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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졸업식 '꽃순이'가 불편하다.
 나는 졸업식 '꽃순이'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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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졸업 시즌이다. 요새는 학생 대표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단상에 올라가서 졸업장을 받는 편이다. 취지는 좋으나 졸업식을 준비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간단치 않은 성 정치가 펼쳐진다. 사회에 비해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학교에서 자신의 직급과 나이, 성별을 확인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정장을 차려입은 일반 교사가 긴 탁상에 쌓인 졸업장을 하나씩 챙겨서 교장에게 건넨다. 교장은 전달받은 졸업장을 다시 학생에게 준다. 졸업장 내용은 단상 아래에 있는 부장 교사가 마이크를 잡고 대신 읽는다. 교장 혼자 해도 될 일을 세 명이 나눠서 진행하는 모습은 흡사 행위 예술인가 싶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꽃순이'가 누구였는지 뒷담화가 꼭 있다. 학교에서 가장 젊고 예쁜 여교사가 남교장 옆에 서서 졸업장이나 꽃다발 건네기, 즉 시상 보조를 한다. 졸업식 행사를 주관하는 교무부장은 업무 지시를 빙자하여 '꽃순이' 역할을 '어떤' 교사에게 미리 부탁한다.

부탁을 받든 못 받든 교사는 기분이 나쁘다. 부탁을 받은 교사는 없던 정장을 사면서 '왜 그때 거절 못했지?', '내년에는 내가 안 하겠지!' 하고 후회한다. 부탁을 못 받은 어떤 교사는 '이제 나도 한물 갔구나' 자책하거나 '뭐가 부족하지?'라며 씁쓸해 한다. 며칠 전, 경기도의 모 중학교에서는 비슷한 나이의 여교사 2명이 '꽃순이' 역할을 부탁받았다. 교무부장은 졸업식 당일 차림새를 훑어 보고 1명을 '초이스'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폭력적인 경험을 당하면 시간이 지나도 자꾸 생각난다. 나는 발령받은 첫 학교에서 신규교사 환영식 때 치마 정장을 안 입었다며 교무부장에게 따로 불려가서 한소리 들었다. 출근 전에 자꾸 옷차림을 점검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고, 이듬해 2월에 졸업식 꽃순이는 당연히 안 시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외양보다 중요한 것은 나이였다. 20대였던 그때 졸업식 시상 보조를 맡았는데 이걸 부탁하는 부장교사가 나더러 '영광으로 알라'며 어깨를 툭 치는 것이다. 나이와 외모를 기준으로 '선택' 됐다는 점을 기뻐해야 하는 걸까? 선발되는 순간, 부조리함을 알았으니 내 얼굴 표정은 일그러졌고 다시는 시상 보조를 맡지 않았다.

학교도 '#미투'의 예외가 아니다

 '미투 캠페인'은 사회 전 영역으로 퍼지고 있는 추세다.
 '미투 캠페인'은 사회 전 영역으로 퍼지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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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매개가 된 권력 관계를 확인하고, 억압이 관철되는 일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결혼 휴가를 받기 위해 교장에게 소식을 알리면 "임신한 건 아니지?"라는 말을 먼저 듣는다. 남교사들끼리 모이면 학교 내 여교사들의 외모 순위를 매기고, 얼굴 성형 여부에 내기를 건다.

교육청 내 배구대회 응원이라며, 선수가 아닌 교사들도 회식에 동원되고 선수로 활약한 교사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교장과의 러브샷을 제안받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거절도 못한다. 은밀한 성추행은 아닌지라 문제 제기하기도 어렵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시대라 초등학교에도 남교사가 많아졌다. 여교장은 예전에 당신이 당했던 희롱 방법을 성역할만 바꾸어 소비한다. 졸업식 시상 보조에 어리고 준수한 남교사가 선발되고, 아무도 가지 않는 교장 옆자리에 앉아 물이라도 권해야 한다. 마초 같지 않으면, "너 게이냐?"라는 공격을 받는다.

여교사들은 나이가 들면 성차별적인 업무를 젊은 여교사에게 떠넘기기라도 하는데, 남교사들은 '남자이기 때문에' 힘든 업무를 더 맡는 경향이 있어서 억울해 한다. 성평등을 외치는 여교사들이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키보드로 분풀이한다.

교직 사회가 여초집단이라, 친여성적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초사회인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나 선정적인 장기 자랑 사태를 보라. 사회가 이렇게 성폭력적인데, 어느 조직이라고 다를까. 오가는 말과 눈빛이 안전할 수 없다.

최근 여자 검사들이 겪은 성폭력 경험 드러내기, 최영미 시인이 쓴 문단 내 '괴물' 시인 이야기, 연극 연출가의 성추행 파문을 보며 교직의 #미투 사건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희롱으로 징계된 충북이나 인천의 교장 사례는, 당시 피해자의 용기와 저항으로 드러난 일부에 불과하다.

선후배, 업무 지시, 전보발령, 승진 점수, 성과급, 학년배정 등의 이유로 '꽃순이'들은 눈을 질끈 감는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착각한다. 성희롱은 지속된다, "저는 불편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방효신 씨는 인권연대 회원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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