 것이다. 정책 네트워크에 초대된 주민들이 들러리가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주민과 마을공동체가 더 이상 행정과 함께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협치에 대한 선출직 지자체장의 인내와 결기

셋째, 때로는 소모적이며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민과의 협치 과정을 인내하는 것이다. 협치 과정 속에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정책의 이해관계 당자사들이 협치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했음에도 정해진 시한까지 어떤 결정도 불가능했다면 기존 정책을 유지하고 결정은 미루는 것을 각오할 만큼의 갈등 비용을 감내하라는 것이다.

넷째, 선출직 지방정부의 장은 각 부처 간 칸막이를 극복하고 '창조적 협업구조'를 만드는데 적극적일 뿐 아니라 협치의 담당 공무원이 져야 하는 책임을 상당 부분 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기가 공무원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협업구조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협치 현장에 대해 탄력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정부의 성과가 지역사회에 머물지 않고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마을정부와 주민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지방분권은 사회의 성숙함을 둘러싼 마을정부 간의 정책 경쟁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지방분권은 지역사회의 삶의 현장을 기점(起点)으로 하는 사회혁신에 대한 마을정부 간의 정책 경쟁도 활성화시킬 것이다.

성숙한 사회는 국가나 시장으로부터의 급작스러운 변화나 충격에 따른 타격을 흡수하고 유연하게 적응해 사회 스스로의 회복력(resilience, 레질리언스)을 높이는 사회이기도 할 것이다. '동네-동-구-시-중앙정부'로 이어지는 사회만들기의 정책들이 지역별로 경쟁할 때, 사회 전체의 회복력도 높아질 것이다. 유창복이 꿈꾸는 마을정부가 '강한 사회' 만들기를 통해 강한 나라가 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여정을 지켜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나일경씨는 추쿄대학교 전 교수입니다.



태그:#유창복, #마을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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